▲ 박진도 충남발전연구원장 |
오래전 일이다. 한 교육학자가 이스라엘 키부츠를 방문, 아이들에게 이솝우화 '거북이와 토끼'를 들려주면서 거북이처럼 부지런하게 살라고 가르쳤다. 그런데 한 아이가 “왜 거북이는 잠자는 토끼를 깨워서 같이 가지 않았느냐”고 질문했다. 키부츠의 아이에게는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경쟁보다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에게도 협동조합은 낯설지는 않다. 농업협동조합(이하 농협)과 수산업협동조합, 신용협동조합, 새마을금고 등이 설립돼 운영 중이다. 하지만, 몇몇 생협을 제외하면 협동조합의 제구실을 못하면서 정체성을 의심받고 있다.
심지어 국내 최대 협동조합인 농협조차도 조합의 주인인 농민들에게서 강한 비난의 대상이 될 정도다.
그렇다면, 왜 갑자기 협동조합 열풍일까. 협동조합기본법 제정으로 협동조합 설립이 쉬워졌기 때문이다. 협동조합기본법에 따르면 새로운 협동조합은 조합원 5명 이상만 참여하면 출자금에 상관없이 설립할 수 있다. 기존 개별협동조합법과 달리 사회적 협동조합이 아니면 시·도에 신고만으로 설립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것이 이유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협동조합에 관련된 최근의 열풍은 경기침체와 열악한 복지 등 심각한 사회적 상황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자구책에서 비롯됐다. 경제 호황기에는 개인 또는 국가 도움을 받아 문제를 해결했지만, 이제는 불가능하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함께 협동해 살길을 모색해야 한다.
협동조합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고, 이미 많은 나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스페인의 몬드라곤과 FC바르셀로나, 스위스의 미그로, 미국의 썬키스트, 뉴질랜드의 제스프리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으며 자국만 아니라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협동조합 운동가 일부는 이 같은 대형 협동조합의 국제적 성공사례를 들면서 협동조합의 가능성과 우수성을 설명한다.
하지만, 우리 현실에는 맞지 않다.
이를 위해 농협을 협동조합다운 협동조합으로 개혁하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
최근 필자의 관심을 끄는 것은 전통적인 협동조합과는 다른 새로운 협동조합들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퀘벡의 '사회적 경제'다. 퀘벡의 '사회적 경제'는 전통적 협동조합과 새로운 협동조합 모두 포함하지만, 방점은 후자인 새로운 협동조합에 놓여 있다. 퀘벡주는 인구 800만 명 가운데 협동조합 조합원은 880만 명일 정도로 협동조합이 발달한 지역이다.
하지만, '사회적 경제'가 공적 담론에 들어온 것은 1996년 주 정부가 소집한 '고용과 경제에 관한 대표자 회의'에서부터다.
이 회의에는 정부와 기업, 노동조합 외에 시민사회 내 다양한 조직(사회운동조직, 지역사회조직 등)이 대화에 참여했다.
이는 자원 배분 등에 대한 통제를 더는 국가와 시장에만 맡겨서는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예를 들어, 퀘벡은 육아와 노인돌봄 서비스를 주 정부가 직접 제공하지 않는다.
대신 '사회적 경제'(연대협동조합)에 보조금을 지급해주고 역할을 수행하도록 했다. 연대협동조합에는 서비스 이용자와 노동자, 지역사회 등 모든 핵심적인 이해당사자 대표들이 협동조합 이사회에 참여한다. 퀘벡의 '사회적 경제'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두 가지다.
첫째, '사회적 경제'는 시장ㆍ국가권력에 맞서 시민사회가 직접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대안적 방식이다.
둘째, '사회적 경제'가 발전하려면 상응하는 시민사회 역량이 성숙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벌써 협동조합 열풍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협동조합을 빠르게 많이 설립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처음부터 방향을 제대로 잡아야 한다. 협동조합이 지닌 대안적 의의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뒷받침할 시민사회의 다양한 결사체가 광범위하게 발전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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