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1. 전쟁의 상처, 기록이 필요하다.
2. 기억조차 희미해지는 논산포로수용소
3. 잊혀가는 대전형무소 우물터
4. 치열했던 격전지, 세종시 개미고개
5. 60년만에 한국 찾은 참전 미군 어빙 포츠맨티어
6. 취재를 마치며
▲ 어빙 포츠맨티어씨가 지난달 30일 과거 논산 연무읍 포로수용소 일원에서 당시 수용소 포로탈출사건을 증언하고 있다. |
그에게도 한국전쟁은 아픈 기억이다. 한국전쟁 당시 대전 신탄진 일원의 금강상류에서 친구를 잃기도 했다. 전쟁은 그의 인생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지금은 성공한 CEO로 미국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지만, 평생 가슴에 상처를 가지고 있다.
84살의 고령, 60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그에게 한국은 남다르다. 휴전 60주년이 되는 의미 있는 해, 청춘을 바쳤던 곳에 지난 5월 가족과 함께 한국을 찾았다.
어빙 포츠맨티어씨를 본보가 단독으로 만나 한국전쟁의 아픈 상처에 대해 들어봤다.
-한국을 다시 찾은 이유는.
▲한국전쟁 당시 친구가 죽었던 현장을 다시 찾고 싶었다. 나는 시콘(cicon)과 전쟁 당시 전사자 유해를 찾고자 배를 타고 금강을 건너던 중 배가 뒤집혔다. 나는 탈출했지만 시콘은 나오지 못하고 끝내 숨졌다.
한국전쟁에 같이 참여했던 시콘이 죽었던 현장을 찾았다. 세월은 많이 변했지만, 주변 산세 등이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시콘에게 60년만에 내가 다시 왔다고 이야기를 했다. 가슴이 아프다.
한국인 전우들도 만나고 싶다.
전쟁 당시 한국인들과 정을 나누며 가깝게 지냈다. 미 392영현중대에서 근무했던 이영태, 송태호 등 한국인 전우들을 찾고 싶다. 그들이 어떻게 변했는지도 궁금하다. 한국을 방문한 것은 나에게도, 가족들에게도 의미 있는 여행이다. 전쟁 당시 근무했던 부대, 사진이 찍혔던 장소, 함께 근무했던 한국인 전우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가 궁금하다.
▲ 어빙 포츠맨티어씨가 미국에서 한국전쟁에 참전할 당시 승선한 배. |
▲한국은 모든 것이 파괴된 나라였다. 전쟁고아들도 넘쳐났다. 아이들이 옷도 안 입고, 신발도 없고 음식을 달라고 졸라대고 너무 슬프시기였다.
한국인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당시 미군들이 한국 아이들에게 안 좋게 기억되는 부분들도 있을 것이다. 다른 시기에 만났으면 더 좋은 친구로 지낼 수도 있었는데 안타까울 뿐이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너무 달라졌다.
한국사람들은 진짜 대단한 사람들이다. 정말 놀라울 정도다. 60년만에 국가가 이렇게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한국인들은 우수한 민족이다. 더 성장할 수 있는 자격이 되는 민족들이다. 한국인들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래도 아직도 분단이란 슬픈 현실을 가지고 있다.
▲ 어빙 포츠맨티어씨와 한국전쟁 당시 대전·충남 일원에서 활동했던 미392영현중대에서 근무했던 한국인 전우들. |
▲논산포로수용소에서 반공포로들이 탈출하려다 숨진 사건이 가장 최악의 일로 기억된다.
포로들이 탈출과정에서 많이 죽었고 수용소 바닥에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기관총 등 총으로 쏴 죽인 흔적들이 있었다. 60~70여명의 죽은 반공포로들의 시체를 직접 수거했다. 논산수용소에 직접 내려와 일주일 동안 시체를 건물에 이동시키는 작업을 했다.
나는 당시에 한국군이 총을 쏴 포로들이 숨진 것으로 알았다.
하지만, 다시 한국을 찾아보니 미군들이 반공포로들을 총으로 사격했다는 증언을 들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미군들이 나중에 문제가 될 소지가 있어 시체를 빠르게 처리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 같다.
미군들은 당황해 당시에 한국군들을 신뢰하지 않았다. 수용소 내에서 근무하는 한국군, 한국인들을 다 내보냈던 것으로 기억난다.
한국인들에게 미안하다. 당시 한국군들이 같은 민족으로 포로들을 석방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심적으로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한국전쟁은 같은 민족끼리 벌인 이념전쟁이다. 슬픈 현실이다. 서로 생각이 다른 걸 인정하면 더 좋은 나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이해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은 좋은 인생을 살아가야 할 권리가 있다. 서로 생각이 다르고 이념이 달라도 이해를 하면 된다.
사회는 모든 가치를 의지하고 돕고 그렇게 살아나가야 한다.
당시 한국인들을 전쟁이 아닌 시기에 만났으면 더 좋은 관계를 유지해 나갈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운 점도 있다.
내가 기억하는 한국인들은 가슴이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사소한 것도 잘 챙겨주고 의리도 있는 사람들이다. 다시 한국을 찾을 수 있을지는 장담하지 못한다. 생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여행에서 60년만에 한국을 보니 기분이 남다르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길 바란다.
조성수 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