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1. 전쟁의 상처, 기록이 필요하다.
2. 기억조차 희미해지는 논산포로수용소
3. 잊혀가는 대전형무소 우물터
4. 치열했던 격전지, 세종시 개미고개
5. 60년만에 한국 찾은 참전 미군 어빙 포츠맨티어
6. 취재를 마치며
▲ 육군 32사단이 지난 3일 세종시 개미고개에서 개토식을 열고 전사자 유해를 찾는 모습. 손인중 기자 |
국방부 유해발굴단이 매년 전사자 유해를 찾는 성과를 내는 곳이다. 세종시의 강한 의지로 개미고개 일원에 '자유와 평화의 빛'이란 기념비가 지난 4월 준공되기도 했다. 한국전쟁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려는 세종시의 의지가 가장 강했다.
국비와 시비를 투입해 자유와 평화의 빛이란 기념비를 세워, 학생들 안보교육의 장으로 활용, 매년 전사자들에 대한 위령제도 지내고 있다.
▲ 개미고개에 설치된 자유평화의 빛 기념비. 손인중 기자 |
개미고개는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7월 11일부터 6일간 딘 소장이 지휘했던 미군 제24사단 소속 병사 517명이 전사한 격전지다. 전쟁 당시 미 24사단 21연대가 후퇴를 거듭하던 한국군, 한국인 노무자들과 함께 북한군 3·4사단과 전쟁을 벌였다.
개미고개 전투는 여느 전쟁도 마찬가지겠지만 치열하며 잔인했다. 이를 목격한 주민도 끔찍함을 생생히 기억했다.
김육남(여·86·세종시 전의면 동교리)씨는 “말도 못한다. 눈으로 안 본 사람들은 그 끔찍함을 말로 전달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며 “북한군이 선생, 경찰, 공무원 등 젊은이들을 닥치는 대로 죽였다. 주민도 죽고, 미군도 죽고, 북한군도 죽어나갔다. 마을 전체가 시체 천지였다”고 전했다.
▲ 한국전쟁 당시 한국군과 미군들이 전사자 유해를 찾고 있는 모습. |
사업은 연기군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시로 승격하기 전, 연기군 시절인 2004년에 최초 현충시설을 설치, 추모행사를 지내며 참전용사의 희생정신을 기렸다. 개미고개에 설치된 기념비는 미군, 한국인 등 전사자들의 넋을 기리고자 세종시에서 설치했다.
이후 보강사업이 추진됐다. 지난해 9월부터 국비 3억원과 시비 5억5000만원을 들여 자유평화의 빛 기념비를 세웠다. 개미고개에서 치열한 전투로 숨진 한국인, 미군의 영혼을 달래기 위한 기념비가 역사의 상처를 기억하고 있다.
세종시 김영길(58) 복지기획담당 사무관은 “젊은이들이 꽃다운 나이에 소중한 생명을 잃은 곳”이라며 “국가보훈처에 수시로 요청했다. 국비와 시비를 투입해 자유와 평화의 빛을 세웠다”고 밝혔다.
그는 “매년 7월 11일에는 전사자들의 넋도 위로해주고 있다. 학생들 안보교육의 장으로도 활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세종시 전동면 일원 개미고개에 설치된 전적지 기록물. 손인중 기자 |
개미고개 주변 225무명고지, 115무명고지, 110무명고지 일대에서 유해발굴작업에 나선다. 지난해도 유해 20구, 유품 270점을 발굴했다. 그동안 유해발굴을 통해 미군 유해 3구를 수습해(2011년 1구, 2012년 2구) 미군측에 인도해주기도 했다.
이러한 성과가 가능했던 것은 무엇일까.
정확한 전적지에 대한 기록과 관리가 있어 이어진 성과로 판단할 수 있다. 세종시의 역사를 기록하려는 적극적 의지가 직·간접적으로 성과를 내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국방부도 유해를 찾고자 개미고개 전투를 목격한 주민들 증언, 기록을 꾸준하게 수집하고 있다.
조성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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