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을 맞은 대전현충원에는 다양한 사연을 지닌 참배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또 묘비마다 한 송이 꽃과 한잔의 술이 놓인 채, 고인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친 유족들의 애타는 사모곡이 울려 퍼졌다.
오전 10시께 현충원 내 사병묘역.
한 백발의 노신사가 한순섭 육군하사의 묘비를 조심스레 매만지고 있었다. 노신사는 한 하사의 동생인 한양섭(80)씨.
한씨에 따르면 당시 24세의 나이에 고 한순섭 하사는 국군에 징집돼 제주도에서 훈련을 받았다. 하지만, 북한군 남하를 막으라는 명령에 훈련도 끝마치기 전, 한 하사는 동료와 함께 강원도 고성 지역 전투에 투입됐다. 그 결과 한 하사는 다시는 동생 한씨와 만나지 못했다.
한씨는 “형과 다섯 살의 나이 차가 있었지만, 바로 윗 형이라 참 우애가 깊었다”며 “영장을 받은 뒤 입대하는 형의 모습이 마지막이었다”고 밝혔다.
한씨는 이어 “형이 손도 보지 못한 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들었을 당시 참담한 심정뿐이었다”며 “보고 싶은 마음이 커, 자식들과 함께 이른 아침부터 광주에서 현충원을 찾았다”고 덧붙였다.
비슷한 시각, 애국지사 묘역에서는 한 모녀가 함께 준비한 제사 음식을 꺼내며 봉분 내 자란 잡초 등을 제거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신운석 지사의 증손녀 신순용(80)씨와 고손녀 이중남(59)씨. 신씨는 “증조부께선 항일운동 중 일본군에 붙잡혔다가 동료를 발설하지 않으려고 혀를 깨물어 자결하실 정도로 강직한 분이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신씨는 딸인 이씨와 함께 다른 곳을 향해 움직였다. 두 사람이 향한 곳은 사병묘역. 이곳을 찾은 이유는 신씨의 남편인 이재서 용사가 6·25 참전용사로 안장됐기 때문.
이씨는 “부친은 6·25전쟁에서 맞은 부상에 평생을 고통스럽게 사셨다”며 “6년 전 작고하실 때 자식으로서 부친을 제대로 못 모신 듯해 죄송스러울 뿐”이라고 말했다.
이날 현충원에는 유족들 외에도 시민들의 추모 발길도 이어졌다.
천안함 46용사 고 박경수 해군상사 묘 앞에서는 한 중년 여성이 참배하고 있었다.
제2연평해전 용사추모회원으로 활동 중인 류미화(여·41)씨. 류씨는 “박 상사는 제2연평해전 때 생존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며 “안타까운 심정뿐”이라고 말했다.
류씨는 이어 “천안함 용사들만큼 제2연평해전 용사들도 나라를 위해 숨진 이들인데 최근 이들이 잊혀지는 듯해 안타깝다”며 “천안함 용사 묘역처럼 한 곳에 합장돼 있으며 좋겠다”고 희망했다.
강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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