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미선 편집부장 |
유럽과 아시아 문명이 격하게 버무려진 그곳에서 가장 참을 수 없던 불편함은 날씨, 문화, 습관, 정체성도 아닌 '먹을 것' 이었다.
지구에 존재한다는 20억 마리의 돼지들은 다 어디에 숨어버린 걸까.
퍽퍽한 소고기와 빵을 뜯으면서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가장 먼저 삼겹살과 돼지김치찌개를 찾으리라 외쳤던 사람은 과연 필자 뿐이었을까.
동-서양이 맞물린 역사의 흔적 속에 이슬람과 기독교의 찬란한 유적들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데 단지 '먹을 것'에 대한 불만이라니, 심미적이라고 변명하기엔 너무나 동물적 의식이 아닌가.
덕분에 '먹을것'으로만 취급했던 '불쌍(?)한 돼지'에 대한 사고의 폭을 넓혀 문화적, 혹은 나라마다 다른 돼지의 가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사전적으로 볼때 돼지는 '돼지속의 동물로, 고기를 이용할 목적으로 기른다'고 정의돼 있다(두산백과 참조). 영어로는 pig·hog·swine 등으로 쓰이고 수퇘지는 boar, 암퇘지는 sow로 표현한다. 한자어로는 저(猪)·시(豕)·돈(豚)·해(亥) 등으로 적는다.
예부터 우리나라에선 돼지를 '복'을 상징하는 동물로 고구려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큰 제사의 제물로 쓰였다. 만약 돼지를 꿈에서 만난다면 '대박'을 확신하며 이튿날 복권을 사러 갈 것이다. 그만큼 신성한 존재이자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매력적인 동물로 여겨지고 있다.
반면, 개인적인 의미의 돼지는 채식주의자나 이슬람인들의 지탄을 받을지도 모르지만 '단백질과 지방이 환상적으로 조화된 인류의 대표적 먹을거리'다.
신성시 했다는 동물을 잡아먹는 인간이라니…. '꼬마돼지 베이브'가 인간의 음식이 될 위기로부터 극적으로 탈출하는 모습에 감동하며 '베이컨이 든 버거'를 씹어 먹는것 같은 양면적 느낌이 들기도 한다.
터키는 헌법으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며 종교가 정치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슬람교를 믿고 생활양식 깊숙한 곳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나라다. 이슬람교 경전인 코란에서는 '죽은 동물의 고기, 피, 돼지고기는 알라가 아닌 다른 사악한 신들에게 바쳐지는 제물이기에 먹지 말아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종교와 율법을 어길 무슬림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고온 건조한 사막기후가 돼지 사육에 부적합했던 배경도 있다.
음식에 대한 종교의 개입을 대면하니 '인간은 모든 동물을 먹어도 된다'고 암묵적으로 허락한 구약성경의 메시지가 반갑다. 물론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라고 쓰여진 구절을 대입하며 '지배'가 동물을 먹는 행위도 포함된다고 단언하는 것은 논쟁거리가 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적당히 발달된 송곳니는 고기를 뜯기 위한 것이라고, 잡식동물인 인간은 고기를 먹어야 힘이 난다고 주장하기엔 '동물성 단백질 과다로 인해 피가 끈적해지고 탁해져 혈액순환이 정체되며 당뇨병과 고혈압, 동맥경화 등 혈관성 질환… 기타등등' 연구 결과들이 암울하게 한다.
잔 카제즈 저 『동물에 대한 예의』에서는 인간이 새로운 환경과 능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전한다. 그래서 기념일 식탁 한가운데에 더 이상 죽은 동물의 몸을 올려놓지 않아도 되는 그런 세상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하고 있다.
지나치다 느낄 정도로 육식을 선호했던 부류지만 난생처음 '채식주의와 동물의 권리'에 대해 몰입해 본 책이기도 하다. 물론 당장 육식을 끊고 채식주의자가 되려했던 것은 아니다. 아니, 될 수 없었다는게 맞겠다.
동물성 지방을 전혀 섭취하지 않는 비건(vegan)으로 살다가 척추가 내려 앉고, 퇴행성 관절질환과 우울증을 겪었다는 사례들에 주목하며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건강을 위한 몸에 잘 맞는 음식을 섭취하는 것,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 아닐까.
결국 '먹어도 돼지, 안 돼지?'선택의 기로에선 '불쌍한 돼지'의 운명은 행복한 삶과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스스로의 합리적인 판단에 맡겨두기로 한다.
*상기 글의 제목은 문법상 '되지, 안 되지'가 올바른 표현입니다. 은유적 표현의 제목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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