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군이 한국전쟁 당시 유해를 수거하는 모습<왼쪽>. 전쟁 당시 한국인 소녀가 참전미군들에게 초콜릿 등을 달라고 하는 모습. |
본보는 휴전 60주년을 맞아 '한국전쟁 멈춘 60년 기억, 상처를 더듬다'라는 주제로 한국전 참전 미군인 어빙 포츠맨티어(Irving Pozmantier)씨와 참전유공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지역 내 전쟁의 상처와 전적지 실태를 살펴봤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 전쟁의 상처, 기록이 필요하다.
2. 기억조차 희미해지는 논산포로수용소
3. 잊혀가는 대전형무소 우물터
4. 치열했던 격전지, 세종시 개미고개
5. 60년만에 한국 찾은 참전 미군 어빙 포츠맨티어
6. 취재를 마치며
역사적 사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기록이다. 전쟁은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기억해야 할 우리의 아프고도 소중한 역사다.
6·25전쟁으로 77만여명의 한국군과 유엔군, 200만여명의 북한군이 전사하거나 다쳤다. 민간인피해도 249만여명에 달한다. 이러한 역사는 기록에 의해 후손들에게 전해진다.
전쟁을 경험했던 세대들이 사라지면 6·25라는 비극이 기억 속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 국가와 지자체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사이, 우리 기억에서 잊혀질 우려가 크다.
6·25전쟁 당시 미군으로 참전한 어빙 포츠맨티어(84·참전 당시 23세)씨가 미국 텍사스에서 중도일보 기자에게 보내온 이메일 한 통으로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가는 전적지 취재가 시작됐다.
하지만, 이번 취재를 시작하며 느낀 점은 '안타까움'이다.
▲ 참전미군인 어빙 포츠맨티어씨가 60년만에 한국을 방문, 지난달 29일 대전 중구 중촌동 대전형무소 우물터를 찾아 당시를 회상하고 있다. 손인중 기자 |
당시 미군 392 영현중대에서 근무했던 어빙은 잃어버린 전우를 찾고자 60년만에 한국을 찾았다. 그가 지역에서 기억하는 곳은 개미고개, 논산포로수용소, 대전형무소 우물터 등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던 곳이다.
대전형무소 우물터는 당시 1000명이 넘는 사람이 사망한 곳으로 현재도 우물터가 현장에 남아있다. 또 형무소 내 망루가 아직도 전쟁의 상처를 간직한 채 쓸쓸하게 현장을 지키고 있었다.
지금부터 60여년전 기자가 본 장소에서 소중한 생명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일부는 우물에 수장된 사실도 확인되고 있다.
하지만, 관리와 기록문제를 놓고 볼 때는 아쉬움이 크다.
한국자유총연맹이 유가족과 함께 위령제를 지내지만, 우물의 무너진 지붕 위에 자라난 풀이 전적지에 대한 우리의 실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논산에 포로수용소가 있었던 사실은 잘 알려지지도 않았다.
군 당국 등을 취재했지만, 논산 포로수용소가 존재했다는 사실만 확인될 뿐 구체적 내용은 확인되지 않았다. 과거 참전했던 유공자들의 입을 통해서만 전해져 내려올 뿐이다.
현장에도 논산포로수용소를 나타내는 표지석 하나 찾아보기 어려웠다. 기록이 없이 잊혀져 가고 있는 것이다. 쓸쓸한 대한민국의 전적지에 대한 기록이다. 전쟁에 대한 기록이나 흔적이 생각보다 정리가 안 된 곳이 너무나 많았다.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세종시는 미군과 북한군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개미고개에 위령비를 세워 넋을 기리고 있다.
개미고개는 국방부 유해발굴단에서 발굴사업으로 유해를 찾는 곳이기도 하다. 지난해도 아군, 미군 유해 수십 구를 찾아내는 성과를 올렸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면 60년만에 유해를 발굴하는 성과가 가능했을까. 기억과 기록이 있어 가능한 성과다. 아픈 상처지만 전적지에서 유해발굴 성과는 개미고개라는 전적지 기록이 있어 가능했다.
군사편찬연구소 조성훈(51) 박사는 “역사의 현장에 대한 관리와 기록이 필요하다. 표지석이라도 설치해야 한다”며 “정전 60주년의 의미 있는 해를 맞아 정부와 지자체의 관심이 필요하다. 기록을 남겨 후손들에게 교육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조성수 기자 joseong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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