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혁]'밥'vs'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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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혁]'밥'vs'돈'

[시사 에세이]장동혁 대전지법 판사

  • 승인 2013-06-03 14:15
  • 신문게재 2013-06-04 20면
  • 장동혁 대전지법 판사장동혁 대전지법 판사
▲ 장동혁 대전지법 판사
▲ 장동혁 대전지법 판사
나는 집사람과 쇼핑하는 시간이 가장 힘들다. 분명 아이 가방을 산다고 백화점에 간 사람이 6층으로 바로 올라가서 가방을 고르면 될 것을 지하 1층부터 지상 6층까지 매장마다 들른다. 등산은 5분만해도 힘들다는 사람이 쇼핑은 5시간을 하고 나서도 집에 오면 쇼핑한 물건을 풀어 놓고 2시간이나 구경할 힘이 남아돈다. 혹자는 남자들은 옛날부터 수렵생활을 해왔고 여자들은 채집생활을 해서 그렇다고 이론적인 설명을 해보지만 솔직히 썩 느낌이 잘 오지 않는다.

이혼 소장을 들여다보면 아내들의 기억력이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날 시댁에서 서러움을 받은 일부터 소장 내는 날까지의 일들을 날짜까지 적어가며 깨알같이 적어낸다. 마치 서운한 일을 당할 때마다 이혼을 대비해서 메모를 해 둔 것 같이 느껴진다.

이에 반해 남편들은 날짜가 기억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연도조차 잘 기억하지 못한다. 결혼해서 지금까지 밥상 한 번 제대로 차려준 적이 있느냐는 말 한마디 하고 나면 별로 적을 것이 생각나지 않는 모양이다.

그럼 이혼 사유 중 1위는 무엇일까? 통계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사건을 하면서 일일이 세어본 것도 아니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남편들의 불만은 '밥', 아내들의 불만은 '돈'이 두드러진다. '밥'과 '돈', 이렇게 표현하니까 너무 세속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나는 '밥'과 '돈'이 단순히 밥과 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남편들이 직장에서 상사로부터 온갖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참고 견디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남편들은 직장에서 그렇게 시달리다가도 집으로 향할 때는 마음속에서 이런 상상을 할 것이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면 사랑하는 아내가 가족을 위해 맛있는 저녁을 준비하고 있고, 아이들은 옆에서 숙제를 하면서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

그런데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는데 싱크대에 그릇이 수북이 쌓여 있고, 테이블에는 아이들이 라면을 끓여 먹은 냄비가 그대로 널려 있다. 아침부터 나간 아내는 어디에 갔는지 아무도 모르고 연락도 없다. 그 때 남편들이 느끼는 감정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밥'이다.

이제 아내의 입장으로 돌아가 보자. 결혼하면서 많은 아내들은 비록 스스로 맞벌이를 하면서 돈을 버는 입장에 있다 하더라도 남편이 벌어다 준 돈으로 가족들을 위해 알뜰히 사용하고 돈을 쪼개가며 저축도 하고 살림도 불려가는 모습들을 꿈꾸게 될 것이다. 그런데 남편은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 하지 못하고 경제적으로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면 결혼에 대한 아내의 꿈은 한순간에 사라진다. 그것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돈'이다.

나는 그래서 식탁이 중요하다고 믿고, 아내들에 대한 경제적인 학대가 그 어떤 학대보다 가혹하다고 믿는다. 누군가 내게 준 남편과 아내의 십계명에 이런 내용이 있다. '가정경제는 아내에게 일임하여 아내가 보람을 갖게 하라' '음식 준비에 정성을 기울이고, 남편의 식성에 유의하라. 식탁은 가정의 화목을 도모하고 대화를 나누는 친교의 광장이며, 하루의 피로를 풀고 내일을 꿈꾸는 희망의 산실이다.'

'밥'과 '돈'은 단순히 밥과 돈이 아니다. 그것은 남편과 아내가 결혼생활을 통해 얻고자 하는 소망을 내포하고 있으며, 서로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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