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경자 충남여성정책개발원장 |
가뜩이나 머리가 어지러운데 인터넷에는 기막힌 사건들이 줄지어 올라오고 있습니다. 친딸을 6년간 성추행한 사건, 70대 노인이 친구의 며느리의 언니(베트남여성)를 성폭행한 사건, 외국(스페인)에서 일어난 사건이긴 하지만 동서지간의 두 남자가 서로의 딸을 교환하여 성폭행한 사건 등 이해되지도 용서되지도 않는 사건들이 끝 모르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윤 전 대변인의 사건은 전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행해지고 있고 시민의식이 낮고 가부장적인 나라에서 더 많이, 더 노골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성폭력 사건들과 맥을 함께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 아직도 만연해 있는 여성(성)에 대한 남성우월주의, 야만성 등이 그 배경이라고 봅니다.
바쁜 일로 옆에 누가 있는지도 몰라야 할 대통령 수행 대변인이 딸 같은 인턴 여성을 희롱하며 추행을 저질렀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것을 단지 '공직기강의 해이'로만 돌릴 수는 없습니다. 성희롱으로 고위 공직자가 혼 줄이 난 사례가 많았건만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고위직 남성들에 의한 성추행 사건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 남자들이 나쁜 것'이 아니라 '재수가 나빴을 뿐'이라는 인식이 아직도 남성사회에서는 횡행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요? 대학생들과의 자리에서 언어 성희롱을 서슴지 않던 전직 국회의원이 '버젓이' 방송에 출연해 활약하는 것을 보면 성희롱을 '아무것도 아닌 것' '그럴 수 있는 것'으로 인식하는 남성 중심의 성문화가 여전히 우리를 지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폭력특별법이 만들어진지도 20년 가까이 되건만, 우리 국민들의 성의식은 아직도 매우 성 차별적이며 여성인권에 대한 의식은 매우 천박합니다. 성폭력사건이 날 때마다 피해자가 젊은 여성일 경우에는 은근히, 때론 노골적으로 피해자를 의심합니다. 가장 쉽게 나오는 말은 '왜 그 시간에 거기에 갔어?'입니다. 조금 더 나아간다면 '성폭력 확실해?'가 되겠지요. 피해 여성의 입장이 되지 못하는(되지 않는) 우리의 한계입니다. 인구의 절반이 여성이고 남성 역시 여성인 엄마와 아내, 그리고 딸이 있는데도 우리는 성(性)이 관련되면 왜 이리 고집스럽게 '남성입장'에 서는 것일까요? 아마 '여성입장'이 비주류이기 때문에 여성조차 주류인 '남성입장'에 서려는 것이 아닐까요? 남이런 생각의 배경에 아직도 그 고전적인 생각, 즉 '남성은 이성적 존재, 여성은 육체적 혹은 성적인 존재'라는 이분법이 살아있는 것은 아닐까요?
지난 몇 년간 정부에서는 성 평등 사회를 이루기 위한 전략으로 성 주류화(性 主流化, gender mainstreaming)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젠더관점의 주류화는 물론 여성의 주류화가 포함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남성만이 아니라 여성도 함께 '주인'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성이 이 사회의 '주인', '남성과 동등한 시민'으로 인식되지 않는 한, 여성(성)에 대한 무례함(언어적, 신체적 등)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은 바뀌어 가는데 우리의 의식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얼마전 대법원은 부부간에도 강간이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큰 변화입니다. 여기에 대해 많은 저항이 있겠지만 이러한 판결은 세계적 추세에 부응하는 것이고 우리나라 역시 이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사회지도층 남성중에 아직도 이러한 변화에 둔감한 분이 많이 계신듯하여 매우 안타깝고 유감입니다. 선진국으로 가는 길은 의식의 변화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청와대 전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사건이 사회지도층 남성들이 경각심을 갖는 계기가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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