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립기념관 윤소영 연구원은 근대에 편찬된 일본 지리서 및 지리교과서는 독도를 일본땅으로 인식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관련 자료를 공개했다. 사진은 일본 문부성이 1905년 발간된 '소학지리용 신지도'<사진 왼쪽>와 1908년 발간한 '삼상소학교용 소학지리부도'다. 1905년까지는 독도가 일본땅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1908년엔 한국까지 일본과 마찬가지로 붉은색으로 칠하여 일본의 침략성을 나타내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윤소영 연구원은 28일 열린 월례연구발표에서 '근대 일본 관찬·사찬 지리서에 나타난 독도 인식' 논문을 발표하고 이같이 주장했다.
이 자리에서 윤 소장은 일본 정부와 지리학자들이 1905년 시마네 현에 독도를 편제하기 이전 일본 근대 관·사찬 지리서와 지리 교과서를 검토, 분석한 결과 일본 정부나 지리학자들이 독도를 일본의 영토로 인식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근거로 근대 일본 초기의 관찬 지리지인 태정관(메이지 유신 후 설치된 최고 행정기관) 정원 발행 '일본지지제요'(1874)에는 죽도(울릉도)와 송도(독도)가 시마네현 오키 부속섬과 별도로 서북방향에 있다고 적었으며, 이 내용은 문부성이 발행한 지리 교과서 '일본지지략'(1874)과 이 책의 저자인 오츠키 슈지(大槻修二)가 저술한 '일본지지요략'(1875) 등에도 계승됐다고 제시했다.
당시 지적조사 목적이 단순히 육지뿐만 아니라 멀리 떨어진 도서에 대해 조사, 일본 영토범위를 확정 짓는 작업과 맞물린 작업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들 지리서 등은 송도와 죽도를 언급해 어로의 장으로만 접근했을 뿐 일본의 오키섬의 부속섬과 별도로 기술돼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일본지지제요는 메이저 유신 이후 최고 행정기관인 태정관에서 황국지지 편찬사업을 벌이다 1873년 오스트리아 빈 박람회에 출품된 일본 정부의 지지여서 독도영유권문제에 중요한 실타래가 되고 있다.
게다가 1905년 2월 독도의 시마네 현 편제 후 '지학잡지'에 글을 연재한 지리학자 다나카 아카마로(田中 阿歌麻呂)는 “메이지 초기 태정관 정원이 본방 영유임을 인정하지 않아 그 후 출판된 지도에는 그 소재도 표시하지 않았다”고 적어 메이지 정부가 독도를 일본의 영토로 인식하지 않았다는 점을 다시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또 독도는 1905년 발간된 '소학지리용 신지도'에 일본 영토로 포함되지 않았으나 1908년 문부성이 발간한 '삼상소학교용 소학지리부도'는 한국까지 일본과 마찬가지로 붉은색으로 칠하여 침략성을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천안=김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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