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원묵 한밭대 총장 |
한 시즌에 16번의 경기를 치른 후 16팀이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데 보통 AFC(아메리칸 리그)에서 8팀, NFC(내셔널리그)에서 8팀이 결승리그에 올라온다. 꼴찌 네 팀은 와일드카드라 부르는데 패자 부활전을 치르는 셈이다. 작년 슈퍼볼에서는 꼴찌의 반란이 있었다. 와일드카드로 올라온 꼴찌 뉴욕 제츠가 우승후보 0순위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를 28-21로 이긴 것이다. 뉴잉글랜드는 정규리그에서 제츠를 45-3으로 박살낸 강팀이었다.
이처럼 스포츠에서 패자부활전은 감동적 드라마를 만들기 때문에 많은 팬들로부터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불러일으킨다.
마찬가지로 인생에서 많은 실패를 딛고 일어선 성공이 더더욱 값지고 아름다운 것임에도 우리 사회에는 아쉽게도 패자 부활제도가 거의 없어 “인간승리”의 감동드라마를 보기 힘들다. 선진 사회는 실패를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으로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발전에 독이 되는 부정적인 실패는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겠지만 약이 되는 긍정적인 실패는 관용과 격려를 통해 패자부활전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
요즘 우리 사회는 입시, 취업, 창업 등 젊은이들이 꿈을 일구어가는 과정에서 단 한 번의 실패가 그들의 꿈을 꺾어버리는 토너먼트 형태를 갖고 있다.
예를 들면 대입수능시험을 통한 줄 세우기 대입제도, 스펙과 학벌위주의 대기업 취업제도는 수많은 젊은이들을 낙오자로 만드는 대표적인 토너먼트 제도다. 이것은 사회의 왜곡된 학벌중심주의와 교육 철학의 빈곤 그리고 지나친 교육열이 만들어낸 결과라지만 더 큰 문제는 패자 부활전이 없고 계층 간, 직업 간, 분야 간 연결 사다리가 없기 때문에 많은 젊은이들이 좌절하고 꿈을 꺾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일류대 진학에 실패한 학생은 영원히 일류대 문턱에 도달하기 힘들고, 원하는 기업의 입사에 실패하면 영원히 그 꿈을 이루기 힘들다. 선진국처럼 문학을 꿈꾸다 엔지니어가 된다거나 사회학을 공부하다 의대로 갈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며, 지방의 작은 전문대학(community college)에서 공부하여 하버드, 스탠퍼드 대학에 진학하거나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마크 주커버그처럼 대학을 다니지 않았어도 창업을 통해 대기업의 총수로 성공할 수 있는 사회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어느 신문기사의 풍자적인 콩트 하나가 우리사회를 잘 말해주고 있어 소개한다. 만약에 에디슨, 아인슈타인, 퀴리 부인이 한국에서 살았다면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에디슨은 학업을 중퇴했으니 학벌중심사회에서 특허 한 건 출원 못한 룸펜이 되었을 것이고, 아인슈타인은 현행 입시제도 상 수학 물리만 잘 하고 국어 영어점수가 낮아 일류대학 진학에 실패했을 것이며, 퀴리부인은 남성 편향적 사회제도를 극복하지 못해 봉제공장 여공이 됐을 것이라고.
사울 싱어가 지은 『창업국가』에 따르면 이스라엘이 작은 국가임에도 일류 창업국가로 발전한 데에는 그들 내면에 용기와 도전정신으로 대표되는 후쯔파(Chutzpah) 정신과, 행동주의와 실용주의로 해석되는 비추이즘(Bitzu'ism)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정신들이 잘 발전된 패자부활제도와 정교하게 짜인 계층 간, 직업 간의 사다리를 통해 사회제도적으로 뒷받침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박근혜 정부가 국정지표로 삼은 창조경제를 위해서는 우리 사회에 패자부활전이 반드시 필요하다.
산업의 융합과 창의적 기술 개발은 젊은이의 도전정신과 자유로운 창업활동을 통해서 활성화 될 수 있다. 젊은이들이 꿈을 이루고 실업의 고통에서 해방되려면 실패의 가치가 존중받고 패자부활전을 통해 인간승리의 드라마가 많이 나타나야 한다. 대학, 산업, 기관 등 우리 사회의 모든 곳에 자유로운 생태적 통로를 만들고 패자 부활제도가 필요하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토머스 에디슨의 말처럼 실패는 패배가 아니라 또 다른 성공을 위한 중요한 밑천이기 때문이다. 창조사회는 실패의 가치와 문화를 다시 정립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