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혜선]마음의 기억과 감사

  • 오피니언
  • 사외칼럼

[주혜선]마음의 기억과 감사

[교육단상]주혜선 당진 계성초 교사

  • 승인 2013-05-21 14:25
  • 신문게재 2013-05-22 20면
  • 주혜선 당진 계성초 교사주혜선 당진 계성초 교사
▲ 주혜선 당진 계성초 교사
▲ 주혜선 당진 계성초 교사
여기저기 연둣빛 설렘이 커지는 춥지도 덥지도 않은 이 아름다운 계절 5월에 학생 등교 지도를 위해 교문앞 교통지도가 배정되어 참으로 감사한 마음이 가득했다. 그런데 아파트 주차장을 빠져나가려는 순간, 봄비답지 않게 거친 바람과 함께 흩날리는 빗줄기로 그 감사한 맘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하필이면 그 많고 많은 날 중에 내가 교통지도 서는 날 비가 오다니…'하는 맘이 불쑥 올라왔다. 그렇게 속으로 투덜대며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동동거리며 교문에 도착했을 때 벌써 배움터 지킴이 아저씨는 학부모 차량 진입 안내 표지판을 도로에 세워 두고 교통지도를 하고 계셨다. 비가 오니 여느 때보다도 더 일찍 출근하셔서 아이들을 위해 묵묵히 교통지도를 하고 계시는 배움터 지킴이 아저씨의 노란 우비를 입으신 모습은 곰돌이 푸 만큼이나 친근하고도 감사해 나의 투덜거림을 잠재웠다.

한 손엔 우산을 또 한 손엔 교통지도 깃발을 들고 서 있으려니 한 어머니가 아들의 손을 꼭 잡고 내 앞으로 지나가셨다. 그 어머니는 아들이 비 한방울이라도 맞지 않게 하려는 듯 본인의 몸은 오는 비를 다 맞고 있는데도 우산은 온통 아들 쪽으로 향해 있었다. 그 어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불현듯 나의 부모님도 나를 저렇게 키우셨음이 새삼스레 생각나는 것이 아닌가.

“자식은 맛난 것을 먹고 배불러 하고 부모는 먹는 것을 보고 배불러 합니다. 자식은 제 몸에 탈이 나서 아파하고 부모는 대신 아파 줄 수 없어 아파합니다. 자식은 자기 잘 될 꿈을 꾸고 부모는 자식 잘되기를 꿈꿉니다”라는 '효 캠페인' 광고처럼 내 부모님도 나를 그렇게 키우셨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는 나의 부모님이 가장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계절이 바로 5월이다. 나의 꿈을 위해 좀 더 넓은 곳에서 공부하고 싶었던 나는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도시의 고등학교에 입학해 하숙집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일요일 오후만 되면 부모님과 헤어지는 것이 슬퍼 대문 앞을 나서자마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런 딸을 너무나도 안쓰럽게 여기셨던 나의 부모님은 하룻밤이라도 더 곁에서 딸을 재우고 먹이고 싶어 하셨다. 그래서 새벽부터 일을 시작하셔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귀한 새벽 시간을 월요일만 되면 왕복 2시간 동안 운전을 하시는데 쓰셨다. 인자한 미소로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빛이 참으로 따뜻했던 나의 초등학교 1학년 때 선생님처럼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겠다는 딸의 꿈을 위해….

지금 나는 그토록 닮고 싶었던 초등학교 1학년 때 선생님처럼 되기엔 한없이 부족하지만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부모님의 자식에 대한 사랑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이것은 나의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께서 나에게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라는 단단한 꿈의 씨앗을 심어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배움터 지킴이 아저씨처럼 주변에서 우리를 간접적으로 돌봐 주시는 분들이 계심을 잘 모르듯이, 우리 아이들이 부모님께서 나를 위해 헌신과 사랑을 베풀고 계심을 잘 모르듯이, 우리 아이들이 자신을 가르치고 계시는 선생님들께서 본인들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고 계신지 잘 모르듯이 나도 어릴 땐 그랬다. 그런데 불혹의 나이에 다다른 올 5월은 그것이 아님을 자식을 키우면서,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많은 고민에 휩싸이면서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올 5월은 연둣빛 설렘 만큼이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주변에 계신 분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새록새록 솟아난다. 불혹의 나이에 늦게 철이 들고 있나보다. 우리 아이들이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에 감사하며 더없이 행복하고 소중한 시절을 보내길 기도한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유성 둔곡 A4블록 공공주택 연말 첫삽 뜨나
  2.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3. [기고] 공무원의 첫발 100일, 조직문화 속에서 배우고 성장하며
  4.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
  5. JMS 정명석 성범죄 피해자들 손해배상 민사소송 시작
  1. 대전보건대, 대학연합 뉴트로 스포츠 경진·비만해결 풋살대회 성료
  2.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3. 한국자유총연맹 산내동위원회, '사랑의 반찬 나눔' 온정 전해
  4. 구본길에 박상원까지! 파리 펜싱 영웅들 다모였다! 대전서 열린 전국 펜싱대회
  5. 대전시, 여의도에 배수진... 국비확보 총력

헤드라인 뉴스


"뜨끈한 한 끼에 마음도 녹아"… 함께 온기 나누는 사람들

"뜨끈한 한 끼에 마음도 녹아"… 함께 온기 나누는 사람들

27일 낮 12시께 눈발까지 흩날리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대전 중구 한 교회의 식당은 뜨끈한 된장국에 훈훈한 공기가 감돌았다. 식당 안에서는 대전자원봉사연합회 소속 자원봉사자들이 부지런히 음식을 나르며 어르신들을 대접하고 있었다. 150여 명의 어르신이 빼곡히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기다렸다. 얇은 패딩과 목도리 차림인 어르신들은 강한 바람을 뚫고 이곳까지 왔다고 한다. "밥도 같이 먹어야 맛있지." 한 어르신이 식당에 들어서자 자원봉사자가 빈자리로 안내했다. 이곳에 오는 대부분은 75세 이상의 독거 노인이다. 매일 혼..

"홈 승리하고 1부 간다"… 충남아산FC 28일 승강전 홈경기
"홈 승리하고 1부 간다"… 충남아산FC 28일 승강전 홈경기

창단 후 첫 K리그1 승격에 도전하는 충남아산FC가 승강전 홈경기를 앞두고 관심이 뜨거워 지고 있다. 충남아산FC는 28일 대구FC와 승강전 첫 경기를 천안종합운동장에서 홈 경기로 치른다. 홈 경기장인 아산 이순신종합운동장 잔디 교체 공사로 인해 임시 경기장으로 천안에서 경기를 하게 됐다. 승강전은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28일 홈 경기 사흘 후인 12월 1일 대구로 이동해 어웨이 경기를 치른다. 승리수·합산 득실차 순으로 최종 승격팀을 정하게 되며 원정 다득점 규정은 적용하지 않아 1·2차전 결과에 따라 연장전 또는 승부차기까지..

충청권 4개시도 "2027 하계U대회 반드시 성공"… 제2차 위원총회
충청권 4개시도 "2027 하계U대회 반드시 성공"… 제2차 위원총회

충청권 4개 시도가 2027년 열리는 하걔세계대학경기대회 성공 개최를 재차 다짐했다. 2027 충청권 하계세계대학경기대회 조직위원회(위원장 강창희, 이하 조직위)는 27일 대전 호텔 ICC 크리스탈볼룸에서 2024년 제2차 위원총회를 개최했다. 이날 총회는 지난 3월 강 위원장이 조직위원장으로 취임한 이후 처음 개최된 것이다. 행사에는 대전시 세종시 충남도 충북도 등 충청권 4개 시도 부지사와 대한체육회 부회장, 대한대학스포츠위원회 위원장, 시도 체육회장, 시도의회 의장 등이 참석했다. 강 위원장과 조직위원회 위원이 공식적으로 첫..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거리 나설 준비 마친 구세군 자선냄비 거리 나설 준비 마친 구세군 자선냄비

  •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 첫 눈 맞으며 출근 첫 눈 맞으며 출근

  •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