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혜선 당진 계성초 교사 |
한 손엔 우산을 또 한 손엔 교통지도 깃발을 들고 서 있으려니 한 어머니가 아들의 손을 꼭 잡고 내 앞으로 지나가셨다. 그 어머니는 아들이 비 한방울이라도 맞지 않게 하려는 듯 본인의 몸은 오는 비를 다 맞고 있는데도 우산은 온통 아들 쪽으로 향해 있었다. 그 어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불현듯 나의 부모님도 나를 저렇게 키우셨음이 새삼스레 생각나는 것이 아닌가.
“자식은 맛난 것을 먹고 배불러 하고 부모는 먹는 것을 보고 배불러 합니다. 자식은 제 몸에 탈이 나서 아파하고 부모는 대신 아파 줄 수 없어 아파합니다. 자식은 자기 잘 될 꿈을 꾸고 부모는 자식 잘되기를 꿈꿉니다”라는 '효 캠페인' 광고처럼 내 부모님도 나를 그렇게 키우셨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는 나의 부모님이 가장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계절이 바로 5월이다. 나의 꿈을 위해 좀 더 넓은 곳에서 공부하고 싶었던 나는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도시의 고등학교에 입학해 하숙집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일요일 오후만 되면 부모님과 헤어지는 것이 슬퍼 대문 앞을 나서자마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런 딸을 너무나도 안쓰럽게 여기셨던 나의 부모님은 하룻밤이라도 더 곁에서 딸을 재우고 먹이고 싶어 하셨다. 그래서 새벽부터 일을 시작하셔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귀한 새벽 시간을 월요일만 되면 왕복 2시간 동안 운전을 하시는데 쓰셨다. 인자한 미소로 아이들을 바라보는 눈빛이 참으로 따뜻했던 나의 초등학교 1학년 때 선생님처럼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겠다는 딸의 꿈을 위해….
지금 나는 그토록 닮고 싶었던 초등학교 1학년 때 선생님처럼 되기엔 한없이 부족하지만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부모님의 자식에 대한 사랑과 헌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이것은 나의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께서 나에게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라는 단단한 꿈의 씨앗을 심어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 아이들이 배움터 지킴이 아저씨처럼 주변에서 우리를 간접적으로 돌봐 주시는 분들이 계심을 잘 모르듯이, 우리 아이들이 부모님께서 나를 위해 헌신과 사랑을 베풀고 계심을 잘 모르듯이, 우리 아이들이 자신을 가르치고 계시는 선생님들께서 본인들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고 계신지 잘 모르듯이 나도 어릴 땐 그랬다. 그런데 불혹의 나이에 다다른 올 5월은 그것이 아님을 자식을 키우면서,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많은 고민에 휩싸이면서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올 5월은 연둣빛 설렘 만큼이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주변에 계신 분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새록새록 솟아난다. 불혹의 나이에 늦게 철이 들고 있나보다. 우리 아이들이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에 감사하며 더없이 행복하고 소중한 시절을 보내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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