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복지관협회 회장에 당선되자마자 '새롭게! 내일로! 국민과 함께!'라는 주제로 22일부터 3일간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개최되는 '제3회 사회복지관 전진대회'의 성공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최주환 회장을 만나 대전에서 최초로 개최되는 사회복지관 전진대회와 그가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대전 최초로 한국사회복지관협회장 당선되다
-대전에서는 최초로 한국사회복지관협회 회장에 당선되셨는데 소감이 어떠신지요?
“역시 선거는 어렵더군요. 충청지역에서 회장에 출마한다고 했을때, 무모하다고 하는 분들이 있었지만 나름의 계획과 준비를 해왔기 때문에 한번 해볼만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전국에 있는 사회복지관들을 찾아다니면서 지지를 호소하고 사회복지관협회가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설명했습니다.
제가 내세운 것은 크게 6가지입니다. '사회복지관을 위한 법률의 제정', '불합리한 제도의 혁신적 개선', '새로운 사업의 조기정착 지원', '복지환경의 부정적 변화에 대한 공세적 대응', '한국사회복지관전진대회의 성공적인 개최', '존경과 존중의 문화 확산' 등입니다. 그간의 경험과 공통의 과제들에 대한 차분한 설명과 대안 제시가 유권자인 관장님들을 움직인 것 같습니다. 부족한 사람을 선택해 주신 전국의 관장님들에게 감사할 따름입니다. 선거과정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도움을 베풀어주신 분들에게도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한국사회복지관협회는 전국 430여 사회복지관 연합체
-한국사회복지관협회는 어떤 단체인가요?
“사회복지관의 역사는 벌써 100년을 헤아립니다. 사회복지관은 우리나라가 철저하게 가난했던 시절부터 우리 국민과 함께 그 어려움을 헤쳐 나온 민간부문의 대표적인 사회복지시설입니다. 노태우 정부가 영구임대아파트 단지내에 의무적으로 사회복지관을 설치하게 한 이후 사회복지관은 급증해 현재는 전국에 430여곳의 사회복지관들이 있습니다. 사회복지관에서는 아동으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역주민의 욕구를 수렴해 주민이 원하는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사회복지관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매년 약 10만명 정도가 이용하고 있습니다. 전 국민이 1년에 한 번 정도는 복지관을 이용하는 셈이지요.
이곳에는 전문화된 교육을 이수한 사회복지사와 관련 전문가 1만여명이 근무하면서 개별화된 서비스체계를 구축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살기 좋은 지역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 '여가지원서비스'나 '행복한 마을 만들기 운동' 등을 전개하기도 합니다.
한국사회복지관협회는 이 사회복지관들의 연합체입니다. 저희 협회는 '사회복지관의 제도적인 안정성을 굳건하게 확보하는 일'과 '사회복지사들의 처우 개선'에 최우선적인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물론 '사회복지사들의 전문성 향상과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적인 프로그램도 주요 과제죠.”
▲사회복지관 전진대회 오늘부터 대전에서 전국 1만여명 참여
-오늘부터 대전에서 개최되는 사회복지관 전진대회에 관해 말씀해 주시지요.
“한국사회복지관협회는 2년마다 한 번씩 전국의 사회복지관과 사회복지사들이 한 곳에 모이는 전진대회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전진대회의 성격은 '축제와 다짐'인데, 전국에 흩어져 있는 사회복지관들이 반드시 지향해야 할 가치를 공유하고, 흥겨움도 함께 나누는 자리입니다.
지금까지 2번은 서울에서 개최했고 지방에서는 처음으로 대전에서 이 대회를 유치했습니다. 올해 전진대회는 오늘부터 24일까지 3일간 계속됩니다. '새롭게 내일로 국민과 함께'라는 주제로 전국의 사회복지사 1만여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행사입니다.
사회복지관 사업이 예전에는 5개 분야였는데, 올해부터는 3대 기능으로 재편되었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사업에 임하는 우리의 적극적인 자세와 국민 중심의 사회복지관이 되겠다는 당찬 각오가 담긴 주제를 잡았습니다. '공부하는 대회', '즐거운 대회', '품격 있는 대회'로 치를 것입니다.”
▲한국사회복지관협회장으로서의 계획
-한국사회복지관협회장으로서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 주시지요.
“우선, 오늘부터 펼쳐지는 전진대회가 성대하게 개최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관계 당국과 국회, 협찬업체, 지역협회 등을 찾아다니며 협조를 구했고, 긍정적인 답을 얻어냈습니다. 저는 이번 기회에 대전을 방문하는 전국의 사회복지사들에게 대전이 얼마나 아름다운 도시인지 알리는 일에 앞장설 생각입니다. 하반기부터는 전국 복지관들의 최대 현안 사업인 '제도적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입법운동의 공론화'를 위해 힘을 모을 생각입니다.
법은 단순하게 필요성이나 당위론에 기초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의 법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다양한 논의 과정과 치밀한 전략이 필요합니다. 이 일을 위해 관장님들의 지혜를 모으고 입법기관인 국회의 협력을 구하는 일이 계속될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사회복지관협회 자체의 기능 변환과 사회복지사들의 역량을 획기적으로 강화할 수 있는 자체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해 시행할 계획입니다. 개별화된 복지관들의 역량을 모으고 성공 경험들을 함께 공유하는 일도 꾸준히 전개할 예정입니다.
복지환경이 외형적으로는 그럴싸해 보이지만 내용적으로는 아직도 시혜적인 것들이 많아 진정성을 담보해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민을 주인으로 대하지 않고 대상으로 여기는 풍토들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지속적으로 해법을 찾아내는 일에도 역량을 모을 계획입니다.”
-최 회장님의 어린 시절은 어땠는지요.
“저는 2남3녀중 장남입니다. 가정 형편은 그리 넉넉하지 않았지만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한 가정 분위기는 화목했습니다. 제 아버지는 기독교 신앙에 입문한 이후 중환으로 병원에 입원하시기 전까지 36년 동안 단 하루도 새벽기도를 빠지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는 시골교회에서 남들이 하기 꺼리는 일만 도맡아 하셨죠.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어린 저의 눈에는 별로 좋게 보이지 않았지만, 지금은 아버지를 기억할 때 가장 감격스런 일로 남아 있습니다.”
-회장님은 검정고시를 치르셨다지요? 대학시절 전공도 여러 가지고 석사학위도 4개나 되는 이색경력을 갖고 있으신데요.
“여러가지 사정상 고등학교를 마치지 못했기 때문에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검정고시를 통과해야 했습니다. 군대에서 갓 제대한 이후라서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죠. 그래도 저의 꿈이었던 목회자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먼저 대학에 진학하는 일이 급선무였습니다. 그러나 중학교를 졸업한 이후 10년만에 시작하는 공부가 수월할리 만무했습니다.
거의 목숨을 걸다시피 공부한 끝에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대학에 진학하게 됐죠. 저는 원래 목회자의 길을 걷기로 작정했지만 종교개혁자들이 법학을 전공했다는 점에 착안해서 먼저 법학을 공부했습니다.
어려운 가정형편상 장학금을 받기 위해 2학년까지 도서관과 집만 오가는 생활을 했습니다. 다른 것에는 도무지 눈을 돌릴만한 여유가 없던 시절이었죠. 그러던 중 '헌법특강' 시간에 이 사회와 개인의 소중함에 대해서 새롭게 눈을 뜨게 되는 계기를 만났습니다. 새로 부임한 젊은 교수가 눈물을 흘려가며 법학도로서의 사회적 감수성을 강조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로 사회과학연구모임에 참여하게 되고, 이 사회의 여러 부조리한 현실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 때 가슴 뜨겁게 발견한 것이 '인권', '정의', '형평'이었습니다. 지금도 사회생활의 핵심가치로 여기며 살고 있지요.”
▲목회자의 길-김종생 목사와의 만남-사회복지의 길 입문
-신학대학 시절 좋은 친구를 만나셨다죠?
“일반대학을 졸업한 이후 다시 신학대학에 진학해서 원래 이루고자 했던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일반대학에서의 다양한 경험과 함께 신학대학에서의 경험도 각별해서 제 인생의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선 좋은 친구를 만난 것이 첫 번째 축복입니다.
지금은 한국교회 희망봉사단 사무총장으로 있는 김종생 목사와의 만남이 그것입니다. 그는 이미 교회의 역할이 개인의 영적성장에만 국한되어서는 안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와 저는 둘이 나이도 비슷하고 생각도 비슷해서 쉽게 친해졌습니다. 학습모임을 만들고 다짐을 나누면서 교회가 할 수 있는 사회적 역할을 고민했던 시절이었죠.
바로 그 때 발견한 것이 '사회복지'였습니다. 종교적 색채를 최소화하면서 교회들이 사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규범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사회복지현장을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신학대학과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이후, 우리 둘은 각자의 장점을 살려서 김종생 목사는 사회선교훈련에 참여했고, 저는 다시 대학원에 진학해서 법학과 사회복지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로부터 5년 후, 우리는 각각 월평복지관장과 정림복지관장으로 부임하면서 젊었을 때의 다짐을 현실화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물론 시행착오와 좌절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목회자가 사회활동에 전념하는 것을 곱지 않게 보는 시선이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당연할 것으로 여겼던 교회들의 참여가 부족해서 겪었던 여러 가지 어려움도 발걸음을 무겁게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무력감의 무게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우리 둘은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면서 어려움을 이겨내고자 노력했습니다.
김종생 목사는 더 큰 일을 이루기 위해 한국 교계의 가장 큰 봉사조직인 한국교회희망봉사단의 사무총장으로 가게 됐고, 저 역시 지난해까지 대전사회복지관협회장 임기를 마친 후에 올해 한국사회복지관협회장이 되었습니다. 김 목사나 제가 잘나서가 아니라 우리를 믿고 배려해 준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젊었을 때 바라보았던 '인간의 존엄성'과 '정의로운 질서', '형평의 원칙'이 존중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앞으로도 이 길을 겸손하지만 당당하게 가려한답니다.”
대담ㆍ정리=한성일 문화독자부장(부국장)
●최주환 회장은 누구?
최주환 회장은 1956년 전주 출생이다. 전주대 법정대학 법학과, 대전신학대 신학과 및 장로회신학대 신학대학원, 전주대 대학원 법학 석사(헌법 전공), 한남대 행정복지대학원 문학 석사(사회복지 전공), 배재대 I&B대학원 상담심리치료학 석사(성격심리 전공), 한남대 대학원 사회복지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그의 다양한 학습은 사회복지현장에 대입되어 실천적 리더십의 원천이 됐고, 그와 함께 근무하는 직원들의 학습 의욕을 자극해 복지관 직원들이 거의 대부분 석사 이상이다. 최 회장은 정림종합사회복지관 관장, 대전복지재단 이사, 대전사회복지협의회 이사, 대전사회복지관협회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월평종합사회복지관 관장과 한국사회복지관협회 회장, 우송대 겸임교수로 재직중이다. 저서로 사회복지실천과 에니어그램, 사회복지사가 꼭 알아야 할 35가지, 지역사회복지 실천사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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