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년 하버드대 로스쿨 입학을 위해 출국하기에 앞서 온가족이 인천국제공항에서 포즈를 취했다. 사진 왼쪽부터 박성모 박사, 쌍둥이 형제 동수와 형수, 어머니 이정숙씨. |
쌍둥이를 하버드대 로스쿨과 가톨릭의대에 보낸 박성모 전자통신연구원 박사 부부. “조기 유학이나 과외없이 EBS방송을 통해 영어공부를 시켰다”는 이들 부부가 강조하는 '저렴한 교육법'을 들어봤다. <편집자 주>
아들 쌍둥이를 남부럽지 않은 '엄친아'로 키워냈다. 쌍둥이 형 박형수씨는 민족사관고를 졸업, 미국 코넬대를 거쳐 현재 하버드대 로스쿨에 재학중이다. 동생 동수씨는 대전과학고를 거쳐 가톨릭의대를 졸업했다. 이들의 부모, 박성모(51) 전자통신연구원 박사와 이정숙(51) 대전 지족초등학교 교사는 교육비법을 묻는 질문에 'EBS 교육방송을 활용한 저렴한 영어교육'을 강조했다. 'EBS 방송'이 일등공신이라는 것이 이들 부부의 한결같은 이야기였다.
-쌍둥이의 영어교육에 중점을 두게 된 이유가 있었는지요?
“1990년 미국연수를 다녀온 적이 있는데 그 때 영어와 컴퓨터야말로 '세상 사는 인프라(기반시설)'와 같다는 것을 느끼고 쌍둥이에게 두 가지는 꼭 가르치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인 제가 이공계 전공이라 영어에 약한 편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영어에 더욱 신경을 썼던 것 같고, 컴퓨터도 아이들이 4살 때 일찍 사준 편입니다.”
-아이들이 너무 일찍 컴퓨터를 접하면 좋지 않다는 의견도 있는데요.
“저는 컴퓨터를 일찍 시작하는 것에 찬성하는 편이고 아이들이 컴퓨터 게임을 하는 것도 좋다고 봅니다. 게임을 하면 손가락을 많이 쓰게 되고 두뇌개발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컴퓨터 게임에 접하게 하고, 밤늦게 게임해도 내버려두는 편이었는데, 아이들 스스로 게임시간을 조절하고 절제할 수 있었습니다.”
-쌍둥이 모두 국내에서 고등학교까지 졸업했습니다. 조기유학 없이 영어를 익힌 비법을 말씀해주시죠.
“열심히 하면 유학 보내지 않고, 한국에서도 할 수 있습니다. 저희 부부의 경우에는 아이들 엄마가 같이 공부하면서 가르쳤습니다. 어려서는 늘 영어 테이프를 틀어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익숙해질 수 있도록 했습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영어동화를 하루 2쪽씩 읽고 외우게 했습니다. 초등 6학년부터는 EBS교육방송을 들으며 영어 내용을 받아 적게 했는데 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영어 공부의 비법을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한다면 첫째, '외워라', 둘째 '받아써라', 셋째 '표현해라'라고 생각합니다.”
-부모가 틀을 잡아줬다고 하지만 아이들이 방송을 들으면서 스스로 받아적기를 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 점에서 고마운 게 아이들이 스스로 노력했다는 점입니다. 공부가 취미이자 특기였습니다. EBS를 듣고 받아쓰기를 할 때도 완벽하게 받아 적을 때까지 수없이 듣기를 반복했는데 억지로 시켜서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서 자라”는 말은 했어도 “공부하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잠도 부족한데 공부한다고 자꾸 혼내니까, 하루는 아이가 서운했던지 눈물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버드대 로스쿨 500명 입학생 중에 한국에서 고교를 다닌 경우는 형수 1명뿐이었습니다. 스스로 노력해준 아들에게 더없이 고맙습니다.”
-과외를 시켜본 적은 없나요?
“집 앞 학원은 다녔지만 과외를 해본 적은 없습니다. 공교육을 책임진 교사로서 사교육에 의존하고 싶지 않은 부분도 있었고 솔직히 형편도 넉넉하지 못해서 아이들 공부는 EBS를 주로 이용했습니다. EBS 덕분에 저렴하게 공부한 셈이니 부모로서는 EBS에 감사패라도 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형수씨가 민사고를 가게 된 것도 EBS 덕분이라고요?
“초등학교 6학년 때 EBS에서 민사고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그 방송을 보고 아이들이 목표를 세우게 됐습니다. 솔직히 저희 부부는 그 프로그램 방송하기 전에 잠이 들었는데 아이들이 깨워서 함께 봤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 EBS방송이 민사고라는 목표를 주었듯이 아이들에게는 자연스러운 계기를 만들어줘서 스스로 느끼고 목표를 세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가 아이들과 학원도 같이 다니셨다는데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요?
“아이들이 중학시절, 초등학교 때 일기를 우연히 봤는데 거기에 '아빠는 성난 얼굴로 돌아와서 TV를 보는 사람'이라고 써 있었습니다. 저로서는 매일 업무에 지치다보면 집에 돌아와서도 가족들과 별다른 이야기 없이 TV를 보다 잠이 들었던건데 아이들에게는 그 모습이 '성난 얼굴'로 보였던 모양입니다. 일기를 보고 많이 반성했습니다. 아이들과 마음을 열고 이야기하는 법을 고민하다 토플학원에 같이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오가는 차안에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아이들의 생각을 들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나중에는 아내까지 온가족이 다함께 토플학원에 다녔는데 그 점에서 부모가 솔선수범해서 함께 공부한 것도 비법이라면 비법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맞벌이 하면서 아이들 키우기가 쉽지 않으셨을 것 같습니다.
“맞벌이 엄마로서 어려움이 컸습니다. 전업주부인 다른 엄마들처럼 아이들 진로지도에 몰두할 수 없었고 진학정보도 적었습니다. 그때 전업주부인 친구엄마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학교 선생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학비부담도 만만치 않습니다. 하버드대 로스쿨 학비가 1년에 7만달러에서 8만달러 정도입니다. 그래서 서울대 로스쿨을 가라고 했는데 본인이 하버드대 로스쿨을 고집했습니다. 아들의 학비 마련을 위해서 대출을 받아야했습니다.”
-쌍둥이라 더 어려운 면도 있었을 것 같은데, 어땠나요?
“쌍둥이다보니 둘 사이에 미묘한 경쟁심이 있어서 한쪽이 뒤처진다는 콤플렉스를 안 느끼게 하려고 굉장히 신경썼습니다. 형수가 방학동안 일기를 꼬박꼬박 쓰는 편이었다면 동생 동수는 개학 전날 베껴 쓰는 편이었습니다. 그러면 형수는 상을 받아오고 동수는 못 받는데, 동수가 상처받을까봐 형수에게 칭찬을 제대로 못해줬습니다. 형수가 만점을 맞아와도 '그럴 수 있지 뭐. 만점이 대수인가'라고 했지 잘했다는 말을 제대로 못해줬습니다.”
-동생인 동수씨도 공부를 잘 한 것으로 압니다만, 그래도 형에 비해 뒤처진다는 생각을 했었나 봅니다.
“동수의 별명이 3초였습니다. 심리적으로 위축되다보니 사람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동수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뭐든지 동수 위주로 했습니다. 그 뒤로 동수가 가톨릭의대에 진학하고 성인이 되면서 자존심을 회복한 것 같아 다행입니다. 지금도 형제 간에 우애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은 편입니다.”
-인성교육에도 신경을 쓰셨을 것 같은데요.
“특별히 인성교육이라고 할만한 것은 없었습니다. 다만 아이들과 배드민턴, 탁구도 함께 치고 같이 다니며 이야기 많이 들어주고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면 그게 바로 인성 교육이 아닐까 합니다. 공부만 잘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기에 남을 먼저 배려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를 강조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아이들에 대한 기대도 크셨을 것 같은데요.
“공부를 잘 했으니 아이큐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아이들의 아이큐가 그리 높지 않습니다. 아이큐 검사결과에 부모로서 '실망했을 정도'였죠. 그래서 키우면서도 아이들이 이만큼 할 줄은 진짜 몰랐습니다. 저희 같이 촌스러운 부모들, 저희 아이들 같은 보통 아이들이 해낼 수 있었던 것은 '노력'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99%의 노력의 힘을 믿습니다.”
-어머니는 초등학교 교사로서 교육현장에서 느끼는 점들도 있을 것 같은데요.
“아이들은 부모가 생각하는 만큼, 관심을 주는 만큼 자라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부모를 보고 자라기에 부모가 긍정적으로 보면 긍정적으로 자랍니다.또 하나 느낀 점은 체벌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랑의 매도 안된다고 생각하는데 이유는 매를 맞은 아이는 마음까지 다칩니다. 저희 부부도 쌍둥이에게 영어를 외우게 했을 때 동생을 한번 때린 적이 있는데 커서도 그 일을 기억하는 것을 보며 가슴이 아팠습니다. 매를 들지 않으려면 대화를 많이 해야 하는데 맞벌이 부모들이 시간이 없다는 게 안타깝습니다.”
대담=한성일 문화독자부장(부국장)·정리=김의화 기자
●박형수·동수씨는?
▲ 쌍둥이 형 박형수<사진 오른쪽>씨와 동생 동수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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