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운규 서산 운산초 교사 |
우리 반에서 있었던 그리고 진행형인 이 일을 솔직하게 써 볼 생각이다. 좀 부끄러울 수도 있지만, 있는 그대로 보아야 그리고 받아들여야 치유의 대장정이 계속 될 수 있으니까. 너희들, 괜찮지?
올 봄 난 5학년 2반을 맡고 설?단다. 무엇보다도 스무 명 남짓이라서 단출하리라 생각했고, 작년 경험(5학년)을 믿기도 했던 터였다. 하지만 순진무구한 희망어린 예상은 초반부터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건 바로 14명의 여학생 공주님들의 대반격 때문, 미리 뿌잉뿌잉이라도 해볼 걸. 사실 14명의 여학생이란 큰 규모 반에서의 성비와 비슷하다. 오히려 남자들이 적어서 오는 상대적인 복잡함도 배가가 되는 면도 있지 싶다. (지나가며 한 마디, 그 속에서 살아남은 7명의 남학생들이 새삼 위대해 보인다.)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다툼과 갈등, 그리고 짜증과 불만이 수업시간까지 밀고 들어온다. 왜 안 그러랴. 속이 편해야 일에 공부에 집중할 수 있건만 허구한날 머릿속이 온통 복작복작대니 원.
5, 6학년 고학년 여학생들의 전형적인 발달모습인가? 그것 치고는 너무나 고약하다. 무얼까? 시간을 내서 14명 여학생만 집단상담을 시작해 보았다. 와우! 3, 4학년부터 켜켜이 쌓인 그 상처와 그 눈물과 그 미움과 그 두려움이라니! 참으로 놀라웠고 참으로 마음이 무거워졌다. 어디부터 풀어내야 하나 전전긍긍 막막함이여. 어설프게 화해하고 용서를 강요했다가는 영 돌아오지 못하는 다리를 건널 것 같은 이 기분 뭐지? 우선 팍팍한 응어리부터 풀어내야 했다. 한 명 한 명 지난 일을 꺼내 놓으며 억울함과 분노를 토해냈다. 2시간도 모자라서 당황이 되었다. 하지만 멈추게 할 수가 없었다. 울고불고 안아주고 복잡한 감정들이 휘몰아치며 폭풍처럼 지나가고 있었다.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왕따와 괴롭힘, 우리 모두가 피해자인데 과연 가해자는 누구인가?'
'왜 우린 당해본 아픔에 치를 떨며 누군가를 그렇게 쉽게 공격하는가?'
고요한 가운데 침묵만 흘렀다. 한참동안 그대로 질문만 반복해서 던졌다. 그렇게 첫 상담이 끝났다. 희한하게도 아이들은 훨씬 얼굴이 맑아져 있었고 누구랄 것도 없이 손을 서로 잡으며 그 곳을 나왔다. 1주일이 지나고 다시 두 번째 집단상담에 들어갔다. 이 문제를 풀지 않고는 생활지도든 학업이든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할 것 같은 상황이었으니까. 이번엔 좋은 친구에 대한 생각을 나누었다. 평화로운 관계, 진실한 우정에 관한 희망을 공유할 수 있었다. 그리고 먼저 던졌던 두 질문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았다. 아이들은 역시 생각보다 훨씬 지혜로웠다.
'살아남기 위해, 안전하기 위해 먼저 무조건 팀을 만들게 된다', '안전하다고 느끼면 옛날의 억울함이 고개를 들어 남을 공격하게 된다'는 거였다. 거의 모두가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이 아이들은 정말 정글에서 살아가고 있었던 거다. 속이 아려오는 순간이었다. 나뿐만이 아니고, 평소에 강하게만 느끼고 미워했던 친구들의 아픔과 두려움을 절절이 들으며 표정이 바뀌어갔다. 아이들은 조금씩 여유를 되찾고 연민의 마음도 가지게 되었다. 비로소 함께 서고 함께 놀 멍석이 생긴 것이다. 그 곳에서 조금씩 예쁜 마음을 나누고 진심을 표현하며 믿음을 쌓아갈 수 있겠구나 하는 작은 희망이 보였다.
'얘들아, 너희들은 이미 친구마음이 본래 예쁘다는 걸, 진짜 속마음은 아름답다는 비밀을 알기에 앞으론 더 행복할거야. 사랑해. 내년엔 더욱 의젓하고 당당한 6학년을 옆에서 지켜보며 응원할게. 뿌잉뿌잉.' 이마만큼 마음도 넓어지고픈 너희 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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