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청년작가, 소설가 박범신이 2년여 만에 침묵을 깨고 소설 소금을 갖고 돌아왔다.
전작인 은교를 쓰고 홀연히 고향 논산으로 내려가 2년여 동안을 보낸 끝에 내놓은 작품.
그가 고향 논산에서 처음으로 쓴 소설이다. 1973년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박범신은 올해가 데뷔한 지 꼭 40주년이 되는 해고, 장편소설로 이번이 꼭 40번째 작품이니 '소금'은 그에게 특별한 작품이기도 하다.
작가의 말에서 엿볼 수 있듯이 박범신이 오랜 고민끝에 내놓은 소금은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와 '비즈니스'에 이어 자본의 폭력성에 대한 '발언'을 모아 펴낸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이다.
'붙박이 유랑인'으로 동시대를 살아온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어쩔 수 없이 작품의 분위기는 묵직하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를 꼭 둘로 나눠야 한다면, 하나는 스스로 가출을 꿈꾸는 아버지, 다른 하나는 처자식들이 가출하기를 꿈꾸는 아버지로 나눌 수 있었다”(p.150~151)는 글처럼, 이 책은 '붙박이 유랑인'으로 살 수밖에 없는, 그래서 '가출할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가 살고 있는 거대한 자본의 세계 속에서 우리들의 아버지는 어디에서 어떻게 무엇을 얻고 잃으며 부랑하면서 살고 있는지를 되묻는다.
과연 나의 아버지는 가출하고 싶은 아버지인가? 가족들이 가출하기를 바라는 아버지인가? 아버지가 되는 그 순간부터 자식들을 위해 '빨대'가 되어줄 수밖에 없었던 주인공 선명우의 삶을 통해, 늙어가는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과 삶을 되돌아보게 해준다.
소설은 뜨거운 염전에 쓰러진 채 발견된 한 중년 염부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아내도 없이 여러 아이들을 키워온 그는 오직 대학생 아들 하나에 기대를 걸고 혹독한 삶을 견뎌오던 평범한 '아버지' 가운데 한 사람이다.
소설은 이어 고향으로 돌아온 시인인 '나'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나와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가면서도 작가는 '아버지'라는 존재를 늘 염두에 둔다.
배롱나무가 있는 폐교에서 우연히 만난 여인 '시우'에게서는 사라진 그녀의 아버지 이야기를, 옥녀봉 꼭대기 소금집에서 만난 '청동조각 김'을 통해서는 염전일을 도와주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쓰러진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러면서 자본의 세계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려면 힘들게 계속해서 돈을 버는 기계로 전락해가고 있는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래서 세상과 가족을 버리고 떠나는 꿈을 꾸어야만 하는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통해 자본의 폭력성에 비판을 가한다.
“나는 여전히 묻고 싶다. 이 거대한 소비 문명을 가로지르면서 그 소비를 위한 과실을 야수적인 노동력으로 따온 '아버지'들은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부랑하고 있는가. 그들은 지난 반세기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가. 아니, 소비의 '단맛'을 허겁지겁 쫓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 늙어가는 아버지들의 돌아누운 굽은 등을 한번이라도 웅숭깊게 들여다본 적이 있는가….”
박범신은 이런 이야기를 풀어가는 매개체로 '소금'을 등장시켰다.
우리나라의 소금은 바다와 햇볕과 바람과 사람의 힘이 모여 만들어낸 인고(忍苦)의 결정체. 그리고 짠맛, 신맛, 단맛, 쓴맛, 매운맛이라는 '인생의 맛'을 모두 담고 있으며,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존재다.
이 소설은 소금처럼 인생의 모든 맛을 담고 있다. 가출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담은 짠맛부터 첫사랑 '세희 누나'와의 추억의 신맛, 특별한 가족을 이루게 된 신세계라는 단맛, 시대적 배경과 함께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인생이라는 쓴맛, 그리고 돈의 노예로 빨대처럼 빨리며 살아가는 매운맛까지. 인생의 맛을 특별하게, 그러면서 이 책은 그 맛들이 모두 합해서 사람을 살리는 소금 같은 소설이 된다.
'소금'을 매개로 자신과 가족을 되돌아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의 고민과 함께 인생을 배울 수 있다.
박범신/한겨례출판/368쪽/1만3000원.
박수영 기자 sy87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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