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현근 대전대 행정학부 교수 |
대전시 조례가 강조하는 사회적자본은 우리사회를 특징짓는 혈연, 학연, 지연에 뿌리를 둔 연줄ㆍ인맥과 같은 폐쇄적 관계망과는 차별화된다. 사회적자본이 궁극적으로 초점을 두는 것은 자신이 잘 모르는 사람에 대해서까지도 신뢰와 호혜를 베풀 수 있는 열린 자세와 태도다. 결과적으로 사회적자본의 확충은 시민들 사이의 '일반화된' 신뢰와 호혜의 관계망을 확대하는데 투자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왜 사회적 자본에 대한 투자인가? 동네, 도시, 국가를 막론하고 구성원 사이의 신뢰와 호혜의 관계망은 거래비용을 줄이고 문제해결을 위한 정보공유와 협력을 용이하게 함으로써 경쟁력을 높인다. 뉴욕 다이아몬드 거래상 사이의 계약서 없는 악수거래, 실리콘밸리 벤처들의 성공신화, 스웨덴의 1~2%밖에 되지 않는 세금 탈루율의 공통점은 바로 이해당사자 사이에 높은 신뢰와 호혜의 관계망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사회적자본 수준이 높은 나라 국민이 행복하다는 것이다. 2012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OECD 국가행복지수평가에서 최상위권을 차지한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와 같은 북유럽국가들은 오래전부터 높은 사회적자본 국가로 분류됐다.
우리나라 사회적 자본 수준은 어떨까? 2009년 삼성경제연구소 연구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사회적 자본 수준은 OECD 29개 대상 국가중 22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경제규모 10위, 무역규모 8위 등 화려한 경제성적표에도 불구하고, OECD국가중 자살률과 저출산율 1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OECD 국가행복지수 순위 32위의 통계는 우리 국민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회적자본 확충은 우리사회가 정치ㆍ경제적으로 선진사회로 도약하기 위한 전제조건일 뿐만 아니라 국민이 행복해지기 위한 근본적 처방이다.
'가족밖에 믿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문화속에서 자기가 모르는 사람들에 대해서까지 신뢰와 호혜의식을 가지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가? 우리사회 전반에 팽배한 불신을 문화적 숙명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역사적 요행을 바라며 사람들의 의식과 태도가 스스로 변하기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반면, 사회적자본의 석학들은 사회적자본 형성을 위한 정부의 촉진자, 촉매자 역할을 강조한다. 정부가 제도설계를 통해 사회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게임의 규칙을 잘 만들고 그러한 게임의 심판자 역할을 공정하게 수행한다면 사회적자본 형성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설계의 초점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신뢰와 호혜의식은 소통과 참여 없이는 형성될 수 없다는 점에서 시민사회 또는 지역사회 구성원 사이의 자발적ㆍ수평적 결사체 조직과 참여를 장려하고 상호교류를 활성화하는 것이다. 둘째, 공정하고 유능한 심판의 존재를 믿는다면 사회의 다른 구성원을 신뢰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면에서 투명하고 혁신적 행정을 통해 정부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다.
대전시의회가 발의한 '사회적자본 확충 조례안'은 주술 부리듯 지금 당장 신뢰와 호혜의 관계망을 만들어내겠다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부문의 참여주체들 사이에 신뢰와 호혜의 규범이 확산되도록 참여와 소통이 용이한 환경조성을 위한 원칙과 지원체계 구축을 천명하고 있을 뿐이다. 앞으로 대전시가 사회적자본의 인프라 위에 세계적 도시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대전시의 시정 전반에 걸친 제도적 노력만큼이나 시민들 사이의 공감대 형성과 적극적 동참이 요구된다. 어려운 길이지만 대전시민의 행복을 위해서는 피해갈 수 없는 길에 용기있게 첫발을 내디딘 대전시와 의회 당국에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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