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렬 한의학연구원 책임연구원 |
실은 이들 의학은 모두 漢의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럼 漢의학은 무엇인가? 옛날부터 이미 의학경험이 있어왔고 편작과 같은 명의도 있었지만 체계화되지 않았던 것이 한나라에 이르러 황제내경과 같은 의학서적들이 대량 출판되면서 이름을 漢의학이라 얻은 것이다. 한의학은 삼국시대에 우리나라에 전해지고 바다를 건너 일본까지 전해지며, 몽골과 베트남 역시 한의학의 영향권에 들어간다. 그런데 19세기에 이르러 밖으로 서양의학이라는 강력한 경쟁상대를 만나고, 안으로는 복잡한 논리구조의 문제점을 드러내게 된다.
한의학은 변증을 중심으로 체계화된 의학이다. 변증은 질병명이 아닌 증상의 패턴을 따라 분류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침을 하는데 사지가 냉하면 한증이고, 몸이 뜨거우면 열증이다. 같은 기침이라도 한증이냐 열증이냐에 따라 처방은 전혀 달라진다. 한의학은 음양론과 오행론에 바탕해 그 이론을 발전시켰다. 음양은 그늘(음)과 볕(양)이라는 뜻인데 음지와 양지가 바뀌고 밤과 낮이 교대되듯이 모든 생명 변화는 대립하는 두 세력이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번갈아 작용하면서 일어난다고 본다. 한편, 오행론은 세상을 구성하는 재료를 목화토금수 다섯 가지 속성으로 파악한데서 시작되었다. 위로 쑥쑥 자라는 것은 모두 목이고, 활활 타는 것은 모두 화고, 모든 것을 품어 주고 바탕이 되어 주는 것은 모두 토며, 딱딱하게 굳는 것은 모두 금이고, 아래로 흐르는 것은 모두 수다. 이렇듯 음양은 변화 원리, 오행은 재료의 특성이라는 개념에서 각각 서로 달리 출발했다.
한의학이 발전하면서 변증법은 음양론과 오행론을 조합하여 다양한 형태로 발전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변증법들을 묶어주는 체계가 없이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것이다. 즉 각 변증법을 써야 할 조건(Boundary Condition)이 정해져 있지도 않고, 각 변증법들이 나무(Tree) 구조로 꿰어져있어 선택해가는 체계도 아니다. 게다가 여러 변증명들의 개념이 서로 중첩되어 있어 혼돈스럽다. 수학적으로 표현하면 변증 요소 사이에 직교성(Orthogonality)이 없다. 같은 병증이라도 한의사들의 진단과 처방이 서로 달라지는 것이 이 때문인 것이다. 평면에서 점의 위치를 나타낼 때 직교좌표계를 쓰지 않는다면, 하나의 점을 나타내는 방법이 수없이 많아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제마는 어려서부터 특이한 질병을 앓았는데, 이리저리 명의를 찾아다니며 치료를 받았으나 차도가 없었다. 45세에 격치고를 써서 4단론에 바탕한 철학체계를 정리한 그는 의학에서도 4체질의 관점을 적용, 기존 한의학의 지식을 전혀 새로운 체계로 정리하여 사상의학을 창안한다. 태음인, 소양인 등 체질명에서 드러나듯이 사상의학은 변증체계를 구성할 때 음양만을 사용했다.
사상의학에서 네 체질은 마치 직교좌표계처럼 서로 직교하는(Orthogonal) '음양'이라는 축과 '태소'라는 축에 의해 태음, 소음, 태양, 소양으로 구분된다. 한의사인 필자는 체질판별을 할 때 먼저 그 사람이 음적인가 양적인가를 보고 다음에 크고 늙었는가(太) 작고 어린가(少)를 보아서 체질판별을 한다. 마치 X축, Y축 좌표의 음양을 알면 몇 사분면의 점인지 판단할 수 있는 것과 같다. 체질 판별 후 세부 병증을 볼 때도 이와 같은 원칙이 적용된다. 따라서 사상의학은 몇 번의 판단으로 가장 효율적으로 다차원의 병증 유형을 분류해낼 수 있다. 이것이 사상의학의 과학적 정신이다.
미국 한의과대학의 학장이 '한국에서 한의학의 세계화를 주장하는데 그 한의학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만일 중국의학과 똑같은 漢의학을 뜻한다면 그것은 이미 중국이 몇걸음 앞서 세계화에 성공하고 있다. 한국이 세계화에 성공할 수 있는 韓의학이라면 바로 사상의학이 아닌가' 하는 글을 쓴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 의약계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우리 고유의 사상의학을 과학적으로 연구해 전 세계에 한국형 통합의학을 제시해 봄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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