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기] 가속기, 초신성 그리고 창조경제

  • 오피니언
  • 사외칼럼

[김선기] 가속기, 초신성 그리고 창조경제

[사이언스 칼럼]김선기 기초과학연구원 중이온가속기구축사업단장

  • 승인 2013-04-03 14:34
  • 신문게재 2013-04-04 21면
  • 김선기 기초과학연구원  중이온가속기구축사업단장김선기 기초과학연구원 중이온가속기구축사업단장
▲ 김선기 기초과학연구원  중이온가속기구축사업단장
▲ 김선기 기초과학연구원 중이온가속기구축사업단장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시대에는 왕도 볼 수가 없었다고 한다. 지금 우리는 조선왕조실록을 볼 수 있으니 조선시대의 왕보다도 혜택을 받은 셈이다. 그런 조선왕조실록에는 왕에 대한 기록뿐만 아니라 과학적인 관측 기록도 나오는 데 그런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604년 조선왕조실록은 “선조 37년 10월 13일 저녁 8시경 목성보다 작은 적황색의 객성이 나타났다”는 기록으로 시작해 이듬해 4월 23일까지 약 130여 회의 관측을 기록하고 있다. 이 별은 유럽에서는 케플러 초신성(SN1604)으로 알려졌다. 별도 태어나고 죽는 것인데, 죽는 순간에 엄청난 에너지를 방출하며 폭발하기 때문에 그 밝기가 엄청나고 새로 생긴 별이라 해서 신성이라 불리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밝던 초신성이 점점 더 어두워져 눈에 보이지 않게 돼 우리나라에선 객성이라고 불렀던 것이 어느 면에선 더 과학적인 셈이다.

초신성 폭발은 보통 시간에 따라 변하는 밝기의 모양으로 형태를 분류한다. 케플러의 기록에는 발견 후 20~80일 사이의 중요한 기록이 없어서 이러한 판단을 할 수 없다. 하지만, 그 기간의 기록이 매우 자세하게 나와 있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케플러의 기록과 결합하면 완벽한 그 형태를 알아낼 수 있다. 존경하는 어느 노 교수는 이를 두고 세계 최초의 동서양간 '국제공동연구'라고 표현했다.

케플러가 갈릴레오와 쌍벽을 이루던 동시대 과학자였으니 우리 조상 들의 당대 과학적 수준도 이미 세계적 수준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약 400여 년이 지난 서기 2013년 오늘 대한민국의 후대 과학자들이 과학벨트에 중이온가속기 '라온'을 구축하고 있다. 라온이 건설되면 희귀동위원소를 발견할 뿐 아니라, 다른 원소들과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초신성 폭발에서 무거운 원소들이 정말로 만들어지는지를 밝힐 수 있게 되고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과정도 밝힐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보통의 원소들과 성질이 같으면서 질량이 다른 원소들이 존재하는데 이를 동위원소라고 한다. 현재까지 발견된 동위원소는 약 3000종에 이르며 전체 동위원소의 수는 7000개 이상이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초기에는 원자로를 통해서 발견됐지만 최근에는 가속기를 통한 발견이 주류를 이룬다. 발견한 동위원소의 수로 볼 때 금, 은, 동메달은 미국, 독일, 영국 순이고 이웃 나라인 일본은 7위, 중국은 12위에 랭크돼 있다. 우리나라는 3000여 개 중에 아직 하나의 동위원소도 발견하지 못했다.

라온의 건설은 우리나라를 동위원소 발견 상위권 국가로 만들어 줄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주와 생명을 이루는 다양한 원소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하는 인류 본연의 질문에 답을 찾는 과학적인 연구를 선도하는 국가가 되어 선대조상님들께 부끄럽지 않은 후손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미국 에너지부에서 2010년에 발간한 보고서에 의하면 세계적으로 약 3만대의 크고 작은 입자가속기가 있으며, 가속기 시장은 약 35억 달러 이상, 가속기 빔을 이용해 생산, 처리, 검사되는 상품은 매년 약 5000억 달러 정도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며 지속적인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많은 가속기가 치료 또는 진단을 위한 의료용 가속기와 이온주입 등 산업용 가속기가 주를 이루고 있지만, 전체 1% 에도 못 미치는 라온과 같은 기초과학 연구용 가속기가 가속기 기술의 개발을 이끌어 가고 있다. 이런 자료를 보더라도 가속기 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어 보이지만 국내가속기 기술이 아직 미약할 뿐 아니라 이를 끌고 갈 가속기 분야 연구 인력도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라온과 같이 순수한 기초과학연구를 위한 투자가 국내가속기 기술 개발과 연구인력 양성을 자연스럽게 선도하게 될 것이다. 현대 문명의 주축이라고 할 수 있는 과학 연구의 선도국가로 발돋움하면서 자연스럽게 첨단 산업을 육성할 수 있다면 이야말로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창조경제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2.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3.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4.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5. 전국 아파트 값 하락 전환… 충청권 하락 폭 더 커져
  1. 유등노인복지관, 후원자.자원봉사자의 날
  2. 대전시, 12월부터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 제한
  3. [화제의 인물]직원들 환갑잔치 해주는 대전아너소사이어티 117호 고윤석 (주)파인네스트 대표
  4. 생명종합사회복지관, 마을축제 '세대공감 뉴-트로 축제' 개최
  5. 월평종합사회복지관과 '사랑의 오누이 & 사랑 나누기' 결연활동한 동방고 국무총리 표창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