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희수 건양대 총장 |
그런데 문제는 그 기록들의 분류에 있다. 대통령기록물은 일반기록, 비밀기록, 지정기록의 세가지로 구분되는데 일반기록은 누구나 열람할 수 있지만 비밀기록은 대통령과 국무위원 등 특별한 인가권자들만 열람할 수 있는 국가 비밀사안이다. 또 지정기록은 이보다 한 수위가 더 높아 그 기록을 생산한 대통령 자신만 볼 수 있도록 완전히 봉인한 자료를 말한다.
이같이 완전 봉인된 기록을 풀기 위해서는 국회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의결이 이루어지거나 관할 고등법원장이 중요한 증거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영장을 발부해야 한다. 따라서 전임 대통령이 지정기록으로 분류하여 기증을 하면 아무도 볼 수 없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다.
지난해 대통령선거전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북한 방문시 NLL 포기 발언이 불거져 문제가 된 일이 있을 때 확인이 불가능했던 것은 남북대화 관련 자료들이 지정기록으로 분류되어 있어 아무도 열람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사자는 이세상에 없고 국회의석도 여야가 엇비슷한 상황에서 현행법상 그 기록물을 열람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노무현대통령 정부에서 남북대화록 같은 지극히 민감한 기록물을 왜 대통령 자신 외에는 아무도 열람할 수 없는 지정기록으로 남겼는지 그 이유는 모른다.
그러나 나중에 있을지도 모르는 어떤 책임같은 것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라면 전직 대통령으로서 너무 무책임한 처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번 이명박 정부에서는 1088만건의 대통령기록물 중 24만여건을 지정기록물로 지정했을 뿐 비밀기록은 한 건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보통은 일반기록과 비밀기록으로 나누고 그 비밀기록 가운데 일부만을 지정기록으로 하는 예와는 매우 다른 처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참여연대는 지난달 논평을 내고 이명박 전 대통령측에 임기중의 중요한 기록들을 모두 지정기록으로 봉인한 이유를 설명해줄 것을 촉구했다. 이 전 대통령측은 비밀에 해당하는 기록들을 7년, 15년, 30년 기한의 지정기록으로 분류해서 그런 것이지 비밀기록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것 역시 왜 그렇게 해야 했는지 추가 설명이 없어 알 수가 없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이 전 대통령측의 처사는 노 전 대통령측이 비밀기록 중 9700여건을 지정기록으로 정하지 않아 차기 정권에서 열람, 참고를 할 수 있었던 것과도 달라 이해하기 어렵다며 대통령지정기록물의 오·남용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대통령기록물의 비밀기록과 지정기록의 분류에 대해서는 그 기준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시대의 승정원일기에서 보듯이 기록문화 만큼은 우리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역사유산을 지닌 민족이라고 자부하는 입장에서 왠지 석연치 않은 것은 사실이다.
승정원일기가 세계 최고의 기록문화유산으로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왕명의 출납, 왕에게 올려지는 모든 문서를 기록했으면서도 왕은 절대 그 내용에 손댈 수 없었다는 데서 그 가치를 인정받았던 것이다. 그런 취지에서 현재 우리의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은 재검토돼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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