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국원 침신대 총장 |
요즘 대학생들이 책을 제대로 읽지 않는다는 사실은 분명한 것 같다. 다양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평균독서량은 한 달에 한 권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75%에 달하는 대학생들이 일주일에 3시간 이내, 즉 하루 평균 20분 정도만 독서에 할애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 여가시간의 대부분을 인터넷과 게임, 그리고 TV시청으로 보내고 있다고 통계보고서는 말하고 있다.
책이 외면당하는 현상은 물론 우리나라 대학생들에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크게 봤을 때 책으로 대변되는 활자(活字)문화가 종언을 고하는 현상의 초기적 증상이라는 학자들의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인간에게 고유한 언어문화 시대, 그리고 역사가 기록되기 시작하면서 만개했던 활자문화 시대가 새로운 매체문화 시대로 바뀌는 과도기적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런 거창한 문명사적 진단을 빌리지 않더라도 요즘 대학생들에게 책이라는 매체는 고리타분하기 그지없는 정보전달 수단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온갖 오디오 비주얼 매체들이 발달한 현대사회에서 흰 종이 위에 까만 글자가 인쇄된 책은 세월이 갈수록 매력을 잃어가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가고 있다. 다양한 방법으로 쌍방향 소통이 가능한 요즘, 세상에서 죽은 저자의 인쇄된 생각은 어쩌면 차갑게 죽어있는 사고(思考)에 지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수천년 동안 이어져 왔던 활자문화 시대가 이렇게 저물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지만 지난날 책이 누렸던 영광이 하루 하루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아주 오래 전 우리가 대학생일 때 심금을 울렸던 '초원의 빛'이라는 영화의 유명한 대사를 패러디한다면 “오, 활자의 빛이여, 책의 영광이여!”라는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하게 된다. 우리가 사는 이른바 포스트모던 시대에서 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역사의 종말, 철학의 종언, 저자의 죽음 등과 같은 엄청난 사건들이 정말 일어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책은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책이 외면당하면서 특히 고전(古典)들은 아예 멸종희귀종과 같은 신세가 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젠 정말 아무도 고전을 읽으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 물론 “누구나 다 읽어야 된다고 말하지만 아무도 제대로 읽지 않은 책”이 곧 고전의 가장 좋은 정의라는 재담도 있다. 그러나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고전읽기는 언제나 도전이고 감동일 수 있다. 학창 시절에 두꺼운 고전을 소중하게 들고 다닐 때 손바닥을 가득 채우던 중량감, 그리고 다 읽고 났을 때의 만족감은 고전을 읽은 사람들에게만 훈장처럼 남아 있는 기억이다.
이런 말을 하면서 공연히 책에 대한 넋두리를 늘어놓는다거나, 고전읽기 자랑이나 하는 것처럼 보일 마음은 전혀 없다. 오히려 최근에 영화 혹은 뮤지컬을 통해 고전이 다시 사랑받게 되는 현상이 기특하여 생각을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 가령 톨킨 교수의 반지의 제왕은 판타지 문학의 고전으로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유명했던 작품이었지만 대중에게 친숙한 작품은 아니었다. 그러나 피터 잭슨 감독의 3부작 영화로 제작되어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면서 많은 사람들이 원전 소설을 다시 찾아 읽도록 만들게 하는 반전을 누리게 되었다. 최근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의 흥행성공과 더불어 빅토르 위고의 원작소설이 몇 만부 팔리게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도 있었다. 총 5부작, 2500 쪽의 전질이 그렇게 팔렸다니 놀랍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책 자체는 점점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영상매체를 통해 다시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나마 반가운 소식이다. 책읽기 싫어하는 학생들에게 책 대신 차라리 영화 CD를 나누어 주는 것이 더 효과적인 책읽기 장려정책이 될 수 있을까? 대학 4년 동안 300권의 책을 읽는 것을 총장 정책목표로 내세운 나 자신에게 스스로 반문해 보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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