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충식 논설실장 |
부여인은 흰옷을 숭상한다. 흰 천으로 만든 소매 넓은 도포와 바지를 입었고…
―삼국지 위지 동이전 부여조
떴다 보아라 안창남의 비행기, 내려다보아라 엄복동의 자전거~. 이 노래의 주인공 안창남은 1922년 한국인 최초로 서울을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소감을 잡지 『개벽』에 남겼다. “무학재 고개에는 흰옷 입은 사람들이 꼬믈꼬믈 올라가고” “감영 네거리에 흰옷 닙은(입은) 한 떼의 사람이 몰켜 서” 있다고 전한다. 왜 흰옷인가. 태양숭배로 빛의 상징 흰색이 신성시된 결과일까. 서거정은 『필원잡기』에서 염료 부족을 흰옷을 입은 근거로 제시한다.
목화 색이 검었다면 흑의민족이, 붉었다면 홍의민족이 될 뻔했다. 400년 가까운 '흰색 죽이기' 시도도 있었다. 고려 충렬왕 원년의 금지령을 시발로 공민왕 대에는 흰옷이 발전을 막는다는 논쟁이 있었다. 이후 조선 태조 7년, 태종 원년, 궁궐 내 착용을 금했던 세종 7년, 도성 안 여자들의 흰색 치마를 금했던 연산군 11·12년, 소복이라며 단속했던 명종 대를 거쳐 인조 26년, 현종 11·12·17년, 숙종 2년과 17년에 내려졌다. 영조 14년 무렵 흰옷 금지령은 엄했다.
하지만 거듭된 영(令)으로도 흰색의 대세는 꺾일 줄 몰랐다. 지난 주말 발간된 『어제 그리고 오늘』에서 류인석 수필가는 백의를 '패션'이라고 썼다. 의식(衣食), 그것은 의식(意識)과 연관 있고 다른 상품 흥행에 민감하다. 빨간 옷 유행은 딸기를, 녹색 유행은 녹차류를 더 선호하게 한다. 명도, 채도에 따른 색감도 다르다. 녹색을 상품에 쓰려면 생잎 가까운 색을 고르라 한다. 잎의 앞면 색은 고급스럽고 뒷면 색은 지적인 느낌을 준다.
이러한 녹색 탈색 바람은 산 권력과 죽은 권력의 엇갈린 운명으로 비쳐지지만, 전부는 아니다. 바탕이 환경의식과 거리가 먼 녹색은 갈색과 섞여 텁텁한 녹색으로 격하됐다. 방어욕망과 공격욕망이 도배된 'MB 녹색'은 토건 삽질과 떼어낼 수 없다. '섹스'를 개띠 여배우 샤론 스톤하고 묶어 사람들이 헷갈리는 것처럼 '녹색'에 대한 생각을 헷갈리게 했다.
만약 상징창출과 상징조작을 덜 거친 착한 녹색이었으면 박근혜 대통령이 '녹색 데쓰노트'를 쓰지 않고도 가능했다. 자세와 위치를 살짝 고치는 얼라인먼트로 끝날 일이었다. 녹색성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레거시(유산)이기도 하다. 민둥산에 나무 심고 보릿고개 없앤 녹색을 닮았으면 창백한 전 정권 흔적으로 내칠 이유는 없었다. 22조원이 처발린 4대강에 가 보면 문명적 시각의 녹색문화적 창조라든지, 하다못해 첫사랑과 키스하던 강기슭의 설렘, 그런 게 없다. 생태문화 아닌 다른 정신(the other mind)에서 온 것이 가장 문제였다.
최충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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