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제는 세상과, 기도로 하나가 돼야 하며 이웃사랑을 기억해야 한다는 곽승룡 총장 신부. '뒤통수 리더십' 역시 한국사회의 아픔을 보듬기 위해 곽 신부가 내놓은 '마음의 처방전'일 것이다. 사진=김상구 기자 |
▲세례명 비오(pius)에는 어머니의 소망 담겨
-신부님의 세례명 '비오'는 어떤 뜻이 담겨있는지요.
“저의 세례명 비오(pius)는 라틴어로 '열심히 하는', '신심이 깊은'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비오 10세 교황의 이름을 따서 어머니께서 지어주셨습니다. 사제가 된 것은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조부모님과 어머니에 이어 3대째 가톨릭 신앙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의 고향이었던 논산의 부창동 성당에서, 태어난지 8일만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소꿉장난도 신부님 흉내를 내며 놀았죠. 삼촌이 네잎클로버로 신부님들이 미사드릴 때 매는 '영대'를 만들어주셨습니다. 그 영대를 매고 아버지에게 강복을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6살 때는 성냥개비로 성당을 짓고 고해소까지 조그맣게 지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때 지은 성당이 30채는 될 것 같은데(하하), 어렸을 때는 일종의 기도였던 것 같습니다.”
▲일찍 잃은 어머니, 유년의 아픔
-곽 신부님도 김수환 추기경처럼 어머니의 영향으로 사제의 길을 걷게 되신 줄 압니다.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시겠습니까.
“제 어머니는 수도자 출신이셨습니다. 수녀원에 갔다가 몸이 아파서 서원 직전에 나오셨던거죠. 그 뒤 제 아버지를 만나 결혼하고 3형제를 낳으셨는데, 막내동생 출산 때 탯줄이 오염돼, 산후조리하시던중 그만 돌아가셨죠. 둘째인 제가 6살 때였는데 저는 3형제 중 어머니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릴 적 어머니를 잃은 충격이 3형제중 가장 컸을 겁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초등학교 시절은 아예 생각이 나지 않고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중ㆍ고교시절에는 명랑하고 유쾌했던 본래의 성격으로 돌아간 기억이 생생한걸 보면, 초등학교 시절은 어머니를 잃은 마음의 상처를 속으로 보듬으며, 회복하고 치유하는 시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곽승룡 신임 총장 신부가 지난 9일 대전가톨릭대학교 대성당에서 열린 취임미사에서 대전교구장 유흥식 라자로 주교로부터 임명장을 받고 있다. |
▲운동에 대한 열정이 사제의 삶에 대한 열정으로
-어린시절, 학창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실까요?
“어렸을 적 저에게는 '비호'란 별명도 있었고, '대추방망이'란 별명도 있었습니다. 하나는 달리기를 잘한 덕분이고, 또 다른 하나는 철봉과 평행봉을 잘해 얻은 별명이었죠. 이런 운동에 대한 열정이 신학생 시절의 '사람을 위한 영성운동'으로 진화했다고 생각합니다.
사제의 길은 사람을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인데 시간이 흘러갈수록 주님을 닮아 겸손하고, 섬기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2세를 알현하고 있는 곽승룡 신부
사진제공=천주교 대전교구 |
-금욕과 금기가 많은 사제로서의 삶은 어떠신지요.
“사제는 세상과 기도로 하나가 되는 것을 추구합니다. 종교가 자기 기복신앙만 추구하면 안됩니다. 이웃사랑을 기억해야 하지요.
신부가 되려는 신학생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 중 하나가 '침묵하기'인데 침묵은 외로운 사제의 길을 걷기 위해 반드시 익혀야 할 과정입니다. 침묵은 혼자 사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죠. 그래서 대전가톨릭대 학생들은 매일 오후 7시10분부터 기도가 시작되면 완전침묵인 '대침묵'을 지켜야 합니다. 신학생들은 짝을 이뤄서 운동장을 돌며 기도를 하고, 7시30분 성당에서 저녁기도후 8시부터는 과제 등 개인공부를 합니다. 이때도 옆사람과 이야기하면 안되죠. 소침묵을 지켜야합니다. 5학년이 되면 방도 혼자 쓰는데 이 역시 혼자 사는 방법을 익히는 수련과정이라고 볼 수 있죠.”
▲사회적 힐링과 소통위해 '뒤통수가 멋진 사람'쓰다
-소통을 넘어 힐링으로 가는 '뒤통수 리더십'을 강조하셨는데, 요즘의 우리 사회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마음을 다쳐 응급실에 누워있는 한국사회가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무엇보다 우선 길러야 하는 힘은 '마음의 영성'입니다. 이 시대의 징표를 보면 사람에게 꽃이 되기보다 폭력의 병을 주고 있는 듯합니다. 동방예의지국,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말은 사라졌습니다.
30~40년 전만 해도 우리는 동네에서 일어나는 일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문을 마주하는 앞집의 아파트에 사는 이웃을 잘 알지 못합니다.
사람마다 관심과 분야가 다르기도 하지만 내면보다는 겉도는 대화가 자주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일이 지속되면 스트레스를 받아 건강에도 이상신호가 생깁니다. 저는 사회적 힐링과 소통을 위해 '뒤통수가 멋진 사람'이라는 책을 쓰게 됐습니다. 뒤통수가 멋진 사람은 솔선수범해 사랑을 가르쳐주신 예수님을 뜻합니다.”
-책을 보니, 나눔에 대해 많이 강조하시던데요.
“나눔 중에 가장 중요한 게 '정신의 나눔'입니다. 그동안 10권의 책을 쓴 것도 정신을 나누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아파트는 층간소음으로 인한 분쟁까지, 폭력의 실타래가 엉켜있습니다. 해결을 위해서는 한국 사람의 특징인 가슴을 움직이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일본은 세심한 논리로 매사를 계획대로 준비하는 '머리형'으로 나라를 하나로 만들고 유지하고, 중국은 사람이 많아서인지 머리보다, 배의 힘으로 밀고 나가는 '장형'으로 나라를 유지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한국인은 머리를 쓰고 힘으로 밀어붙이는 면보다는 오히려 가슴이 움직여야 하나가 됩니다. 한국인은 지성이나 힘이 아닌 가슴으로 온 국민이 일치할 때 예상치 못했던 쾌거를 이룬 경험을 갖고 있지요. 외세에 대항했던 민중들의 힘, 3ㆍ1독립운동이나 2002년 월드컵 등이 이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입니다.
외국은 나라가 어려워지면 시위가 일어나지만 우리는 나라가 힘들고 어려우면 하나로 뭉칩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사회의 실타래가 너무 엉켰습니다. 우리 정신과 역사, 문화를 읽어 내지 못하기 때문이죠.”
▲소통을 넘어서는 힐링은 마음을 나눠야
-양극으로 벌어지는 우리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위한 치유책이라면 뭐가 있을까요.
“갈등과 헤어짐과 이별과 분열의 핵심은 '자기 식대로만' 하는 것입니다. '자기식'은 중요하지만 '자기식대로만' 하는 것은 분열입니다. 자기식과 남식이 공존할 수 있는 공동의 목표가 있어야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목표로 해서 각자의 생각을 살아야 하고 정치적으로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서 서로 협력해야 합니다. 만남의 핵심은 공감, 소통, 힐링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해주면 됩니다. 부부도 남편이 바라는 것, 부인이 바라는 것이 조금씩 다릅니다. 남편은 부인이 인정해주는 것을 바라는데, 인정의 방법은 '칭찬'입니다. 부인이 남편에게 바라는 것은 '공감'입니다. 부인이 이야기할 때 남편은 '끄덕끄덕', 아내의 눈을 바라보며 고갯짓 한번 해주면 됩니다. 이것만 해줘도 되는데, 이게 안되니 부부가 힘든 것이죠.
'멈추면 비로소 들리는 것들'이 있습니다. 상대방의 목소리를 들으려면 게으름이 아니라 천천히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장만을 위해서 행복을 미룬 부분이 있습니다. '진정 행복한지' 내 목소리와 가정의 목소리, 세상의 목소리를 들어야합니다. 소통을 넘어서는 것이 힐링인데, 힐링은 마음을 나눠야 합니다.”
대담=한성일 문화독자부장(부국장)ㆍ정리=김의화 기자ㆍ사진=김상구 기자
●곽승룡 총장은 누구
1958년생 개띠. 1989년 서울가톨릭대를 졸업하고, 같은 해 대전교구 사제품을 받은 뒤 대전교구 당진성당과 대전 용전동성당 보좌신부를 지냈다. 1991년 로마로 유학해 로마교황청립 우르바노대학교와 로마 동방대학원에서 수학했고, 우르바노대학교에서 교의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1996년 금산성당 주임신부, 2001년 대전교구 사목기획국장을 역임했다. 1996년부터 대전가톨릭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임하면서 도서관장과 대학원장, 교학처장, 신학원장 등을 역임했고, 지난 9일 총장에 취임했다.
저서로는 1998년 한국 러시아 문학계에서 도스토예프스키에 관한 최초의 단행본으로 화제가 된 도스토예프스키의 비움과 충만의 그리스도가 있다. 이밖에 비움의 영성, 자비, 복을 부르는 마음, 기도, 영혼이 다시 태어나는 순간, 뒤통수가 멋진 사람 등 다수가 있다. 역서로는 선교신학, 어제와 오늘 그리고 항상 계실 예수 그리스도,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 등이 있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