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충식 논설실장 |
'균형'은 또한 한 나라나 지역의 건강지표가 된다. 획일화나 정적 평형이 아니다. 알맞게 들어가고 나오는 게 곧 균형이다. 아침 경제신문에 '지방균형발전이 한국병(韓國病)' 기사가 실렸다. 지속적인 지방균형발전 정책 탓에 뉴욕, 싱가포르 같은 세계적 도시 배출이 안 된다는 요지였다. 랜돌프 네시 교수의 말을 빌린다. “위험한 생각을 조장하는 생각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병(病)이라면 오히려 양극화나 불균형이 한국병이고 치료약은 균형발전일 텐데, 약을 독이라 부르는 현실 인식이 안타깝다. 그 정반대의 입장도 나왔다. 25일 전국균형발전지방의회협의회가 비수도권 중심의 균형발전을 촉구했다. 행정 전문가 300명은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균형발전 촉진'을 1순위로 꼽았다. 귀에 딱지 앉도록 들어온 소리다. 중요한 건 용어보다는 용어에 깃든 존재의 내용이라지만 용어도 내용도 새로움은 없다.
이렇게 신선감 떨어진 테이프를 되돌리는 이유는 '지방'의 존재감이 미미하다, 아예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균형'을 삭제당한 지역발전위원회의 위원장 임기가 24일로 만료됐지만 박근혜 정부에서 후임자 인선조차 안 했다. 사실은 못 했다. 망사가 된 인사 산통에 챙길 겨를이 없겠지 이해하다가도 “지역균형발전에 얽매여 (경기도가) 불이익을 겪었다”며 복부비만을 글래머라 우기는 장면에서 필자의 이해심은 바닥이 드러난다.
충청권, 그 중 세종시는 수도권 고도비만인 나라에서 균형을 잡는 배꼽 같은 곳이다. 불균형은 물론 지역 내에서도 거론된다. 충북 면적의 13%에서 인구 52%를 차지하는 '청주권(청주·청원) 집중화'가 그 예다. 나머지가 중부권, 북부권, 남부권이다. 대전 원·신도심, 세종 신도시 예정지와 읍·면지역, 충남의 도시에 적용해도 대개 사정은 그렇다. 도시에서 인구, 부동산 및 금융 자산, 지식 자산, 지역 내 생산(RGDP)의 집중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허리 라인을 유지할 만큼 정도껏 해야 한다. 체계적인 성장관리 다이어트가 특히 화급한 부위가 수도권이다. 확고한 서울 중심인 경제는 허리-엉덩이 볼륨을 망가뜨렸다. 수도권은 예금의 67.8%, 부동산 가액의 62%, 100대 대기업의 91%를 집중하고도 아직 배고프다. 지역 소재 대학의 수도권 이전 고삐는 허망하게 풀려나갔다. 금산 중부대, 홍성 청운대도 일부 이전했거나 이전이 진행 중이다. 영양과잉의 수도권을 위한 반(反)선택, 역(逆)선택에 지역은 더 약골이 돼 간다. 지방자치 부활 20년 넘도록 권한과 재원을 틀어쥔 중앙(정부) 하청 구조는 그대로다. 지역을 빈사상태로 내모는 국세와 지방세의 8 대 2 비대칭은 깨질 줄 모른다.
지역의 존재감은 선거철에나 반짝 살아났다 사라진다. 지역발전은 비경제·비효율로, 국비 유치 경쟁은 '돼지 여물통 자치'로 격하되며 합리적 근거 없이 역차별이니 한국병 운운한다. “당신들은 단 한번 제대로 균형발전의 배[舟] 위에 올라탄 적 있느냐”고 '돌직구'라도 날리고 싶다. 지방분권형 균형발전을 목숨 걸고 밀고 갈 장관, 비서관 한 명 눈에 띄지 않는 것도 문제다. 불균형을 뜯어고치는 리밸런싱 정책이 나오기 힘든 토양이다.
알아야 할 것은 경제개발협력기구 30개 국가 중 우리나라 지역 간 격차가 4위권인 사실이다. 로컬과 글로벌의 경계가 희미해지도록 우리는 집중의 외투를 벗어던지지 않는다. 아버지 박 대통령 시절이 국가 주도 개발 이데올로기의 불균형 성장이었다면 딸 박 대통령은 균형이전 공감 능력이 탁월한 대통령으로 기록되길 기대한다. 그리고 정책의 무게중심이 경제와 국방 등에 실릴지라도 지역(지방)을 본질적인 층위에서 팔 벌려 껴안기 바란다.
연구에 따르면 허리-엉덩이 비율은 생물학적 번식 잠재력과 관계된 비율이다. 창조경제도 가임성 높은 수도권-지방 동반불패(同伴不敗)로 풀면 좋겠다. 타고난 '유전자 몸매'는 아니지만 지역 경쟁력으로 잘 먹고 잘사는 균형 잡힌 나라를 만들자는 뜻에서 아프리카 속담을 덧붙인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라.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외나무가 되려거든 혼자 서라. 푸른 숲이 되려거든 함께 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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