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초대석]박상언 대표- 젊은 예술가들이 꿈꾸는 고품격 창조도시

[중도초대석]박상언 대표- 젊은 예술가들이 꿈꾸는 고품격 창조도시

'다재다능'예술을 갈망하던 청년, 문화정책 디자이너로 신진예술가 위한 기회제공ㆍ육성위해 총력… 대전 '아티언스 프로젝트' 최적의 도시

  • 승인 2013-03-19 14:00
  • 신문게재 2013-03-20 11면
  • 한성일 기자한성일 기자
●문화예술행정가 박상언 대전문화재단 대표

2011년 9월 대전문화재단 제2대 대표로 취임한 박상언(53ㆍ사진) 대표가 문화예술행정의 달인답게 대전의 문화 수준을 한단계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한 큰 그림을 그리며 야심차고 활발한 활동을 펼쳐 관심을 모으고 있다.

대전문화재단 1기가 '창업'을 했다면 2기는 '더하기 경영'을 하고, 3기에서는 '곱하기 경영'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박상언 대표를 지난 18일 햇살이 따사로운 날 오전 엑스포과학공원 관리동 대전마케팅공사 3층에 위치한 대전문화재단 대표 사무실에서 만났다.

▲다양한 별명을 가진 재주꾼='뽀로로'. 까만 뿔테 동글이 안경이 마스코트인 박상언 대표가 어린아이들의 우상 뽀로로를 닮았다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그의 카톡 배경화면에도 뽀로로가 등장한다. 재주 많고 장난기 있어 보이는 얼굴은 나이를 짐작할 수 없게 만드는 '최강동안'이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수많은 스케줄을 소화하며 세계를 무대로 바쁘게 부지런히 움직이는 그에겐 '박길동'이란 별명도 있다. 예전에 활동하던 싸이월드에서의 별명은 '보헤미안'이었다.

자유롭고 낭만적인 기질과 풍부한 감성, 꿈꾸는 방랑시인 같은 이미지가 있어서일게다.

박 대표는 어릴때부터 글솜씨, 그림솜씨가 뛰어났고 문화평론가로서, 경영과 행정 능력을 발휘하며 리더십과 유머 감각까지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고등학교시절엔 프로기사를 꿈꿀만큼 뛰어난 바둑실력을 지닌 공인 5단으로, 다재다능한 팔방미인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더스틴 호프만과 스티브 맥퀸이 주연한 영화 '빠삐용'에서 자유를 찾아 탈출하는 마지막 장면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 이 영화를 수없이 반복해서 보고, 자신의 휴대폰에는 TV로 방영된 영화 화면을 캡처해서 가지고 다니는 이 남자. 영화를 보다가 슬픈 장면이 나오면 눈물을 펑펑 쏟는 이 남자는 텔레비전 개그프로그램 '개그콘서트'의 '아빠와 아들'코너를 패러디한 자신과 아들의 사진을 카카오스토리에 올려놓는 재미있는 남자다.

그가 거의 매일 일기 쓰듯이 활동 상황과 느낌을 글로 적고, 사진으로 찍어 보여주는 그의 SNS '카카오스토리' 제목은 '꿈꾸는 낮도깨비 朴相彦'이다.

-박 대표님, 왜 대표님이 '꿈꾸는 낮도깨비'인가요?

“원래 도깨비는 밤에 나타나는 존재잖아요. 그런데 저는 낮에 돌아다니니까 낮도깨비죠. 제가 본래 착한 사람에게는 선물을 주고, 악한 사람은 혼내주는 도깨비를 좋아한답니다. 도깨비는 무섭기도 하지만 친근하고 가깝게 느껴지는 독특한 존재이기도 하죠. 사악함을 물리치는 '벽사(壁邪)' 상징의 원형이 바로 도깨비인데, 세상의 모든 귀신 가운데 유일하게 사람에게 지는 존재일겁니다. 어리숙한 듯하면서도 익살스럽고 해학이 있는 도깨비가 제 이미지와 비슷하지 않나요? (하하하)”

▲유년시절, 예술에 눈뜨다=박 대표의 삶은 '뜻밖의 인생 열전'이다. 60년 경기도 남양주에서 4남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군인이셨던 아버지의 부임지를 따라 제2의 고향인 강원도 원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당시 꼬마 박상언은 초등학교 시절 무려 6곳이나 학교를 옮겨 다녀야 했다. 지역간첩대책본부 대대장을 맡고 있던 아버지의 근무지가 바뀔 때마다 이사를 가야했기 때문이다.

매년 이삿짐을 싸고 옮겨 다녀야 하는 상황 속에서도 그는 그림, 판화, 조각 등 미술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과 두각을 보이며 초등생 미술전국대회에 나가 당당히 상을 타왔다.

▲날개 꺾인 예술학도, 가출하다=고등학교 입시 전까지 다른 세계는 단 한 번도 꿈을 꾼 적 없는 외길 예술학도였던 그에게 있어 예고 진학은 확고불변한 진리였다. 그러나 그의 부모님은 우등생 큰 아들이 법대나 의대로 진학하기를 바라셨다.

“그림(판화ㆍ조각)을 전공하고 싶어 서울예고 진학을 꿈꿨지만, 부모님의 반대가 워낙 심해 결국 일반계 고등학교에 입학했죠. 학도호국단 단장이자 학급 반장, 문예반 반장 활동을 하던 그때 당시 친구들에게 인기도 많았지만 고3이 되니 입시 압박을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고2때 신춘문예에 당선된 최인호와 당시 유행했던 황석영 작가를 동경하던 문학청년이었던 그는 결국 꽃피는 봄 5월 11일 밤에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과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과 서정주 시집 등 몇 권의 책과 그림과 붓만 달랑 들고 학교와 집을 떠나 절로 들어간다.

“다들 그 시절 이야기를 하면 키득키득 웃어요. 그런데 전 심각했습니다. 그저 그림 그리고 시 쓰는 게 좋았던 저에게 입시 압박은 숨통을 조이는 것 같았거든요.”

가출후 전국의 여러 곳을 표류하다시피하다가 겨우 문경새재 대승사에 도착해 한 암자에서 짐을 푼 고3학생 박상언은 소설 쓰고, 시 쓰고, 그림 그리고, 개구리 소리 들으면서 10대를 마감하고 청춘을 묻었다.

“친구들과 아버지가 수도권 전체를 찾아 다니시다가 결국 저를 찾아내셨죠. 그때 아버지가 화를 내시는 대신 초코파이 몇 상자를 사오셔서 건네주시는데 눈물이 앞을 가리더군요. 펑펑 울면서 눈물 젖은 초코파이를 먹었죠. 당시 아버지는 저의 예고 입학을 반대해 제가 삐뚤어졌다고 생각하시고 크게 자책감을 갖고 계셨어요. 그래서 그 뒤로는 무조건 제가 한다는 일에 반대하지 않으셨죠. 만약 그때 제가 예고를 갔다면 지금 조각가가 돼있지 않을까요?”

▲1980년 서울의 봄, 대학시절='의대ㆍ법대'를 원했던 부모님의 바람에도 아랑곳없이, 그는 꿋꿋이 중앙대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해 '문학도'의 길로 들어선다.

그러나 광주에서 5월 혁명이 일어나고, 누구나 데모를 하던 그 시절 80년 서울의 봄, 그의 대학생활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그는 휴학을 한 뒤 서울대 옆 '하늘을 받드는 동네'란 뜻의 봉천동에서 입시를 원하는 학생들을 위해 야학교사가 돼 국어와 영어를 가르쳤다.

서울의 봄이 지나고 학교가 휴교하자 대학생의 상당수가 술집에서 살던 시절, 그는 도피처로 해병대에 자원입대하고 싶었다. 그러나 해병대 입대를 반대하는 부모님의 뜻을 장자의 숙명상 따르지 않을 수 없었던 그는 결국 한 학기를 더 다닌 후 특수병인 정보심리전병으로 군에 입대한다.

3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후 다시 찾은 대학생활은 어려움이 많았다.

편입하거나 프랑스로 떠나 불문학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다시 공부 할 형편이 못됐다.

“아버지가 암 치료를 위해 국군수도통합병원에 입원해 계셨기 때문에 새롭게 다른 공부를 하고 싶었어도 엄두조차 못냈죠.”

▲내 나이 28살, 문화예술 행정가=학창시절 꿈 많던 예술학도는 예술가로서의 창작의 꿈은 접었지만 '문화 정책 디자이너'로서의 새로운 길에 들어선다. 1987년 2월 그의 나이 28살.

한국문화예술진흥원(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입사 후 문학담당으로 시작해 미술 담당을 거쳐 한국문학 해외번역출판 지원 업무를 맡아 이문열, 김성동, 이청준 작품 등 우리 문학을 해외에 진출시켰다.

이후 기획관리팀장, 지원부장, 아르코미술관장, 지역문화정책 총괄자인 한국지역문화지원협의회 사무국장 등을 두루 거치며 '문화예술행정가'로 거듭났다.

“지역의 관점에서 새롭게 문화정책을 만들고, 문화행정을 해보고 싶었어요. 중앙의 관점이 아닌, 지역의 관점에서 문화정책을 재설비하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으니까요.”

충청도와 박 대표와의 인연은 당진과 서산문화발전 기본 전략 등 문화 정책 자문을 해주면서 이어졌다.

▲대전문화재단의 '더하기 경영'=박 대표는 1년 6개월 전 대전문화재단 제2대 대표로 부임한 후 대전문화정책 디자이너로서의 새 삶을 시작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간부 출신이 지자체 문화재단 대표가 된 첫 케이스라는 점에서 그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대전문화재단 1기가 창업에 바빠 못했던 일을 2기에서 '더하기 경영'으로 하기 위해 노력중입니다. 3기때에는 '곱하기 경영'을 해야겠지요. 그래서 현장성을 갖춘 지역의 문화경영 인력 양성이 절실히 필요하답니다.”

박 대표가 올해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바로 신진예술가들을 위한 기회 제공이다.

“결국 문화의 중심은 사람을 기르는 것입니다. 문화행정과 예술경영 전문 인력 양성을 위해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싶습니다. 그 바쁜 와중에도 매주 수요일 저녁때마다 한남대에 가서 예술경영과 행정에 관해 강의하는 것도 지역 맞춤형 인재를 더 많이 양성하기 위해서지요.”

대전예술계의 미래를 기름지게 하고 싶다는 그의 다부진 소망이 담긴 말이다.

-대표님이 잘하신 점은 뭐고 아쉬운 점은 뭔지요.

“예술지원심의위원회의 공정성을 추구한 점을 잘했다고 자부합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20년 후의 대전예술의 미래를 그리기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의 신진, 중견, 원로 등 3개 계층은 서로 피해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진들에게는 기회를 부여하고, 중견들에게는 작품을 평가해주고, 원로들에게는 적절한 대우를 해주는 등 단계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아티언스 프로젝트-예술과 과학의 융복합 시도=“최근에는 대전이 갖고 있는 자산을 이용한 '핵심 콘텐츠' 개발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교통도시를 비롯해 행정도시, 과학도시 등 대전이 품고 있는 자산이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이 가운데 기존의 과학도시 이미지에 문화예술도시의 가치를 더해 '예술과 과학의 융복합적인 시도'인 '아티언스 프로젝트'를 펼치고 있습니다.

아티언스는 '아트'와 '사이언스'를 합한 개념인데 예술과 과학의 융복합은 대전이 가장 탁월한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조건이 부족하다고 진행을 미루는 것보다 조건에 맞춰 진행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대전이야말로 '예술과 과학의 융복합' 최적지라고 말했다.

▲도시를 젊게-'5고 4거리'=“대전에 와서 살아보니 나이 든 사람들이 살기에는 아주 좋은 도시입니다. 그러나 젊은이들에게는 놀거리도 부족하고, 볼거리, 일자리도 부족합니다. 도시를 젊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박 대표가 제안하는 '5고 4거리'는 '먹고, 놀고, 보고, 사고, 자고'와 '먹거리, 놀거리, 볼거리, 살거리'다.

“도시의 경쟁력은 문화 수준에서 나옵니다. 품격 있는 문화도시의 전제조건은 지역의 특색을 살려 명품 문화 수도를 어떻게 만들어 나가느냐에 있죠. 대전문화재단은 '고품격 문화 창조 도시'의 중심에 서서 대전의 문화지형도를 새롭게 그려나가고 싶습니다.”

'자기할일을 다하고 난 뒤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는 '수인사대천명'을 좌우명으로 삼고 산다는 박 대표는 '예술행정이야말로 바로 예술'이라고 말하며 자부심과 보람을 전했다. 예술가의 꿈을 실현시켜주는 사람인 '문화예술행정가'로 20여년을 쉼 없이 달려온 그는 이제 이 분야 최고의 전문가로 우뚝 솟은 거목이 됐다.

“예술가 여러분은 많이 꿈꾸시고, 많이 말씀해주세요. 저희 같은 행정가가 최선을 다해 가능하게 해드리겠습니다.”

만능 엔터테인먼트 재간꾼 박상언 대표가 만들어내는 대전의 문화지형도가 기대되는 이유다.

대담=한성일 문화독자부장(부국장)ㆍ정리=박수영 기자ㆍ사진=이민희 기자


●박상언 대표는 누구

▲1960년 경기도 남양주 출생 ▲중앙대학교 예술대학(문예창작학) 및 동 대학원(예술경영학) 졸업, 방송대학교 대학원(행정학) 졸업, 고려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문화콘텐츠학) 수료.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입사(1987) 후 기획관리팀장, 지원부장, 미술관장(~2006), 중앙대 예술대학원 객원ㆍ겸임교수(2004~2007),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예술인력개발원장, 정책기획실장, 경영전략본부장(2006~2010년), 국악방송 '박상언의 문화사랑방'(2006~2007, 월~금) 진행, 한국지역문화지원협의회 사무국장(2010~2011), 현 한국예술경영학회 이사(2006~현재), 현 문화예술콘텐츠학회 이사(2011~현재), 현 한남대 사회문화대학원 겸임교수(2013~현재), 현 (재)대전문화재단 대표이사(2011~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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