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두] 졸업잔치

  • 오피니언
  • 사외칼럼

[김영두] 졸업잔치

[교육단상] 김영두 서천 한산초 교사

  • 승인 2013-02-26 14:38
  • 신문게재 2013-02-27 20면
  • 김영두 서천 한산초 교사김영두 서천 한산초 교사
▲ 김영두 서천 한산초 교사
▲ 김영두 서천 한산초 교사
1학년 아이들 12명이 우산을 들고 올라온다.

음악과 함께 아이들의 우산춤이 시작되고, 귀엽고 앙증맞은 아이들의 군무가 끝나자 사회자의 진행이 이어졌다.

'1학년 학생들의 공연을 시작으로 한산초등학교 제100회 졸업식을 시작합니다.'

이렇게 우리 반 15명을 위한 졸업식이 시작되었다. 이어진 재학생들의 현악 공연과 합창, 교직원들의 축하 공연, 지역주민들의 밴드 공연까지, 여느 학교와 사뭇 다른 우리들만의 잔치를 위한 잔치. 서운함을 덮는 미래로 한발 더 나가는 아이들을 위한 잔치 분위기…. 지루하고 따분하게 만드는 지역인사네, 어디 장(長)이네 하는 사람들의 수십 년 간 한결 같은 인사말 따위는 애시당초 치워버린, 정말 우리 아이들만을 위한 잔치였다. 또, 정말 우리 아이들만 주목받고 우리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느껴질 잔치여야 했다. 우리 반 아이들은 그럴 자격이 충분했으니까.

3월, 새 학교 전임(轉任)과 함께 만난 우리 반은 10년 만에 처음 보는 모습들이었다. 수업 시간엔 너무 자연스럽게 돌아다니고 교사를 보는 아이는 두세 명 정도. 방과후 아이들 입에선 욕설이 난무하고, 짝을 이룬 아이들의 다른 아이 헐뜯기는 이 아이들에게 너무 익숙해보였다. 이 아이들과 어떻게 지내야 할지 매일 고민하며 지낸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역시 이 아이들도 대한민국의 똑같은 13살 어린이들이었고, 나 또한 여전히 대한민국의 시골 학교 교사인 것은 변함없었다. 가장 익숙한 것이 가장 맞는 답이 될 거라는 생각 외엔 어떤 결론도 없기에 여전히 내가 아는 아이들의 모습에 맞춰 마음 열기를 시도했다. 학급의 규칙은 엄하게, 잘잘못은 그 자리에서 함께 가리고, 이 아이들에겐 익숙하지 않았던 친구에게 사과하기, 그리고 주말은 선생님 집에서 내가 아는 방법, 사람이 사람으로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으로 아이들과의 시간을 만들어갔다.

한동안 엄한 규칙에 여자 아이들은 나 없는 곳에서 나에 대한 욕설을 서슴없이 내뱉었지만, 점점 그 욕설이 줄어들고, 행동이 변화하고, 한 덩어리 학급의 모양이 어느 정도 잡아졌다고 느꼈을 때는 벌써 여름방학이 돼버렸다. 그렇게 아이들이 변화하고, 여름방학 중 교실에서 1박 2일로 함께 한 학급 캠프를 통해 아이들은 단단한 덩어리가 되어갔다. '함께'라는 의미를 스스로 느끼고, 그에 맞는 자신을 만들기 위해 돌아볼 줄 아는 아이들의 모습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학급은 안정이 되고 교실의 온도는 높아져갔다.

졸업 전 2월 중에 1박2일 학급 캠프를 다시 할 때 아이들은 이제 누구보다 끈끈하게 서로를 안아주고 살펴주는 마음을 보여줬다. 그 아이들이 이제 졸업을 한다.

마음을 여는데 익숙하지 않던 아이들이 어깨동무를 할 줄 알고, 남에게 주는 방법을 모르던 아이들이 자신의 체온을 나눠주는 아이들로 조금은 성장해서 졸업을 한다. 그렇기에 우리 아이들을 위한 졸업식은 서운한 감정에 눈물 보이는 식(式)이 아닌 1년간 변화한 것처럼 앞으로의 더 많은 멋진 변화를 위한 잔치여야만 했다. 졸업식 마지막에 꿈풍선을 날리며 바랐던 것처럼.

반 아이 중 오랫동안 아이들에게 나에 대한 불만과 욕을 해 오던 여자 아이가 2학기엔 나에게 와서 안기며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는 일이 잦아졌다. 그 아이가 어제 연락해서 보고 싶다는 말을 했다. 졸업식에서도 나오지 않던 눈물이 쏟아졌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보내준 내 답은 그 아이뿐 아니라 우리 아이들 모두에게 보내는 나의 마음이었다.

“보고싶다, 그리고 사랑한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유성 둔곡 A4블록 공공주택 연말 첫삽 뜨나
  2.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3. [기고] 공무원의 첫발 100일, 조직문화 속에서 배우고 성장하며
  4.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
  5. JMS 정명석 성범죄 피해자들 손해배상 민사소송 시작
  1. 대전보건대, 대학연합 뉴트로 스포츠 경진·비만해결 풋살대회 성료
  2.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3. 한국자유총연맹 산내동위원회, '사랑의 반찬 나눔' 온정 전해
  4. 구본길에 박상원까지! 파리 펜싱 영웅들 다모였다! 대전서 열린 전국 펜싱대회
  5. 대전시, 여의도에 배수진... 국비확보 총력

헤드라인 뉴스


"뜨끈한 한 끼에 마음도 녹아"… 함께 온기 나누는 사람들

"뜨끈한 한 끼에 마음도 녹아"… 함께 온기 나누는 사람들

27일 낮 12시께 눈발까지 흩날리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대전 중구 한 교회의 식당은 뜨끈한 된장국에 훈훈한 공기가 감돌았다. 식당 안에서는 대전자원봉사연합회 소속 자원봉사자들이 부지런히 음식을 나르며 어르신들을 대접하고 있었다. 150여 명의 어르신이 빼곡히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기다렸다. 얇은 패딩과 목도리 차림인 어르신들은 강한 바람을 뚫고 이곳까지 왔다고 한다. "밥도 같이 먹어야 맛있지." 한 어르신이 식당에 들어서자 자원봉사자가 빈자리로 안내했다. 이곳에 오는 대부분은 75세 이상의 독거 노인이다. 매일 혼..

"홈 승리하고 1부 간다"… 충남아산FC 28일 승강전 홈경기
"홈 승리하고 1부 간다"… 충남아산FC 28일 승강전 홈경기

창단 후 첫 K리그1 승격에 도전하는 충남아산FC가 승강전 홈경기를 앞두고 관심이 뜨거워 지고 있다. 충남아산FC는 28일 대구FC와 승강전 첫 경기를 천안종합운동장에서 홈 경기로 치른다. 홈 경기장인 아산 이순신종합운동장 잔디 교체 공사로 인해 임시 경기장으로 천안에서 경기를 하게 됐다. 승강전은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28일 홈 경기 사흘 후인 12월 1일 대구로 이동해 어웨이 경기를 치른다. 승리수·합산 득실차 순으로 최종 승격팀을 정하게 되며 원정 다득점 규정은 적용하지 않아 1·2차전 결과에 따라 연장전 또는 승부차기까지..

충청권 4개시도 "2027 하계U대회 반드시 성공"… 제2차 위원총회
충청권 4개시도 "2027 하계U대회 반드시 성공"… 제2차 위원총회

충청권 4개 시도가 2027년 열리는 하걔세계대학경기대회 성공 개최를 재차 다짐했다. 2027 충청권 하계세계대학경기대회 조직위원회(위원장 강창희, 이하 조직위)는 27일 대전 호텔 ICC 크리스탈볼룸에서 2024년 제2차 위원총회를 개최했다. 이날 총회는 지난 3월 강 위원장이 조직위원장으로 취임한 이후 처음 개최된 것이다. 행사에는 대전시 세종시 충남도 충북도 등 충청권 4개 시도 부지사와 대한체육회 부회장, 대한대학스포츠위원회 위원장, 시도 체육회장, 시도의회 의장 등이 참석했다. 강 위원장과 조직위원회 위원이 공식적으로 첫..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거리 나설 준비 마친 구세군 자선냄비 거리 나설 준비 마친 구세군 자선냄비

  •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 첫 눈 맞으며 출근 첫 눈 맞으며 출근

  •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