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원]1953년에 멈춰선 철마

  • 오피니언
  • 사외칼럼

[민병원]1953년에 멈춰선 철마

[중도마당]민병원 국립대전현충원장

  • 승인 2013-02-25 14:37
  • 신문게재 2013-02-26 20면
  • 민병원 국립대전현충원장민병원 국립대전현충원장
▲ 민병원 국립대전현충원장
▲ 민병원 국립대전현충원장
'정전'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휴전선 인근 북녘 하늘을 향해 멈춰선 녹슨 철마가 그려진다. 서울까지 104㎞, 평강까지 19㎞, 원산까지 123㎞라고 쓰인 낡은 팻말, 60여년 세월 속, 눈물과 한숨에 풍화된 철마는 그리움에 사무쳐서 민들레꽃과 강아지풀을 가슴에 품은 채 갈 길 몰라 철원 월정리역에 멈춰 섰다.

철원평야를 가로질러 원산까지 남북을 오가며 대동강 산바람과 부산 바다 내음을 실어 날랐을 철마는 행선지를 잃어버렸다. 언제쯤이면 기쁨의 눈물로 철마를 닦고 희망의 햇살로 빛나는 철로 위를 달릴 수 있을까.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제159차 본회의 휴전협정 조인식에서 유엔군 대표인 해리슨 미국 육군 중장과 북한과 중국측 대표 남일이 휴전협정조인문에 무표정하고 차가운 얼굴로 서명했다.

미 8군 사령관은 '오후 10시를 기해 전투 행위를 중지한다'는 정전명령을 하달했다. 전쟁 발발 3년 1개월만에 전쟁이 정지됐다. 1951년 7월 10일, 첫 정전협상 후 정전협정체결까지 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올해는 정전협정을 맺은 지 딱 60년이 된다. 한 갑자의 세월이 흐른 지금, 7월 27일이 시사하는 바를 찾아보자.

7월 27일란 숫자는 영화 '고지전'을 연상케 한다. 영화에서 7월 27일 10시, 정전협정이 체결됐다는 문건을 읽는 순간 모두 환호에 찬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정전협정효력은 22시부터 발생하므로, 그전에 애록고지를 재탈환하라는 명령이 내려진다. 살아남기를 간절히 바랐던 부대원들은 최후의 전투에서 모두 전사한다. 이 애록고지는 지금의 백마고지로, 시체가 쌓여 만들어진 산이라 불릴 정도로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그때 철모를 쓰고 군화를 벗지 못한 수많은 주검은 이제 산이 돼버렸다.

지금도 이름 모를 산야에 홀로 남겨진 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전사자가 13만 명이 넘으며 대전현충원 위패실에 모셔진 전사자만 4만여 명이 된다. 가끔 위패실에서 검은 돌에 각자된 이름만을 쓰다듬으며 흐느끼는 유가족들을 보게 된다. 어느새 정전 60년이 됐지만 유가족의 아픔은 오늘도 정전되지 않았다.

눈물로 얼룩진 위패실에 서면, 나란히 지워진 2개의 이름이 눈에 띈다. 형제전사자다. 같은 날 입대하고, 같은 부대에 배치되어 같은 전투에 참여해 한 날 한 시에 전사했으며, 같은 날 유해가 발굴돼 이제는 '흙이 되어버린 형제' 전사자다. 1951년 4월 5일 빨치산 토벌작전 도중 전사했고, 50년이 흐른 2001년 5월 21일 전남 화순군에서 유해가 발굴됐다. 참혹한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아름답게 피었던 형제애의 꽃은 2002년 4월 26일, 푸른 잔디 위에 나란히 묘비로 피어 있다.

잊혀진 전쟁, 산화한 이름, 돌아갈 수 없는 고향, 이산가족의 눈물, 찾는 이 없는 무덤처럼, 푸른 잡초에 둘러싸인 철마를 기억하는 이도 사라지고 있다.

전쟁의 잿더미에서 세계 10위라는 경제대국의 신화를 이뤘지만 청소년들의 안보의식은 매우 희박해졌다. 이제는 정전과 분단이 당연시돼 통일과 완전한 평화를 바라는 이도 드문 것 같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 녹슨 철마를 일으켜 세우고 끊어진 철로를 이으려면 굳건한 안보의식과 나라사랑정신이 필요하다. 우선 과거 전쟁에 대한 아픈 기억과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평화도 이 땅을 사랑한 누군가의 피와 살로 얻어진 것임을 가르쳐야 한다.

또한 정전협정 60주년을 맞아 목숨을 걸고 싸운 UN참전유공자와 호국영령 모두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정전 60주년이 아니라 종전 60주년을 맞아 철마를 타고 하루빨리 대륙으로 떠나고 싶다. 허리 잘린 호랑이가 아니라 세계를 향해 호령하며 질주하는 대한민국을 꿈꾸며.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유성 둔곡 A4블록 공공주택 연말 첫삽 뜨나
  2.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3. [기고] 공무원의 첫발 100일, 조직문화 속에서 배우고 성장하며
  4.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
  5. JMS 정명석 성범죄 피해자들 손해배상 민사소송 시작
  1. 대전보건대, 대학연합 뉴트로 스포츠 경진·비만해결 풋살대회 성료
  2.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3. 한국자유총연맹 산내동위원회, '사랑의 반찬 나눔' 온정 전해
  4. 구본길에 박상원까지! 파리 펜싱 영웅들 다모였다! 대전서 열린 전국 펜싱대회
  5. 대전시, 여의도에 배수진... 국비확보 총력

헤드라인 뉴스


"뜨끈한 한 끼에 마음도 녹아"… 함께 온기 나누는 사람들

"뜨끈한 한 끼에 마음도 녹아"… 함께 온기 나누는 사람들

27일 낮 12시께 눈발까지 흩날리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대전 중구 한 교회의 식당은 뜨끈한 된장국에 훈훈한 공기가 감돌았다. 식당 안에서는 대전자원봉사연합회 소속 자원봉사자들이 부지런히 음식을 나르며 어르신들을 대접하고 있었다. 150여 명의 어르신이 빼곡히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기다렸다. 얇은 패딩과 목도리 차림인 어르신들은 강한 바람을 뚫고 이곳까지 왔다고 한다. "밥도 같이 먹어야 맛있지." 한 어르신이 식당에 들어서자 자원봉사자가 빈자리로 안내했다. 이곳에 오는 대부분은 75세 이상의 독거 노인이다. 매일 혼..

"홈 승리하고 1부 간다"… 충남아산FC 28일 승강전 홈경기
"홈 승리하고 1부 간다"… 충남아산FC 28일 승강전 홈경기

창단 후 첫 K리그1 승격에 도전하는 충남아산FC가 승강전 홈경기를 앞두고 관심이 뜨거워 지고 있다. 충남아산FC는 28일 대구FC와 승강전 첫 경기를 천안종합운동장에서 홈 경기로 치른다. 홈 경기장인 아산 이순신종합운동장 잔디 교체 공사로 인해 임시 경기장으로 천안에서 경기를 하게 됐다. 승강전은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28일 홈 경기 사흘 후인 12월 1일 대구로 이동해 어웨이 경기를 치른다. 승리수·합산 득실차 순으로 최종 승격팀을 정하게 되며 원정 다득점 규정은 적용하지 않아 1·2차전 결과에 따라 연장전 또는 승부차기까지..

충청권 4개시도 "2027 하계U대회 반드시 성공"… 제2차 위원총회
충청권 4개시도 "2027 하계U대회 반드시 성공"… 제2차 위원총회

충청권 4개 시도가 2027년 열리는 하걔세계대학경기대회 성공 개최를 재차 다짐했다. 2027 충청권 하계세계대학경기대회 조직위원회(위원장 강창희, 이하 조직위)는 27일 대전 호텔 ICC 크리스탈볼룸에서 2024년 제2차 위원총회를 개최했다. 이날 총회는 지난 3월 강 위원장이 조직위원장으로 취임한 이후 처음 개최된 것이다. 행사에는 대전시 세종시 충남도 충북도 등 충청권 4개 시도 부지사와 대한체육회 부회장, 대한대학스포츠위원회 위원장, 시도 체육회장, 시도의회 의장 등이 참석했다. 강 위원장과 조직위원회 위원이 공식적으로 첫..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거리 나설 준비 마친 구세군 자선냄비 거리 나설 준비 마친 구세군 자선냄비

  •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 첫 눈 맞으며 출근 첫 눈 맞으며 출근

  •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