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국원]대학의 봄

  • 오피니언
  • 사외칼럼

[배국원]대학의 봄

[시사 에세이]배국원 침례신학대 총장

  • 승인 2013-02-25 14:30
  • 신문게재 2013-02-26 20면
  • 배국원 침례신학대 총장배국원 침례신학대 총장
▲ 배국원 침례신학대 총장
▲ 배국원 침례신학대 총장
드디어 3월, 봄이 되었다. 올 겨울은 유난히 매섭게 추운 날들이 많아서 더 길게 느껴졌던 시간이었다. 그러나 장강(長江)의 뒷 물이 앞 물을 밀어낸다는 중국속담처럼 시간만큼은 어김없이 흘러가기 때문에 아무리 기세등등한 추위일지라도 결국 봄 기운의 순리(順理)를 막을 수 없는 법이다.

자연을 벗하여 살던 우리 선조들은 반복하여 흐르는 시간의 이름도 자연의 현상을 연상시키는 흥미로운 명칭들을 부여하였다. 가령 우수(雨水)는 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시간의 이름이며 경칩(驚蟄)은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놀라서 깨어날 만큼 따스해지는 시간의 이름이니 멋지지 않은가? “경칩난 게로군!”이라는 속담은 벌레들이 경칩이 되면 울기 시작하는 것처럼 과묵한 사람이 드디어 말을 하기 시작하는 의미라고 하니 이 또한 재미있는 표현 아닌가? 한국의 개구리들보다 서양의 두더지들은 더 성질이 급한지 서양의 봄을 알리는 일명 '두더지의 날'(Groundhog Day) 혹은 성촉절(聖燭節, Candlemas)은 경칩보다 보통 한달 앞선 2월 초에 행사가 열리곤 한다.

3월이 유독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다른 이유는 우리나라 모든 교육기관들의 새 학년이 시작되는 달이기 때문이다. 전국 곳곳의 초등학교에서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귀염둥이 꼬마들이 입학식에 의젓하게 줄 서있는 광경은 언제 보아도 대견스럽다. 200여곳의 전국 대학 캠퍼스도 새로운 활기를 불러일으키는 풋풋하고 귀여운 신입생들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대학교 신입생'이라는 말은 언제 들어도 싱싱한 젊음의 맥박치는 소리가 느껴지는 단어이다. 그래서인지 미국사람들은 대학신입생을 아예 '신선한 사람'(freshman)이라고까지 말하지 않는가?

우리 일생 중 가장 아름다운 시절 중 하나가 대학생활 기간임은 분명하다. 4년간 학창생활 동안 과연 무엇을 이루던 간에 대학시절은 모든 이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 가운데 하나로 기억될 것임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이 젊은 계절은 젊음 그 자체로서 이미 훌륭한 업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젊음을 마음껏 즐기고 누려야 할 요즘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우울하다는 소식이 많다. 비싼 등록금을 내고 공부를 해도 배운 것을 활용할 수 있는 직장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이 답답하기 때문이다. 취업이 되지 않으니 4년간 배운 학문이 전혀 실효성이 없는 이론에 불과한 것 같은 좌절감이 들기 때문이다.

패기에 넘쳐야 할 대학신입생들 조차 미리부터 주눅들게 하는 '취업'이라는 현실적 괴물은 대학 본연의 의미조차 의심하게 할만큼 위협적인 존재다. 흔히 대학을 학문의 전당이라고 하는데 보다 단순하게 말하면 연구하고 가르치고 배우는 것에 전념하는 기관이라는 의미다. 사실 인류역사상 세상의 여러 직업들 가운데 유형적 물품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무형적 지식을 연구하고 전달하는 직업이 가능하다는 발상은 획기적인 것이었다. 이른바 '호모 아카데미쿠스'(homo academicus) 혹은 '학문적 인간'의 등장은 재화와 물품의 생산적 활동을 추구하기보다 사물에 대한 객관적, 이론적 지식을 탐구하는 새로운 직업이 탄생함을 의미하였다.

대학이 인류에게 큰 선물이라는 의미는 바로 여기에 놓여있다. 한 마디로 대학은 앎과 배움이 있는 곳이다. 지식은 대학의 본분이며 대학의 영광이다. 대학 도서관 서가에 꽂힌 오래된 책들은 한 권, 한 권 모두가 다 인간이 획득한 지식을 들어내는 기념비들이다. 그 낡은 책장을 한 갈피씩 넘길 때마다 우리는 지식이라는 크나큰 연결고리를 통해 인류의 진정한 구성원이 되어간다고 느낄 수 있다. 우리가 이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생물과 사물에 관하여 이만큼이나 알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앎과 배움이 있기 때문에 대학은 존재하며, 대학은 아름답고, 대학은 감동적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처한 현실은 대학과 대학생들을 오로지 '취업'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위협하는 것 같다. 대학생이라면 당연히 데카르트, 칸트, 쇼펜하우어를 읽어야 한다면서 '데칸쇼'를 외쳤던 선배들과는 달리 공무원시험 참고서를 외워야 하는 오늘의 후학들이 안쓰럽기 짝이 없다. 이 봄에 새로 취임하는 대통령께서 정말 우리 대학신입생들이 봄다운 봄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신탄진동 고깃집에서 화재… 인명피해 없어(영상포함)
  2. 대전 재개발조합서 뇌물혐의 조합장과 시공사 임원 구속
  3. [현장취재]대전MBC 2024 한빛대상 시상식 현장을 찾아서
  4. aT, '가루쌀 가공식품' 할인대전 진행
  5. 국립농업박물관, 개관 678일 만에 100만 관람객 돌파
  1.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2. 농림부, 2025년 연구개발 사업 어떤 내용 담겼나
  3. 제27회 농림축산식품 과학기술대상, 10월 28일 열린다
  4. 사회복지법인 신영복지재단 대덕구노인종합복지관, 저소득어르신에게 쌀 배분
  5. 농촌진흥청, 가을 배추·무 수급 안정화 지원

헤드라인 뉴스


‘119복합타운’ 청양에 준공… 충청 소방거점 역할 기대감

‘119복합타운’ 청양에 준공… 충청 소방거점 역할 기대감

충청권 소방 거점 역할을 하게 될 '119복합타운'이 본격 가동을 시작한다. 충남소방본부는 24일 김태흠 지사와 김돈곤 청양군수, 주민 등 9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119복합타운 준공식을 개최했다. 119복합타운은 도 소방본부 산하 소방 기관 이전 및 시설 보강 필요성과 집중화를 통한 시너지를 위해 도비 582억 원 등 총 810억 원을 투입해 건립했다. 위치는 청양군 비봉면 록평리 일원이며, 부지 면적은 38만 8789㎡이다. 건축물은 화재·구조·구급 훈련센터, 생활관 등 10개, 시설물은 3개로, 연면적은 1만 7042㎡이다..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의 한 사립대학 총장이 여교수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경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대학노조가 총장과 이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대학 측은 성추행은 사실무근이라며 피해 교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A 대학 지회는 24일 학내에서 대학 총장 B 씨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성추행 피해를 주장하는 여교수 C 씨도 함께 현장에 나왔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C 씨는 노조원의 말을 빌려 당시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 C 씨와 노조에 따르면, 비정년 트랙 신임 여교수인 C 씨는..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20대 신규 대원들 환영합니다." 23일 오후 5시 대전병무청 2층. 전국 최초 20대 위주의 자율방범대가 출범하는 위촉식 현장을 찾았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자원한 신입 대원들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첫인사를 건넸다. 첫 순찰을 앞둔 신입 대원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맞은 편에는 오랜만에 젊은 대원을 맞이해 조금은 어색해하는 듯한 문화1동 자율방범대원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위촉식 축사를 통해 "주민 참여 치안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자율방범대는 시민들이 안전을 체감하도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장애인 구직 행렬 장애인 구직 행렬

  •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