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동혁 대전지방법원 판사 |
재판을 하다보면 100% 신뢰할 수 있는 거짓말탐지기가 법정에 비치되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 때도 있다. 그러나 그런 기계는 아직 없고, 대학이나 사법연수원에서 누구 말이 거짓말인지를 가려내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과목이 있는 것도 아니다. 판사도 법에 정해진 증거법칙에 따라 당사자가 제출한 증거만을 가지고 사실을 가려야 하기 때문에 '진실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일'은 힘든 일 중의 단연 으뜸이다.
그 다음으로 힘든 것은 '형사재판에서 형을 정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때로는 유무죄를 가리는 것보다 형을 정하는 것이 훨씬 힘든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판에 대한 불만은 주로 형사재판에서의 양형에 집중되어 있다. 형법 제51조는 형을 정함에 있어서 '범인의 연령, 성행, 지능과 환경, 피해자에 대한 관계, 범행의 동기, 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 등을 참작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위와 같은 여러 사정을 참작해야 한다는 것은 충분히 수긍이 가지만 막상 이를 참작하려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뿐 아니라 일반인들은 위와 같은 여러 사정을 참작하여 형을 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도무지 인정해주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 왜 똑같이 100만원을 훔쳤는데 형이 다르냐고 아우성이다. 그러나 똑같이 100만원을 훔쳤어도 어른이 훔친 것과 어린이가 훔친 것이 다르고, 전과가 있는 사람과 초범이 훔친 것이 다르다. 전과도 같은 종류의 전과인지 다른 종류의 전과인지가 다르고, 전과가 몇 번이 있느냐가 다르다. 그것뿐인가? 지하철에서 전혀 모르는 사람의 돈을 훔친 것과 친구의 돈을 훔친 것이 다르고, 자식의 병원비를 위해 돈을 훔친 것과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돈을 훔친 것이 다르다. 돈을 잃어버렸지만 피해자가 크게 상심하지 않는 경우와 조금 극단적이지만 전 재산을 도둑맞고 피해자가 자살한 경우를 똑같이 처벌해야 할까? 범행 후의 정황은 또 어떤가? 법정에서까지 범행을 극구 부인하는 경우와 범행을 뉘우치고 자백하는 경우가 다르고, 자백은 하지만 명확한 증거가 제시되자 마지못해 자백하는 경우와 처음부터 스스로 자백하는 경우가 다르다.
지금까지 예시한 것들은 예시에 불과하다. 각각의 양형조건은 너무도 다양하고, 엄밀히 말하면 양형의 조건이 똑같은 사건은 단 한 사건도 없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같은 사건에서 양형이 같지 않다고 불만이다.
다시 말하지만 양형의 조건에서 보면 같은 사건은 단 한 사건도 없다. 그리고 그 양형의 조건이라는 것도 판사마다 평가가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발생하는 모든 형사사건을 단 한명의 판사가 모두 처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양형의 편차 또한 불가피한 것이다. 다만 그 편차를 줄이려는 노력이 있을 뿐이다. 각각의 양형 요소들을 수치로 정확하게 평가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사건마다 어떤 양형은 옳고 어떤 양형은 그르다고 평가할 수 없으며, 양형의 요소들을 꼼꼼히 따져보지 않고 판결을 쉽게 비판해서도 안 된다.
양형은 수학처럼 모든 양형 요소들을 수치로 환산하여 정확한 하나의 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수긍할 수 있는 범위를 찾는 일이다. 그것이 한 사건을 두고 징역 1년은 맞고 징역 1년 6월은 틀리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이고, 징역 1년 6월 23일, 벌금 123만5470원 같은 판결을 찾아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판사는 늘 적정한 양형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피고인은 내가 판사를 잘 못 만나서 불리한 형을 받는 것은 아닐까를 염려한다. 양형, 판사와 피고인 모두에게 감당하기 힘든 천형(天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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