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년 인생 대부분을 인천 등 수도권에서 보낸 이의 입가에서 어느덧 '그려'라는 단어가 자연스레 튀어 나온다.지난 2011년부터 1년여간 세종사업본부 1본부장을 지내면서 공사 현장 관계자들과 만나는 시간이 늘었고, 이는 그를 반쯤이나마 충청인으로 만들었다. 그런 그가 지난해 초 본사 조달계약처장으로 외유(?)를 한 뒤, 지난달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세종특별사업본부장으로 컴백했다. 사실상 세종시 건설의 원년, 중책을 맡게된 박인서 본부장. 그는 요즘 민원해결에 24시간이 짧을정도로 바삐 뛰고 있다. 박 본부장을 만나 인생사를 들어보았다. <편집자 주>
▲1년 만에 그가 다시 돌아왔다=박인서 본부장은 소통형 리더로 알려져 있다. 세종사업본부 1본부장 재임 시절 그의 모습이 이를 뒷받침한다. 1본부는 보상과 주민이주, 사업지구 관리, 지장물 철거, 부지조성공사, 도시기반 시설공사를 담당했다. 역할만 봐도, 민원 중의 민원, 모든 공사의 초석 업무임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소위 궂은 일을 도맡아해야 했고, 현장 근로자들과 소통을 위한 식사자리도 적지 않았다.
지난해 초 본사 발령 때 직원들과 악수도 제대로 못하고 떠났다.
박인서 본부장은 “송별식을 못 받아 다시 내려온 것 같다”면서 겸연쩍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조그만 체구지만 떡벌어진 어깨에서 배어나오는 당차고 자신감에 찬 모습은 박인서 본부장만의 트레이드마크다.
▲홀어머니 슬하의 유년기를 추억하다=그가 태어난 곳은 인천시 남구 숭의동. 박 본부장의 말을 빌리면, 당시로는 발전이 정체된 인간적인 냄새가 묻어나는 동네를 연상케했다 한다.
경찰 임무를 수행하던 아버지가 연안부두축조 사업에 뛰어들면서, 꼬마 박인서의 유년기 시절은 비교적 유복했다.
하지만, 아직 철이 채 들기 전인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는 지병으로 어머니와 동생을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나셨다.
“당시 어머니 나이는 40세, 전업주부로 자녀 교육 밖에 몰랐던 어머니께는 감당하기 힘든 현실이었죠.”
그의 어머니는 보유하던 배 2척 중 1척이 침몰하면서 선원들이 사망해 산재보험 처리가 안되던 당시 보상 문제로 또 한번의 시련을 겪는다. 또 아버지가 받은 어음은 종잇장이 되었고, 채무만 남게 됐다. 아버지는 아내와 어린자식들에게 빚만 남기고 떠난 것이다.
“어머니는 결국 아버지 사업을 이어받게 됐고, 2~3년후 홀홀단신 생업전선에 뛰어 들었던 것으로 기억돼요.”
이런 가정 환경은 장남이던 박 본부장을 일찍 철 들게 했다. 그는 “그래도 어머니의 헌신으로 학교생활을 마칠 수 있었다”며 “돌아가시기 전까지 함께 지낼 수 있어 감사했다”며 지난해 향년 81세로 돌아가신 어머니를 회상했다.
▲욕구를 억제할 수밖에 없었던 학창시절=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홀어머니의 헌신과 희생을 눈으로 직접 보고 있었기에 그가 할 수있었던 최선은 학업이었다.
1985년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현재의 LH와 인연을 맺었다
박 본부장은 “학창시절 추억할 만한 부분이 별로 없이 조용히 지냈던 것 같다”면서 “제 스스로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숙맥'이라고 할 수 있겠죠”라며 웃음 지었다.
학업에 대한 열정은 LH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계속됐고, 인하대 재무관리 석사과정을 이수한 뒤 현재는 인천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8살 차이 아내와 결혼, 다들 도둑놈(?)이라 했죠=아내와는 LH 사내 커플로 인연을 맺었다.
과묵한 성격의 그와 달리, 당시 아내는 화통하고 밝고 솔직한 소위 신(新) 여성에 가까웠다.
서로 반대되는 점에 이끌려 4년간의 열애 끝에 1991년 결혼의 문턱을 넘었지만, 이 과정에 어려움도 적지않았다.
둘 사이엔 아무런 장애가 없었지만, 처가집에서도 굉장히 어려워할 정도로 8살이라는 나이 차는 컸다. 부인과의 나이 차 때문에 주위로부터 속칭 '도둑놈'(?)이라는 눈칫밥을 먹기 일쑤였다.
“다행히 또 다른 사내 커플 중 11살 차가 있어 우리 관계는 그래도 덜 주목받았죠.”
▲아이들에게는 0점짜리 아빠랍니다=그가 LH와 인연을 맺어온 시간은 28년 1개월. 주로 인천과 경기 등 수도권에서 근무했지만, 수시로 업무가 바뀌면서 통근거리가 150㎞를 왕복 출ㆍ퇴근하기 일쑤였다.
실제로 그는 서울지사와 본사 공보팀장 및 비서실장, 경기지역본부와 경제자유구역사업처 등에서 근무했다. 지난 2008년 평택 고덕사업단장으로 단위 조직장을 처음 맡았다.
2011년에는 LH세종사업본부 발령과 함께 가족들과 만남의 시간은 크게 줄었다.
현장 근로자들과 민원인 만남이 가족을 대신하게 됐다.
지난해 본사로 자리를 옮기면서 가족과 시간이 많아지는 듯 했지만, 지난달 다시 세종사업본부 수장으로 발령나면서 생이별(?)하는 신세가 됐다.
그는 “아내와 두 딸만 봐도, 스트레스가 절로 풀린다”며 “하지만 그만큼 가족과 시간은 갖지 못한 것 같다. 그나마 카톡으로 소통할 수 있어 다행이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막내가 늦둥이 딸로, 현재 중학교에 다닌다.
▲어려운 일을 도맡아하고 감내하는 스타일=박인서 본부장은 자신의 주관을 강하게 표출하며 조직 전체를 이끌어가는 용장형은 아니라고 말한다.
스스로 감내하고 삭히고, 직원들과 함께 움직이며 문제를 해결하는 선도형 리더십이랄까? 덕장형에 가깝다.
그래서 스스로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다.
1본부장 시설 27개 현장 소장들을 일일이 만나면서, 특히 저가(低價)현장의 경우 얼마나 힘들까라는 느낌을 그들의 눈빛만 봐도 알아챘다고 한다.
“그래서 소주잔을 그 만큼 많이 기울였고, 지금도 그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는 계기가 됐죠.”
박 본부장은 “1본부장 재임 시절 화두는 역사적인 '첫마을 입주'였습니다. 12월26일 입주식을 앞두고 하절기에 10㎜ 이상 강우가 45일 지속되면서, 공기(工期)를 지키기에 어려움이 많았죠. 무엇보다 워크아웃에 들어간 업체들도 많아 이들을 독려하며 끌고 가기 위한 과정이 기억에 생생하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안정감이 있는 연초록색을 좋아한다.
▲첫마을 하자 해소와 명품 세종시 본궤도 진입 최우선=올해는 지난해 7월 출범한 세종시가 본궤도에 오르는 원년이다.
세종시 출범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면, 이제는 계획대로 안정적인 성장을 담보해야할 중책이 그에게 주어졌다.
그는 당면과제로 행복도시 예정지역의 상징적 정주여건인 첫마을을 명품 주거단지로 육성하는 과제를 떠안았다.
첫마을 5~7단지 소음문제로 시작한 민원이 최근에는 혹한의 날씨 속 결로 문제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7일에는 첫마을 주민들과 결로 문제와 관련한 허심탄회한 간담회를 직접 갖기도 했다
세종사업본부장 부임 후 18일 만에 내놓은 그의 해결책은 건설관리처장을 팀장으로 하는 하자 전담 TF팀 구성과 7월까지 결로 문제 해결이다.
해피콜(Happycall) 담당충원과 고객서비스(CS) 전담 요원도 2명으로 늘렸다. 이는 본부장이 이 문제를 직접 진두지휘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셈이다.
지난해 말 정부세종청사 1단계 입주 후 연말까지 지속될 2단계 정부부처 이전의 원활한 지원도 숙제다.
“본부장 부임 후 모든 현안의 초점은 입주민 불편해소에 맞췄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2단계 중앙 부처의 원활한 이전 지원에도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지인으로부터 걸려온 한 통의 전화에서 '그려'라는 충청도 사투리를 자연스레 쓰게 된 박인서 본부장.
어느덧 세종시의 주축이자 건설의 주체로 거듭나고 있는 그를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언어는 아닐까?
2013년 본궤도에 오를 세종시의 밝은 미래를 그와 함께 그려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대담=백운석 경제부장(부국장)ㆍ정리=이희택 기자ㆍ사진=김상구 기자
●박인서 본부장은 누구
▲1959년 인천 출생 ▲인천 광성중ㆍ고, 성균관대 경영학과, 인천대 재무관리 박사 과정 ▲1985년 한국토지공사 입사 ▲가족-부인과 두딸 ▲ 좋아하는 색깔-연초록색 ▲애창곡-박강성 노래면 뭐든 좋음 ▲경력-서울지사 파주사업단 용지부(2000년), 홍보실 공보팀장(2004년), 비서실장(2008년), 경기지역본부 평택고덕사업단장(2009년), 택지사업처 판매기획단장(2009년), 경기지역본부 사업지원팀장(2010년), 경제자유구역사업처장(2011년), LH세종사업본부 1본부장, (2011년), 본사 조달계약처장(2012년) ▲수상경력-건설교통 업무 유공으로 건교부장관 표창(1989년) ▲통일동산 휴식시설부지 매각 유공 LH사장 표창(2003년) ▲상반기 판매 및 대금회수 업무 유공 LH사장 표창(2009년)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