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병대 보령 천북중 교장 |
전근할 때마다 즐겨 쓰던 말을 또 써먹었다. “귀신 잡는 것은 해병대다. 해병대보다 무서운 것은 유병대다. 유병대는 바로 나다. 고로 나는 가장 무서운 교장이다”라며 시골 아이들에게 잔뜩 겁을 주고 “우리 학교는 천북중학교다. 따라서, 우리 학교 학생들은 1000권의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했더니 '2학기 첫날에 이게 웬 날벼락이냐?', '학교 이름이 하필이면 천북이냐'며 아이들이 술렁인다. 이렇게 해서 우리학교 특색사업인 1000 BOOK 독서콘서트의 시동을 걸었다.
천북중학교 학생이라면 입학 이후 20년간 매년 50권씩 1000권의 양서를 읽어야 한다. 학교에서는 매일 방과후 1시간씩 사제동행 독서활동을 펼치며 사제의 정을 나눈다. 힘들어 하던 아이들의 얼굴에는 시간이 갈수록 미소가 번진다. 교장인 나도 '시 외우기'에 동참하고, 주말에 아이들과 함께 소설가 심훈이 『상록수』를 집필하던 '필경사'를 찾아 작가의 숨결을 느끼기도 하였다.
아이들 독서의 향기는 학부모와 지역사회에 퍼져 12월 21일에 개최된 '책과 시와 노래와 그림이 있는 1000 BOOK 독서콘서트'에서 꽃을 피웠다. 아이들 다정다감 한마당에, 콧구멍만 바쁘다의 이정록 향토 시인의 시 이야기, 지역에서 활동하는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감미로운 시와 노래가 더해져 감동의 메리크리스마스가 되었다.
1000 BOOK 독서콘서트는 계속 이어진다. 79명 전교생의 정성이 담긴 시화는 지역민이 자주 찾는 봉화산 등산로에 아름답게 전시돼 편안한 휴식과 감성 공감대의 일익을 담당할 것이다. 아! 경상도 봉화 출신인 나는 봉화산이 있는 천북중학교에 근무한다. 천북이 천복이다.
이제 아이들은 스스럼없이 다가와 말을 걸고, 굴 축제에서 만난 어느 지역주민은 내 손을 힘주어 잡으며 엄지손가락을 위로 올린다. 파이팅을 외치는 사람들의 가슴에는 간절한 그리움과 소망이 담겨 있다. 초등학교 6년간 정들었던 아이들은 타 지역 중학교로 진학한 친구를 그리워한다. 많은 지역주민들은 출신 중학교가 달라 소통과 화합에 걸림돌로 작용되고 있다며 천북중학교로의 대통합을 갈망하고 있다.
천북면은 행정구역상 보령시에 속해 있지만, 홍성과 가까워 많은 초등학생들이 본교보다 홍성군 광천읍 중학교로 진학한다. 고교도 아닌 중학교부터 일어나는 지역 인재 유출은 아이들에게는 친구와 이별하는 슬픔으로, 지역주민들에게는 지역 행사 때에도 서먹서먹한 분위기로 나타나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지역 인재 유출을 막는 일이 금방이야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해법이 있다. 천북중학교가 바로 그 해법이다. 천북중학교가 양질의 교육환경을 구축하고 우수한 프로그램을 운영해 명품학교, 지역민의 학교로 발전한다면 이별의 아픔도 화합의 손실도 사라질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발로 뛴다. 운영위원장, 학부모회장이 든든한 양 날개가 되어 주고 있다. 새 학기에는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다양한 행복 플러스 프로그램을 운영해 천북 대통합의 중심에 본교가 자리할 것이다. 그리고 연말에는 대천역에서 정동진으로 향하는 열차를 전세 내어 교육가족들이 밤새 책을 읽고 시를 노래하고 행복을 공감하는 1000 BOOK 콘서트 열차의 기적을 울릴 것이다. 정동진에 도착해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어깨동무로 대통합의 희망을 기원하고 새 출발을 다짐하리라.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