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준]장애사회와 차별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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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준]장애사회와 차별이론

[논단]이경준 중부대 노인복지학과 교수

  • 승인 2013-02-07 13:07
  • 신문게재 2013-02-08 20면
  • 이경준 교수이경준 교수
▲ 중부대 노인복지학과 교수
▲ 중부대 노인복지학과 교수
얼마 전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이 있었다. 그의 연설문 텍스트에 밑줄을 그어보았다. 제법 익숙한 단어들이 눈에 띈다. 희망, 통합, 평등, 자유, 행복.

약간 지루함마저 들지만, 왠지 또 다른 느낌도 함께 밀려온다. 나열된 단어들은 익숙하게 여겨져 오히려 의미와 가치가 제대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진 않은가 하는.

그 사이 몇 가지 단어들이 추가되기 시작한다. 여성, 동성애자, 이민자, 아동 등. 지루함이 사라진다. 사실 언급된 단어들은 우리 사회에서 흔히 쓰이면서도 실상은 얼마나 '소외'받기 쉬운 단어들이란 말인가.

다시 눈에 들어오는 두 개의 단어가 있다. 권리와 책임. 이쯤 되면 각 단어의 조화가 무엇을 말하는지 대강이나마 짚이기 마련이다.

'사회적 장애'라는 표현이 있다. 말 그대로 사회적으로 만들어지는 장애를 뜻한다. 구체적으로는 불합리한 사회구조나 권력 등 사회 환경적 요소들이 특정 개인 및 집단을 부정적으로 몰아가면서 낙인을 가하거나 소외시키는 현상을 일컫는다. 사회 전반에서는 장애차별을 정당화하고 이러한 환경이 고착화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우리는 이 사회를 '장애사회'(handicapped society)라고 부른다.

여기서 장애발생과 차별을 정당화하는 몇 가지 관점들을 둘러보면 좋겠단 생각이 든다. 왜냐면, 이 사회에서 장애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고 그 시각에서 어떠한 차별과 권리 침해가 일어날 수 있는가를 조금이나마 느껴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단순히 몇 가지로 다 설명할 순 없지만, 잘 알려진 대표적 입장들을 확인해보자.

먼저 사회진화론을 보자. 이는 환경에 잘 적응하는 개체만이 생존한다는 입장으로 사회적으로 적응하고 진화하는 데 적합하지 않은 개체의 배제나 제거를 합리화하고 있다. 그래야만 사회는 건전하게 발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체적 결손으로 근로 활동이 제한될 수밖에 없는 지체 장애인은 사회발전을 저해하는 부적격자일까? 외국에서 시집 온 옆집 새댁이 당장 우리말이 서툴다고 부적응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

우생학 입장도 있다. '열악한 인자를 가진 사람'의 생산을 억제하고 사회적, 경제적, 인종적 배제를 통해 상대적인 우성인자의 번식을 추구한다.

실제 정신적 장애인들에 대한 시설수용과 인권유린이 합법적으로 이루어진 역사가 있다. 1960년대 이후까지도 자행되었던 지적 장애인들에 대한 불임시술이 대표적 예다. 과연 이들은 우량종족 번식에 그렇게 위험한 존재였던가. 그리고 그 기준은 도대체 누구의 기준이란 말인가.

흔히 들어봤을 편견과 낙인에 관련한 설명도 살펴보자.

편견이론은 비과학적 근거나 경험의 결여 상태에서 개인이나 집단에 대해 부정적 선입견을 품음으로써 대상자를 평가절하하고 일탈적 이미지를 부여한다는 내용이다. 에이즈나 한센병에 대한 갖가지 오해들이 여전한 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낙인이론은 우리 사회 대부분의 소외계층 문제와 깊이 연관된다. 즉, 아동이나 노인, 장애인 등 신체적 뿐만 아니라 심리적이고 경제적 측면에 이르기까지 그 기능과 능력이 제한적일 수 있는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회 주류의 관심과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대상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면서 이차적 장애발생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정책 부재이론은 어떤가. 사회적 약자나 소외계층에 대한 정책이 주류사회 집단의 그것에 비해 우선순위가 밀림으로써 정책수립이 보류되거나 무시되는 것이다. 이는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들에도 작동해 각종 사회정책에서의 불공평으로 이어져 합리적 배려를 기대할 수 없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통계적 차별론도 있다. 한 개인이나 소수 특성보다는 그가 속한 집단의 평균적 특성에 의해 평가됨으로써 개인의 능력과 기능, 존엄이 차별받는다는 관점이다. 아무리 여성의 권위가 높아졌다 한들, '유리 천장'이 흔히 존재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겠는가.

곧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한다. 개인적으로 새 대통령에게 매우 특별하고 강인하며 인상적인 연설을 원하지 않는다. 단지 평범한 가치들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고, 그것의 실현을 소박하게 갈망하는 많은 소수자에 대한 합리적 배려를 확인받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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