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을 배경으로 각자의 목적을 위해 서로가 표적이 된 남북한 비밀요원들의 대결을 그린 액션 대작. 류승완 감독은 “사실감과 속도감이 넘치는 한국형 첩보액션영화”라고 소개했다. 여기에 '꽤 잘 만든'이라는 수식을 덧붙여야 마땅하다. 하정우 류승범 전지현 한석규 이경영 등 캐스팅도 화려하다. 올 상반기 최고의 기대작으로 꼽히는 '베를린'을 3가지 키워드로 풀어본다.
▶액션
'액션키드' 류승완 감독 작품답게 감각적인 액션이 돋보인다. 액션 난이도와 호흡, 완성도 면에서 '제이슨 본' 시리즈와 견줄 만하다. 과장된 액션이 아니라 고도로 훈련받은 첩보원들의 간결하고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은 강력하고 시원하다. 북한요원 표종성을 연기하는 하정우가 북한의 태권도 선수 이철남에게 전수받았다는 동작들은 새롭다.
1년6개월에 걸쳐 비주얼 작업을 했을 만큼 신중을 기했다는 '탈출 와이어 액션',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 거리를 전면 통제하고 찍은 '카 체이싱' 등 정두홍 무술감독의 액션 설계는 왜 할리우드가 그를 탐내는지 알 수 있다. 눈을 뗄 수 없게 멋지고 아드레날린이 솟구친다.
▶배우들
하정우는 고생깨나 했을 것 같다. 난투극, 총격전의 중심에 그가 있다. 달리는 차에 몸을 던지고 내동댕이쳐지고…, 맨몸으로 부딪는 리얼 액션의 맛을 제대로 살려낸다. 표종성은 거대한 음모의 표적이 되는 비극적인 캐릭터. 고독한 눈빛으로 안정감 있게 영화를 이끈다. 대척점에 선 동명수는 북한 최고 권력층의 자제이자 피도 눈물도 없는 절대 악. 류승범은 특유의 눈빛과 행동, 대사로 자신만의 악역을 극적으로 그려냈다. 전지현은 '멜로'를 담당한다. '도둑들'에서의 발랄하고 섹시한 이미지를 버리고 여리고 위태로운 캐릭터 구축을 성공적으로 해낸다. 비밀의 키를 쥔 종성의 아내 연정희로 분해 속내를 알 수 없는 묘한 매력을 뿜어낸다. 한석규는 '빨갱이'라며 육두문자를 날리지만 인간미도 있는 국정원 요원 정진수 역. 힘은 빼되 카리스마는 잃지 않는 연기로 극의 강약을 조절한다.
▶베를린
이국적 풍경은 볼거리지만, 류승완 감독은 “냉전시대 베를린 거리의 10명 중 6명은 스파이였다고 한다. 냉전시대는 끝났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 기운이 전해진다”고 말했다. 영화를 보면 그가 느꼈던 기운은 비밀요원들의 '고독과 비애'였던 것 같다. 어디에도 기댈 곳 없고, 함부로 말할 수도 없으며, 의심하고 의심 받고, 늘 떠나야 하는 처지 같은. 서늘한 베를린의 쓸쓸함은 그들의 정서를 미장센으로 상징한다. 속이고, 속여야 하고, 의심할 수밖에 없고 또 숨겨야 하는 영화 속 인물들. 팩트(fact)가 드러나기까지 모호한 그들의 심성이 베를린, 그 회색빛 도시와 닿아있다.
안순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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