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미영 보령 청보초 교사 |
처음 아이들을 만났을 때의 설렘과 모든 일에 정성을 다했던 순간들이 발자국 위에 그려졌습니다. 어디로 발을 내 디딜까 고민하며 한 걸음 내딛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던 시절이 운동장 입구에 찍혀 있습니다. 그랬던 발자국들이 어느 새 일상적인 걸음이 되어 여기저기 찍혀있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더 이상 설레는 조심스럽고 고민스러운 일이 아니라, 무감각하고 평범한 일상이 되어 버렸다는 사실이 두려워졌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나를 되돌아보았습니다.
나의 사랑은 충분했을까요? 아이들을 사랑하려고 노력했지만, 그 노력만큼 아이들을 믿고 사랑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일을 정하게 하기 보다는 내 선택을 강요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넘어지고 쓰러지고 그래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아이들에게 있음을, 그 넘어지고 쓰러지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더욱 성장할 수 있음을 믿어주지 못했습니다.
하루의 대부분을 함께 호흡하는 내 옆의 교직원들…. 이해하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을 찾기에 바빴던 것 같습니다. 학부모들과의 관계도 그 들의 상황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보다는 상황을 분석하기에 바빴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해도 생기고 소통이 단절되기도 했습니다. 그 속에서 생긴 상처들을 나를 성장하는 데 사용하지 못하고 나를 보호하는 방어막으로 만들었습니다.
다음으로 나는 나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던가요? 매일 매일에 안주하며 내 자신을 개발하기 보다는 내 안의 것을 꺼내 쓰기에, 남의 것을 빌려다 쓰기에 바빴습니다. 나만의 수업을 만들어가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잘하는 모습을 모방하기에 급급했습니다. 나의 생각은 점점 아이들처럼 얕아져갔고 나의 마음은 깊이가 없이 넓어지기만 했습니다.
지나 온 나의 모습에 한숨이 나옵니다. 잘한 것이 아니라, 못했던 것들만 떠오릅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선생님.” 아이의 소리에 뒤 돌아보니, 운동장 입구에 한 아이가 서 있습니다. 학교에 책 읽으러 나온 아이가 운동장에 쌓인 눈과 나를 번갈아 봅니다. 가만히 손을 흔드니, 아이가 눈밭에 한 발을 내딛습니다. 눈 속에 발이 푹 들어가니 당황해서 저를 다시 봅니다. 그 모습에 가만히 미소 지었더니 아이가 웃으며 뛰어옵니다. 아이는 어느새 미끄럼틀 위에 올라가 쌩하고 내려옵니다. 아이의 손길에 미끄럼틀 위의 눈이 사라집니다. 나의 한숨도 눈과 함께 사라집니다. 신이 난 아이가 나에게 눈덩이를 던집니다. 눈덩이가 나에게 채 오지 못하고 떨어집니다. 그러나 아이는 그 모습이 좋은지 소리 내어 웃습니다. 그 웃음소리에 학교가 깨어납니다. 추위에 웅크리고 있던 학교가 아이의 웃음소리에 활기를 찾습니다. 나도 오래간만에 소리 내어 웃어 봅니다.
학교는 잠시 방학 중입니다. 그러나 며칠 후면 다시 아이들의 웃음으로 가득 찰 것입니다. 나는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면 다시 사랑으로 채워갈 것입니다. 그 날이 조금씩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웃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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