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진도 충남발전연구원장 |
충남의 한 사람당 지역 내 총생산(GRDP)은 전국 최고 수준이지만, 도민의 행복지수는 전국 평균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자살률은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일찍이 미국의 경제학자 이스털린은 소득이 어느 수준을 초과하면 국내총생산이 증가해도 행복감은 늘어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경우, 1990년 이후 한 사람당 국민소득은 증가했지만 국민의 행복이나 삶의 질은 오히려 악화됐다. 한마디로 성장과 행복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충남발전연구원에서는 지난해부터 장기 프로젝트로 행복 연구를 하고 있다.
연구를 통해 일자리ㆍ소득뿐 아니라, 주거, 교통, 가족과 공동체 관계, 문화, 주민참여 등 복합적인 요인이 사람들의 행복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밝혔다.
우리의 연구에 대한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고 성원을 보내고 있지만, 일부 사람들은 먹고살기도 힘든데 무슨 행복타령이냐고 질타한다. 나는 이러한 질타를 온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사실 하루하루의 삶이 힘든 사람들에게는 행복이란 말 자체가 사치일 뿐이다.
일자리가 없어 생계가 막연한 사람과 적은 수입에 언제 쫓겨날지 불안한 비정규직 노동자, 빚더미 농사에 짓눌린 농민, 심한 스트레스에 자살을 고민하는 청소년, 비싼 등록금을 내고 대학을 졸업해도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젊은이, 아무도 돌보는 이 없는 독거노인들, 심지어 부모가 키우지 못해 버려지는 매년 8400명에 달하는 아이들과 그 부모 등.
이들에게 생존에 필요한 따뜻한 잠자리와 의복, 풍족한 음식, 아이들을 마음 놓고 키우고 가르치고 자존감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는 일자리가 필요하다.
따라서 국민행복시대를 위한 첫째 조건은 무엇보다 우선 모든 국민이 생존의 위협에서 벗어나 기본적 생활권을 영위할 수 있는 복지 시스템을 잘 갖추는 것이다.
기본적인 생활권이 보장되는 것만으로는 사람들은 행복해지지 않는다.
비만을 염려할 정도로 먹거리가 넘치고 장롱 속에는 입지 않는 옷들이 쌓여도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으로 힘들게 번 돈으로 아이들을 밤늦게까지 학원으로 내모는 한 우리는 행복해질 수 없다.
우리는 물질과 돈이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더 많은 돈에 집착하는 것일까. 우리 사회가 매우 불평등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저서 오래된 미래는 풍요롭지는 않았지만, 행복한 공동체적 삶을 영위하던 티베트의 라다크 사람들이 세계화에 진입하면서 공동체가 붕괴하고 불행해지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지금 우리가 사는 한국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불평등한 사회다.
상위 1%가 나라 전체소득의 16.6%를 점유하고 있다. 이는 OECD 국가 가운데서 미국(17.7%) 다음으로 높은 수치다. 아마도 상위 0.1%의 점유 비중을 따진다면 한국은 세계에서 압도적 1위일 것이다.
재벌공화국이기 때문이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지만,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편입되면서 재벌은 무소불위의 공룡으로 성장하였다. 승자독식ㆍ재벌독식 사회에서는 누구도 행복해질 수 없다.
'은하철도의 밤'으로 유명한 시인이자 동화작가인 일본의 미야자와 겐지는 “주위 사람이 불행한데 자신만이 행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국민행복시대를 위한 두 번째 조건은 국민이 골고루 잘 사는 것이다.
이를 위한 국가의 최소한의 책무는 경제민주화다.
국민행복시대를 공약한 박근혜 당선인의 정권 인수 작업이 한창이다. 박 당선인은 국민행복시대를 위해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약속하였다. 올바른 정책 방향이지만 박 당선인이 약속한 경제민주화와 복지는 국민행복시대를 열기에는 많이 미흡하다. 더 큰 문제는 박 당선인이 약속한 경제민주화와 복지가 취임도 하기 전부터 반대에 부딪혀 후퇴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행복시대를 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국민의 기본적인 생활권이 보장되고 더 균등한 사회를 실현하는 것임을 박 당선인은 다시 한번 확약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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