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호]정치인들이여, 미세한 특권이라도 털어내자

  • 오피니언
  • 사외칼럼

[황인호]정치인들이여, 미세한 특권이라도 털어내자

[기고]황인호 전 대전동구의회 의장

  • 승인 2013-01-20 14:52
  • 신문게재 2013-01-21 21면
  • 황인호 전 대전동구의회 의장황인호 전 대전동구의회 의장
▲ 황인호 전 동구의회 의장
▲ 황인호 전 동구의회 의장
얼마전 국회의원들이 헌정사상 유례없이 해를 넘기면서 예산을 졸속처리하고, 그네들만의 노령연금을 통과시켜 만인의 지탄을 받은 적이 있다. 한두번 보아온 것이 아니어서 대수롭지 않은 듯 보이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얼마 전 총선과 대선을 치르면서 정치권이 자정의 노력으로 군살(특권)을 빼겠다는 공약으로 국민의 환심을 사는데 알랑방귀를 뀐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말이다. 그나마 알랑방귀란 것도 200개가 넘는 국회의원의 특권중에서 고작 불체포특권 포기와 세비 30% 삭감, 노령연금 폐지, 의원 정수 축소 정도에 불과했다.

세계에서 112번째로 작은 한국에서 정치 지도층의 특권은 어찌도 그리 많은지 기가 찰 노릇이다. 그래서 대통령을 비롯해 국회의원의 특권을 생각할 때 그들을 신종용어로 '불가리스(可less)계급'이라 칭하고 싶다.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것이 없는 무소불위의 신분이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편에 서 있다고 하면서 특권을 누리는 '노동귀족'이 존재하듯이,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고 하면서 특권을 누리는 '국민귀족'이 있다면 바로 오늘의 정치인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소련에서는 스탈린 집권 이후에 생긴 특권층 '노멘클라투라'가 우리 국회의원들처럼 높은 소득보장과 많은 특권을 지녀 '다차(별장)족'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노령연금에 가족까지 혜택을 주는 등 시대를 초월한 귀족세력으로 군림하면서 평등한 공산국가는커녕, 결국 소련을 붕괴시키는 빌미로 작용하게 된다.

이런 걸 알면서 정치인들이 구시대의 특권을 계급장처럼 달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미셸푸코의 표현대로 “악마는 곳곳에 도사리고 은밀히 우리에게 다가와 영혼을 빼앗아간다'는 의미 속에 악마는 곧 권력과 특권이다. 권력과 특권에 집착하는 것은 악마와 거래하는 것이고, 자신의 주인인 국민은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의 연봉이 2억원에 다다르니 국회의원도 따라잡겠다며 1억3000여만원을 넘어서고, 대통령의 연금이 매월 1088만원이니 뒤질세라 그네들도 노령연금조로 매월 120만원 정도는 받아야겠다는 발상에 지방단체장과 지방의원들도 슬며시 만용을 부려본다. 세금에 대한 외경의식은 실종된 채, 어떻게 하면 연수를 빙자하여 공돈으로 해외나들이 할까에 골몰한다. 유권자가 냉담한 채 등을 돌린 사이에 너도 빼먹고 나도 빼먹자는 식이다. 함께 빼먹는 동안은 서로 아옹다옹 싸울 필요도, 그럴 여유도 없다. 사소한 것 가지고도 피터지게 잘 싸우는 정치권이 특권을 챙기는데 있어서는 여야, 좌우할 것 없이 불현듯 극적인(?) 합의를 잘 만드는지, 15년째 지방의원을 하는 필자로서도 의아스러울 지경이다. 이러니 프로 코미디언인 고 이주일님조차 탄복할 정도로 웃기는 직업층 아닌가!

독일의 헬무트 콜 총리는 아들이 위독하자 그만 혼비백산하여 공사를 구분 못 하고 업무용 헬기를 썼다가, 나중에 잘못을 깨닫고 그 비용을 지불했단다. 어차피 계약직이라면 스웨덴 출신의 국회의원을 프로스포츠 용병선수처럼 사오자는 말이 유권자들의 입에서 제발 나오지 않길 바란다. 국제의원연맹의 최근 보고서는 세계적으로 정치지도자들이 무료교통편이나 면책특권 등 기존의 특권들을 포기하는 추세임을 잘 일깨워주고 있다.

700년전의 백년전쟁을 돌아본다. 영국에 의해 점령당한 프랑스의 칼레시민들이 오롯이 살수 있었던 것은 6명의 자발적인 교수형 자원자가 나섰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를 자청한 사람들은 칼레시의 가장 큰 부자를 비롯하여 시장, 법률가 등 귀족층들이었다. 죽음을 무릅쓰고 칼레시민 모두를 구하고자 한 이들의 숭고한 정신이 하늘을 감동시켰는지 이들은 모두 사면되었고, 영웅들의 처참할 듯 아름다운 사연은 500년이 지난 후에 로댕의 신들린 손으로 '칼레의 시민'으로 부활하였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이러한 정신을 바탕으로 탄생하였다. 특권을 밥 비벼먹듯 하던 왕조시대에도 국민을 생각하여 특권을 털고자 한 것이다.

요즘처럼 많은 눈이 내린 산야를 대하다 보면 서산대사의 선시가 문득 앞을 가로막는다. “함부로 발자국을 내지 말라! 네가 찍은 발자욱이 후세의 이정표가 되리니….”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현장취재]대전MBC 2024 한빛대상 시상식 현장을 찾아서
  2. 대전 신탄진동 고깃집에서 화재… 인명피해 없어(영상포함)
  3. aT, '가루쌀 가공식품' 할인대전 진행
  4. 국립농업박물관, 개관 678일 만에 100만 관람객 돌파
  5. 대전 재개발조합서 뇌물혐의 조합장과 시공사 임원 구속
  1. 농림부, 2025년 연구개발 사업 어떤 내용 담겼나
  2. 사회복지법인 신영복지재단 대덕구노인종합복지관, 저소득어르신에게 쌀 배분
  3. 제27회 농림축산식품 과학기술대상, 10월 28일 열린다
  4. 해외농업·산림자원 반입 활성화 법 본격 시행
  5. 농촌진흥청, 가을 배추·무 수급 안정화 지원

헤드라인 뉴스


‘119복합타운’ 청양에 준공… 충청 소방거점 역할 기대감

‘119복합타운’ 청양에 준공… 충청 소방거점 역할 기대감

충청권 소방 거점 역할을 하게 될 '119복합타운'이 본격 가동을 시작한다. 충남소방본부는 24일 김태흠 지사와 김돈곤 청양군수, 주민 등 9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119복합타운 준공식을 개최했다. 119복합타운은 도 소방본부 산하 소방 기관 이전 및 시설 보강 필요성과 집중화를 통한 시너지를 위해 도비 582억 원 등 총 810억 원을 투입해 건립했다. 위치는 청양군 비봉면 록평리 일원이며, 부지 면적은 38만 8789㎡이다. 건축물은 화재·구조·구급 훈련센터, 생활관 등 10개, 시설물은 3개로, 연면적은 1만 7042㎡이다..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의 한 사립대학 총장이 여교수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경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대학노조가 총장과 이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대학 측은 성추행은 사실무근이라며 피해 교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A 대학 지회는 24일 학내에서 대학 총장 B 씨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성추행 피해를 주장하는 여교수 C 씨도 함께 현장에 나왔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C 씨는 노조원의 말을 빌려 당시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 C 씨와 노조에 따르면, 비정년 트랙 신임 여교수인 C 씨는..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20대 신규 대원들 환영합니다." 23일 오후 5시 대전병무청 2층. 전국 최초 20대 위주의 자율방범대가 출범하는 위촉식 현장을 찾았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자원한 신입 대원들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첫인사를 건넸다. 첫 순찰을 앞둔 신입 대원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맞은 편에는 오랜만에 젊은 대원을 맞이해 조금은 어색해하는 듯한 문화1동 자율방범대원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위촉식 축사를 통해 "주민 참여 치안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자율방범대는 시민들이 안전을 체감하도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장애인 구직 행렬 장애인 구직 행렬

  •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