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혁]재판에 대한 진실과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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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혁]재판에 대한 진실과 오해

[시사에세이] 장동혁 대전지방법원 판사

  • 승인 2013-01-14 14:19
  • 신문게재 2013-01-15 20면
  • 장동혁 대전지방법원 판사장동혁 대전지방법원 판사
많은 당사자들이 재판을 구청이나 시청에 민원을 제기하는 것과 같이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소장만 제출하면 그 다음부터는 법원이 모든 것을 다 알아서 해결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그리고 그 기대가 무너지면 모든 책임을 판사에게 돌린다.

그러나 판사는 운동경기의 심판과 같다. 운동 경기에서 심판은 한 쪽이 불리하다고 편을 드는 법이 없다. 아니 편을 들어서는 절대 안 된다. 그리고 경기의 결과는 모두 선수들의 책임이다. 심판이 도와주지 않았다고 경기에서 패한 선수가 심판을 욕하는 경우는 없다. 경기의 승패는 실력도 중요하지만 그날 경기에서 누가 더 잘 싸웠느냐에 달려 있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선수라도 경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책임도 심판의 몫이 아니다. 그런데 유독 우리 당사자들은 재판에서 자신이 제대로 싸우지 못한 책임을 모두 판사에게 돌린다.

사실 재판에서 싸우고 있는 당사자는 자신들이 직접 겪은 일이기 때문에 진실을 잘 알고 있지만, 판사는 진실과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다. 판사는 둘 사이에 일이 벌어지는 현장에 있지도 않았거니와 눈만 감고 있으면 어떤 일이 일어났었는지 훤히 알 수 있는 초능력을 가진 사람도 아니다.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났고 그것을 밝히기 위해서 어떤 증거를 어떻게 제출할 것인지는 모두 당사자가 해야 할 일이다. 한 쪽 당사자가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른다고 해서 판사가 끼어들어 한 쪽 당사자를 도와주는 일도 허용되지 않는다.

민사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변론주의다. 변론주의를 쉽게 말하면 '판사는 당사자가 주장하고 제출하는 증거의 범위 내에서만 판단할 수 있고, 필요한 주장과 증거의 제출은 당사자가 알아서 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아무리 큰돈을 받을 것이 있다 하더라도 아무 증거도 제출하지 못하거나 제대로 된 증거를 제출하지 못한다면 재판에서 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재판에 대한 당사자들의 오해를 하나 더 들자면, 증거의 가치에 대한 오해다. 당사자들은 증인이 나와서 자신에게 유리한 말을 한마디만 해주면 재판에서 거의 이긴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일단 당사자들이 신청하는 증인이란 대부분 자신에게 유리한 증인들이고, 법원에 나오기 전에 이미 어떤 내용으로 증언할지 다 상의하고 나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증인은 이미 한 쪽 당사자에 의해 오염되어 있다. 그런 증인의 말을 쉽게 다 믿으란 말인가? 그리고 쉽게 경험하는 일이지만 사람의 기억이라는 것이 그렇게 믿을 만한 것인가? 그런저런 이유로 증인의 증언은 믿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증인들이 진실을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진실을 알고 있는 당사자가 보기에는 증인이 법정에 나와서 진실을 제대로 말해 줬으니 이제 재판은 이긴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판사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증인이 진실을 말했다는 것과 그 말이 믿을만한 것이냐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이제 판사는 중립적인 심판에 불과하며 재판은 당사자가 스스로의 책임 아래 진행해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 보편적인 인식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무리 열심히 기록을 보고 당사자의 말을 한 마디도 놓치고 않고 결론을 내리더라도 재판 결과가 자신의 맘에 들지 않으면 모든 책임을 판사에게 돌리는 현실은 정말 가슴 답답한 일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우연히 접하게 되었지만 판사로서의 내 마음과 맞닿은 부분이 있어서 자주 음미해 보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라는 시다. 국민들도 법원을 자세히 그리고 오래 지켜봐 주기를, 그래서 재판에 대한 신뢰가 쌓이고 법원의 권위가 바로 서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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