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인생은 우리 각자의 것이 아닙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우리는 타인과 연결되어 있죠. 과거와 현재도요. 우리는 모든 악행과 선행에 따라 미래가 결정되는 거죠.”
1849년 노예제도가 힘을 발휘할 당시 흑인 노예에 도움을 받고 노예해방운동에 뛰어드는 백인 변호사, 1936년 금지된 사랑을 하면서 궁극의 심포니를 완성하려는 작곡가. 1973년 악덕 기업가에 맞서 핵발전소의 비리를 폭로하려는 여기자, 2012년 감금당한 요양원에서 벗어나고자 고군분투하는 할아버지.
모두 권위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2144년 미래 서울에서 반란군을 만나 혁명을 꿈꾸게 된 복제인간 소녀, 2321년 종말이 가까운 미래, 억울하게 가족을 잃고 다른 행성에서 온 외계인과 위험한 여행을 떠나는 사내의 이야기가 흩어지고 만나면서 종국엔 손미-451의 말을 증명해 간다.
데이비드 미첼이 쓴 동명 소설이 원작. 소설은 뫼비우스 띠처럼 이어지는 인연의 아이러니를 그렸다. 영화 또한 미스터리, 로맨스, 스릴러, 코미디, SF, 판타지 등 각기 다른 장르에 각기 다른 이야기를 펼쳐놓지만 시공간을 초월해 조화를 이룬다.
이야기 속 캐릭터들도 절묘하게 얽혀있다. 잘 알려졌다시피 배우들-톰 행크스, 할 베리, 짐 스터게스, 배두나, 휴 그랜트, 벤 위쇼, 수잔 서랜든, 휴고 위빙 등-은 특수분장의 힘을 빌려 성별과 연령을 바꿔가면서 다양한 인물로 여러 에피소드에 등장한다. 예를 들어 손미-451역의 배두나는 백인 변호사 어윙의 아내 틸다, 중요한 순간 여기자를 구하는 멕시칸 여자까지 1인 3역을 소화한다. 변신한 배우들을 찾아보는 것도 영화를 보는 또 다른 재미다.
'매트릭스'를 만든 앤디와 라나 워쇼스키 남매,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를 연출한 톰 티크베어 감독은 인종, 차별, 시대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이런 도전을 통해 인간은 시공을 초월해 모두 연결되어 있으며, 삶의 양태는 똑같이 반복된다는 것을 스크린에 구현해낸다. 동양적인 '인연' '윤회설'이다.
그것이 성공적인지는 관객마다 평가가 다를 것 같다. 한 편의 영화에서 다채로운 이야기를 만나는 건 흥미롭고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6개의 이야기를 따라가기란 솔직히 버겁다. 2시간 52분에 달하는 러닝타임 내내 집중력을 유지한다는 것도 쉽지 않다. 미국 평단의 반응도 극과 극이다. 영화평론가 로저 애버트는 “역사상 가장 야심찬 기획”이라고 극찬한 반면, '타임'은 “고답적이고 뜬구름 잡는 이야기”라며 지난해 최악의 영화로 뽑았다.
할리우드 진출작으로 관심을 모은 배두나는 할리우드 명품 배우들 사이에서 전혀 꿇리지 않는 존재감을 드러낸다. 영어 대사는 물론 복제인간 손미-451 캐릭터를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표현해냈다.
안순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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