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재]의자의 주인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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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재]의자의 주인이 있는가?

[세설]정덕재 시인ㆍ대전시 인터넷방송 PD

  • 승인 2013-01-10 14:29
  • 신문게재 2013-01-11 21면
  • 정덕재 시인ㆍ대전시 인터넷방송 PD정덕재 시인ㆍ대전시 인터넷방송 PD
▲ 정덕재 시인ㆍ대전시 인터넷방송 PD
▲ 정덕재 시인ㆍ대전시 인터넷방송 PD
새해가 되면 친분을 떠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덕담을 나누는 건 사람 냄새 나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새해인 1월에는 각 직장에서 자리와 보직을 이동하는 인사이동도 시행된다. 주요기관의 간부들 인사는 언론에서 이름과 함께 동정으로 알리는 경우가 많은데 오래전'새 의자'라는 제목으로 인사ㆍ동정을 전하던 신문도 있었다. 신문사가 인사코너의 제목을 '새 의자'라고 붙인 것은 의자의 상징성 때문일 것이다.

의자는 사용 성격의 의미에 따라 권력의 핵심이 될 수도 있고 상사와 직장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는 샐러리맨의 애잔함이 되기도 한다. 또 작가 공지영의 소설 의자놀이의 제목처럼 생존이 걸린 찢어지는 아픔이자 죽음에 이른 해고노동자의 비극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만큼 우리의 일상과 밀접한 사물 중에서 인생의 기쁨과 고통, 탐욕이 함축적으로 담겨 있는 것을 꼽으라면 나는 의자를 선택하고 싶다.

어쩌면 최초의 의자는 바람에 쓰러진 나무토막이었을지도 모른다. 점차 다리 달린 의자가 등장하고 신분상승의 의미를 담은 회전의자가 발명되었으며 의자에 바퀴가 달려 이동의 자유가 허락되는 등 의자 진화의 과정은 담긴 인류 문명발전의 과정과 닮아있는 탓이다.

의자의 상징성은 가요와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의 소재로 등장한다. 오래된 대중가요인 '회전의자'에서는 '빙글빙글 도는 의자. 회전의자 임자가 따로 있나 앉으면 주인인데. 사람 없이 비워둔 의자는 없더라. 억울하면 출세하라'며 회전의자가 가진 신분 상승의 욕망을 외쳤다.

반면 가수 장재남은 '빈 의자'라는 노래에서 '서 있는 사람은 오시오. 나는 빈 의자 당신의 자리가 되드리리다. 피곤한 사람은 오시오. 나는 빈 의자'라고 부르며 안락과 배려라는 의미로서 의자의 상징을 드러냈다.

의자는 성적 욕망을 표현하는 매개체로 활용되기도 했다. 영화 '원초적 본능'의 주연배우 샤론 스톤이 미니스커트를 입은 채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는 장면은 당시에 많은 남성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샤론 스톤이 이 영화 한 편으로 관능미의 대표배우로 등극했을 만큼 의자를 활용한 성적 이미지 전달은 지금도 많은 가수와 연예인들의 포즈나 춤을 통해 이어지며 확장되고 있다.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 속의 의자는 서민과 사연을 지닌 사람들의 넋두리와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도구로 자리를 잡고 있다. 드라마는 의자에 앉은 손님과 '심야식당'의 주인 고바야시 카오루가 서 있는 모습을 통해 말하고 듣고 전달하는 사람의 관계를 절묘한 구도로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의자가 가진 안식과 내려놓음의 의미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렇듯 의자는 다양한 의미와 상징체계를 내포하며 그 뜻을 확대 재생산하는 중요한 기제로 자리를 잡고 있다.

회전의자나 빈 의자, 심야식당의 의자든 간에 의자에는 누군가 앉기 마련이다. 다만, 어떤 사람이 앉느냐에 따라 사용자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와 이야기의 전달력은 엄청나게 다를 수 있다.

의자의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관계와 현재가 달라지고 미래의 명운이 바뀌는 이유를 시인 정현종은 '방문객'이라는 시를 통해 이렇게 설파하고 있다.

'사람이 온다는 건 /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예측과 억측이 오가는 인사철이기도 하지만 새 정부 출범 전후로 새 의자에 앉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의자의 주인이 바뀌고 없었던 의자가 놓이고 때로는 의자에 앉을 사람끼리 티격태격하며 날이 선 투쟁을 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의자의 주인은 늘 바뀌어왔다는 점이다. 의자에 앉는 사람은 의자의 주인이 자신이 아니라는 점을 늘 잊지 말아야 한다. 또 회전의자가 한 방향만이 아니라 좌우와 앞뒤 전 방향을 원활히 보라는 뜻에서 개발됐다는 점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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