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의화 부장 (문화독자부) |
270㎏ 무게의 금고를 훔쳐 달아나던 도둑이 계단에서 압사한 채 발견됐다. 금고를 끌고 계단을 내려가려 한 것으로 밝혀졌고, 금고는 비어 있었다.(1996년 미국)
한 젊은이가 코브라에 물렸다. 친구가 병원에 연락하려고 하자 그는 “난 남자답게 알아서 할 수 있어”라는 말로 안심시킨 뒤 병원 대신 술집에 가서 술을 퍼마시며 바텐더에게 자신이 코브라에게 방금 물렸다는 자랑을 하고는 죽었다.(1997년 미국)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황당한 죽음'을 입력하면 나타나는 '다윈상(Darwin Awards)'수상자들이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 신경과학 연구소의 웬디 노스컷이 재미로 시작한 일이 인기를 끌자 1994년부터 황당하게 죽음을 맞았거나 멍청한 행동으로 스스로를 곤란에 빠뜨린 사람들을 선정해 오고 있다. '바보같은 죽음'을 통해 스스로 도태됨으로써 인류진보에 도움을 준 사람에게 주는 상으로 해석한다 해도 앞의 '닭 구출 사건'으로 비명횡사한 이들의 죽음은 안타깝다.
세상에는 n개의 사람만큼 n개의 다양한 죽음이 있다. 최근 '국민건강 전도사'였던 모 교수의 진료 중 사망과 전직 프로야구 선수의 자살 사건으로 살아 있는 사람들이 다양한 사망진단서를 발급한다.
특히 전직 프로야구 선수의 자살은 국내 톱 배우였던 아내와 처남 자살이라는 비극 뒤의 비극으로서 세간에는 주술적 수준의 억측과 분석이 춤을 추고 있다. 소설로 지어낸 비극이라고 한들 이만할까.
선진국 '인증마크'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한 34개 나라 가운데 한국이 8년째 1등을 달리는 분야가 있다. 자살률이다. 보건복지부의 'OECD 헬스데이터 2012'에 따르면 한국 자살률은 2010년 기준으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인구 10만 명당 33.5명, 2009년 28.4명보다 5.1명 증가했다. 회원국 평균치인 12.8명보다도 무려 2.6배나 높다.
심각한 것은 OECD 회원국의 평균 자살률은 5년 전에 비해 남녀 모두 감소했으나 유독 한국만 증가세를 보였다. 통계청의 '2011년 사망원인통계'를 봐도 그해 한국의 자살자는 1만 5905명으로 전년대비 340명(2.2%) 증가해 1일 평균 43.6명이 자살을 선택하는 '자살 선진국'이다. 자살 유형의 다양한 변주는 한도 끝도 없다. 몇 년전에는 '여드름 자살'도 있었다. 학교현장에서는 성적, 왕따 비관 자살, 노동현장의 해고에 따른 자살, 생활고나 신병비관 자살, 우울증 자살이 순환띠처럼 꼬리를 문다.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자살론'(1897)에서 일상적인 현실과 좀처럼 타협 또는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감행하는 '이기적 자살', 과도한 집단화나 사회적 의무감이 지나치게 강할 때의 '이타적 자살'(전사),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겨지던 가치관이나 사회 규범이 혼란 상태에 빠졌을 때 자주 일어나는 '아노미적 자살', 사회의 과도한 욕망 억압으로 발생하는 절망 속의 자살인 '숙명적 자살'(노예)로 구분했다.
중요한 것은 자살이 사회적 현상이며 원인도 사회적이라는 점이다. 뒤르켐은 정신병이나 신경쇠약증 같은 것이 자살과 확정적인 관계가 없을 뿐더러 유전적 요소, 개인 체질, 밤낮의 길이 등 다양한 신체적, 물질적 조건들이 자살 현상을 설명하기에는 부적합하다는 것을 밝혀냈다. 한 마디로 '특정한 개인사정'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깟 여드름 때문에? 왕따 당했다고? 그깟 직장이 없다고? 해고됐다고 자살을 해? 전쟁터에서 의무감과 집단화로 죽는 것은 자살이면서도 순직이지만 나머지 유형은 진짜 '자살'이다. 차라리 현재와 미래에 대한 '희망고문'이라도 있으면 살아갈텐데 '희망부재'가 이들을 자살로 이끈다. 여기서 공감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공감은 정서적인 것부터 법적, 제도적 장치를 모두 아우른다.
한 정신과 의사가 표현한 '자살 대기표를 쥐고 있는 사람들'을 기억하고 공감하고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치유해야 하는 것이다. 영화 '미션'은 마지막에 “죽음은 주검이 아니라고요. 산 자의 기억 속에서 살아 숨쉬기 때문이라고요”로 끝난다. 우리 기억 속에 '죽음이 살아 숨쉬는' 끔찍한 고통보다 살아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 차라리 낫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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