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태 변호사 |
그래서 이번 새해의 함박눈을 우리에게 풍요를 가져주겠다는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해 본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함박눈이 내리는 세상은 정말 조용하고 포근하다. 도시가 하얀 눈으로 덮이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행복한 기분마저 드는 것이다. 비록 한 해 소원을 비는 기회를 놓쳤지만 내리는 눈이 너무 아름다웠다.
그리고 내리는 눈처럼 아름다운 삶의 행복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헤르만 헤세는 사람들은 행복해 질 의무를 타고 났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누구나 사람들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행복해 지고 싶다고. 그러나 정말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많지 않는 것 같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행복이라는 말이 인생의 화두가 되어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사람들은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하여 열심히 찾아다닌다.
행복이라는 때로 신기루처럼 보이는 그것을 찾아 평생을 방황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긴 방황 끝에 인생의 종말에 가서 옛 선현의 말씀속의 지혜, 행복은 바로 나 자신 속에 있다는 이 말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리석은 우리들은 옛 선현의 말씀을 단지 말씀이라고 알고 있을 뿐이다. 그와 같은 깨달음에 도달하기에는 아직 우리는 어리석고 미성숙하다.
그래서 행복은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이 존재해야 비로소 행복할 수 있다고 강변하는 것이다. 그리고 조건으로서 좋은 일자리와 이에 따른 충분한 소득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옳은 말이다. 가난은 죄는 아니지만 대단히 불편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소득이 많은 사람들이 그만큼 더 많이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이것은 미국의 통계에서 나타난 것을 보면 분명하다. 즉 미국이 1946년에 국민소득이 1만1000달러였고 1991년에 2만7000달러로 상승했는데 행복지수에 있어서는 3점을 기준으로 하는 경우 1946년도에 2.4였으나 1991년에는 2.2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행복도의 측정에 있어서도 소득이 높은 사람이 행복도가 높긴 하지만 행복과 소득과의 상관관계에 대하여는 0.20 정도로서 그다지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국가 간의 비교에 있어서 저소득국가에 비하여 고소득국가의 행복도가 훨씬 높긴 하였지만 국민소득 1만 달러 정도에 이르면 그 이상의 소득이 있는 국가에 있어서의 행복지수는 국민소득에 좌우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즉 어느 정도의 소득수준이 되면 행복은 다른 여건에 의하여 좌우된다는 것을 의미했던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행복의 조건이 되는 소득에는 도달한 것 같은데 행복지수에 있어서는 조사된 36개국 중 24위의 최하위에 속한다고 하니 행복하지 않은 나라임에 틀림이 없어 보인다. 그이유가 여럿 있겠지만 가장 설득력이 있는 이유라면 바로 급속한 경제발전에 따른 부작용으로서의 부의 불평등에 있지 않나 생각된다. 또한 행복의 조건의 하나로서 평생 동안 할 수 있는 자신의 일이 있어야 한다는 것 - 이것 역시 옳은 말이다. 사실 인간이란 자신의 일에 대한 만족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오히려 행복이란 수입이 많아서가 아니라 자신의 일에 대한 보람에서 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일자리가 없다는 것은 행복과의 상관관계는 어떠할까? 의심할 바 없이 일자리 없는 사람은 불행한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이와 다른 견해가 있다는 것이 놀랍다. 즉 신자유주의 거시경제학자들에 의하면 실업은 '자발적이다'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사람들은 업무가 과중하게 느껴지거나 실업상태에 비하여 급료가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직장을 떠나 실업이 주는 이득과 여가를 즐긴다는 것이다. 참 말 장난 같은 소리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들이 일반 기업인들에게 펴져있는 상식이라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이처럼 일반사람들에게 행복의 조건이 소득과 일자리라면 이것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물론 소득과 일자리를 만드는 데에 있어 개인이 주도적이어야 하는지 국가나 사회가 중심이 되어 움직여야 하는지는 예전에 논쟁이 있었지만 이제는 개인이나 국가 그리고 사회가 혼연일체가 되어 일자리와 소득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되어 버렸다.
그렇기 위해서는 이 모든 것을 한데 아우를 수 있는 시대정신이라는 것이 분명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은 바로 서로를 위한 삶 - 헤르만 헤세가 '행복해진다는 것'이라는 시에서 사랑이라고 부른 그것 - '서로를 위하며 함께 하는 삶'이 우리 시대의 시대정신으로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새로운 대통령을 맞이하는 계사년 새해에 새 대통령이 이룰 '행복한 나라'를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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