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혀진 금강문화권 이야기 풀어내고파… 충청콘텐츠 개발 절실”

“묻혀진 금강문화권 이야기 풀어내고파… 충청콘텐츠 개발 절실”

역사적 근거 많은 충청, 활용 못해… 네트워크 인프라 만드는 노력 필요 새마을운동보다 '새마음 운동' 필요… 책 읽지 않으면 생각하는 법 잃어

  • 승인 2013-01-01 14:51
  • 신문게재 2013-01-02 8면
  • 오주영 기자오주영 기자
[2013 신년대담] 논산으로 귀향한 박범신 작가를 만나다

▲ 지난해 11월 고향 논산으로 귀향한 박범신 작가가 논산시 가야곡면 조정리 자택에서 금강문화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 지난해 11월 고향 논산으로 귀향한 박범신 작가가 논산시 가야곡면 조정리 자택에서 금강문화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매서운 겨울 바람이 부는 논산시 가야곡면 조정리 자택에서 만난 박범신(66) 작가는 할 말이 많은 것 같았다.

고향으로 내려오게 된 과정부터 논산을 비롯한 금강문화권에 대한 생각과 2010년 발표한 소설 은교와 그 영화, 최근 집필 이야기까지 나누다보니 인터뷰 시간은 3시간을 훌쩍 넘겼다. 인터뷰는 지난해 12월 22일 가야곡면 자택에서 있었다.

박 작가는 “이 일대에 황산벌이 있고, 금강문화권에는 묻힌 이야기가 많다. 이 묻힌 이야기들이 나를 불렀구나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면서 “지금 금강문화권에 대한 관심이 많이 생겼다”고 했다.

박 작가는 “나는 고향에 편안히 살려고 온 게 아니라 작가로서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한 시기를 정말 치열하게 살려고, 새 출발을 꿈꾸면서 여기를 '글감옥'으로 삼으려고 왔다”며 “나를 '청년작가'라고 부르는데 강렬한 나의 변혁을 꿈꾸며 여기 왔다”고 했다.

청년의 혈기를 갖고 있는 그를 만나 2013년 예상되는 사회ㆍ문화 현상을 미리 들어봤다.

-지난해 11월 고향 논산으로 내려왔는데. 생활은 어떤가.

“지난해 여름 교수직 정년을 맞았는데 생각해보니 인생을 남편, 아버지, 작가, 그리고 선생 등 3가지 역할로 살았다. 작년 봄 막내까지 결혼해 분가하니 두 가지 역할이 끝났다는 생각이 들어 이제 작가라는 한 가지 역할로 살면 되는 행복한 찬스가 왔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작가로서 충실하고 싶어 내려왔다.(박 작가는 황명선 논산시장이 자신을 처음 본 순간 형님이라 부른 것이 논산행을 결심하게 됐다고 한다. 원래는 공주쪽의 집을 물색중이었다고 한다)”

“고향이라는 게 아름다운 기억들로 가득 차 있지는 않다. (하지만)고향이 주는 울림이 내 안에 있는 거구나. (그런 생각에) 갑자기 오게 됐다. 고향으로 오고 싶은 잠재적인 욕망이 있었다고 본다. 고향으로 온 이후 한 동안 후회했었다. 빨리 짐을 싸고 올라갈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1년 정도 지내며 논산 곳곳을 다니면서 너무 많은 것들을 알게 됐다.”

“찾아 오는 사람들이 많아 그들을 다 대응하면 난 어떻게 글을 쓰겠나 싶어 봄가을로 오픈하우스 행사를 한다. 100명 씩 와서 막걸리를 준비해서 같이 마셨다.”

-금강 문화권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나. 이를 충청의 문화콘텐츠로 발전시키기엔 충분한가.

▲ 박범신 작가가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다.
▲ 박범신 작가가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다.
“패배주의 역사를 살아오면서 만들어낸 판타지 가운데 하나가 관촉사에 있는 은진미륵이다. 금강 문화권 역사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계백은 너무 많이 다뤄져서 소설적 관심은 없다. 논산문화원에서 많은 책들이 나와 이야기를 듣고 있고, 윤증 고택옆에 윤증 반대파 공자의 사당인 권리사 유림들이 제사지내는 것을 보니 도포 입은 양반이 300명정도 왔더라. 6개월마다 정권이 뒤바뀌고 사람이 죽어나가는 살얼음판 정치판이었으니까(소재도 다양하다).

문학이라는 게 시대의 그 어떤 첨단적인 전위적인 것들을 즉발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더라도 그것과 곧장 전면적으로 드러내고 반영할 생각은 없다.

좀 삭혀서 중요한 것은 젊은 작가도 아니니까 표면에 드러난 것이 아니라, 내면적 개연성을 찾아서 기록하는 소설을 써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금강문화권은 역사의 중심에 서는 날을 꿈꿔온 사람들이 살던 곳이라고 본다. 역사적 사이클을보면 이른바 금강문화권이 역사의 전면으로 부상할수있는 좋은 찬스가 아닐까 생각한다.”

-문화콘텐츠는 어떻게 구체화될 수 있는가. 현대에 와서 문화의 역할이 더 강조되고 있는데 말이다.

“작가는 그냥 쓸뿐이다. 그냥 여기와서 고향에 기여할 수있는 일이 뭘까 나만큼 브랜드 파워를 갖고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논산일기'도 그래서 냈다.

연무대에는 육군 훈련소가 있다. 훈련소에 대한 기억이 안좋다. 논산이 유구한 문화적 전통을 갖고 있는 곳이라고 알리고 있다. 더 헌신할 수 있는것은 숨어서 소설 쓰는 것이다. 나의 딜레마다 .

사람들은 전면에 나서는것은 내 노선도 아닐 뿐만아니라 글 쓰는 것도 뒤로 처지니까 말이다.

문화가 21세기 중심적 가치가 된것은 확실하다. 지자체장도 인식을 안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표시나는 한 건만을 하려고 하는 게 큰 문제다. 네트워크 인프라를 만드는 인식을 분명해야한다. 가령 충남 일원을 어떻게 네트워크하고 묻힌 이야기를 발굴하고 이미지화, 나눌 것인가 하는 인식은 있다. 그러나 방향은 역시 한건주의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 같다. 전체의 환경이라는 것이 자신 이상을 떠나 매우 어려운 구조다.”

“문화에 대한 이상을 소신껏 밀고나가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구나 생각한다. 충남에 콘텐츠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네트워크화하는 문화 밑그림이 없는 것이 아쉽다.”

-특히 아쉬운 점은 무엇인가.

“우리 충청도에 너무나 많은 서사들이 묻혀 있는데 하나도 이를 활용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서사를 활용하는 문화콘텐츠는 시간이 가도 그 기반이 무너지지 않는다. 충청도야말로 문화의 중심이 될 역사적 근거를 많이 갖고 있는데도 효용성이나 알량한 경제중심의 다급한 이념 때문에 귀한 가치들을 거의 보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지역에도 시민단체, 평생교육의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확장되고 작은 도서관 같은 문화를 즐기는 공간이 있어야 하고 문화를 실어나르는 컨베이어 벨트와 같은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일을 정치권 지도부에서 해야한다.”

-논산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나. 이를 어떻게 꿸 것인지 말해달라.

너무 많은 이야기가 있다. 특히 조선 중ㆍ후반부 논산지역을 기반으로한 세력들이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일대 황산벌이있고 금강문화권 , 당연하게 묻힌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산다. 밤이 되면 어두운산 나무 밑에도 고향에 돌아가지못한 영혼들이 많겠구나 생각한다. (밤이면)계백의 후예도 만나기도 한다. 왜 도망가지 않냐고 하기도했다. 장군님이 불쌍해서 도망가지 못했냐고 말하기도 했다.

“산야가 비어 있어도 빈 게 아니구나. 나는 고향에 돌아와있는데 더 많은사람들(수많은 역사적 망자들)은 돌아가지 못하고 죽었다.

올때는 충동적으로 왔는데 필연적으로 올수밖에 없던이야기는 묻힌 이야기들이 나를 불렀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올 수밖에 없었던 내적 개연성을 뒤늦게 찾은것이다. 나날이 여기에 올수밖에 없었던 개연성을 발견하는 시기였다.

-기호학파를 정면으로 다루는 소설을 기획중인 것으로 안다. 어떤 의미가 담겨져 있는가.

“지금 연재중인 소설 소금이 끝나면 논산을 기반으로한 서인 그룹의 부침 , 그들은 뭘 지키자했을 까를 생각한다. 소론의 윤증 고택이 여기 있다. 송시열과는 사제간인데 길이 달랐던 것같다. 송시열은 권력의 화신이었다.

윤증의 노선은 윤휴를 추종했던 것 같다. 역사의 명분으로 보면 역사가들이 해석하겠지만, 작가는 역사가 기록하지 못하는것을 기록할 수 있다. 문학이란 그런 것이다. (그 때)역사와 지금의 판이 똑같다. 혁신 진보그룹과 보수 전통적가치를 지켜가자는 그룹사이에 윤증이 끼어있었다. 고향에서 공부하고 듣는다. 부족하면 집에와서 책도 찾아보고한다. 고향을 배경으로한 역사물을 하나 쓸까한다.”

-제 2의 새마을 운동을 주창하는 목소리도 있다. 고향에 내려와 보니 그 필요성이 있다고 보는가.

“새마을운동보다 새마음 운동을 해야겠다. 국민이 변해야한다, 우리들 자신이 변화해야한다. 자본에 예속된 것같다. 싸워야 하는 새마음 운동은 자본과 우리의 어떤 정체성으로 관계를 맺느냐에 대한 인식을 해야한다. 정부의 새마을운동에 대해 기대하지 않는다. 지금 새마을 운동은 무엇을 위한 새마을 운동일까? 우리가 정말로 새마을 운동 정신이 필요하다면 자본에 예속되있는 보다 자유롭고 자기 주체를 인식 하도록하는 것이 온 국민에게 필요하다. 그것을 정부가 할 수 있겠나. 국민들이 책많이 읽고 가난하지만 문화적인 콘텐츠와 가까이 쉽게 오고 갈수 있도록 만드는 게 있다.”

-힐링캠프에 출연해 네번의 자살미수에 대해 말했는데 어떻게 극복했는가.

“경쟁 제일주의, 서열중심의 사회문화적인 구조가 사람들을 죽인다고 생각한다. 생명가치를 변질시켜놨기 때문에 강력한 경쟁의 좁은 통로로 내몰리고 있다. 실패한 자는 살아갈 통로가 없다. 사회가 어떻게 다 성공하고 사나. 일부는 실패한자들이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인 통로가 필요하다. 그런데 없다. 이 나라는 성공한 자만 사는 나라로 사회문화적 구조가 돼 있는게 문제다.”

“이 상태로는 계속 자살자가 생길 수밖에 없다. 100만원짜리 양주를 먹냐, 만원짜리 소주를 먹냐는 문젠데 왜 소주를 먹으며 행복하지 않겠냐. 실패했다고 생각하면 즉각 비전도 가질 수 없는 사회문화적 구조가 만들어져 자살이 생기는 것이다. 한 시기의 훈계나 그것으로 자살률을 낮출 거 같지는 않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지급하는 돈을 늘리고 학교를 공짜로 다니게하고 이런 것 만으로 복지는 완성돼지 않는다. 경쟁에 지고도 행복해 질 수있는 출구들을 만들어 내야만 사는 게 편해지고 너그러워지지 않을까. 정부의 돈을 많이 쓰는 복지가 아니라 프로그램이 다양해져야 한다.”

-바쁘다는 이유로 현대인들의 독서량이 크게 떨어지고 있는데.

“80년대 잠깐 '문자문화'에 접어들다가 90년대 문화의 중심이 영상, 인터넷 중심으로 넘어가며 안타깝게도 '구술문화'로 되돌아갔다. 구술 문화가 나쁜 건 아니지만 생각을 깊이 한다든가, 문제의 감춰진 본질을 알게 하는 통찰력을 갖게 한다든가 하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책을 읽지 않으면 생각하는 방법을 잃어버린다. 내 삶의 정체성에서 점점 더 멀어지는 경박하고 위험한 삶을 살게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경쟁중심의 자본주의적 세계관으로만 무장한다면 그런 삶에 어떻게 인간주의적 품격이 깃들지 않는다.

-계사년(癸巳年) 새해 지역민들에게 덕담 한 마디 해달라

“마음 깊은 곳에서 진실로 우리가 원하는, 그리운 삶이 무엇인지 모두가 알게 되는 한 해이길 바란다. 경쟁에 내몰리는 불안한 마음 때문에, 우리가 진실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것 같다.”

대담=오주영 문화부장ㆍ정리=최두선ㆍ박수영ㆍ사진=손인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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