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워'는 올해 기대를 모았던 영화 중 하나. 설경구 손예진 김상경 안성기 등을 아우르는 호화 캐스팅과 한국판 '타워링'이라는 대작으로서의 규모에 영화팬들은 설?다. 우려도 컸다. 올 여름 개봉이 겨울로 미뤄지면서 김지훈 감독의 전작 '7광구'의 악몽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소문도 돌았다.
지난 24일 뚜껑을 연 '타워'는 기대 이상이었다. 가상의 공간인 108층 타워스카이는 실제처럼 웅장했고, 불의 공포는 마치 현장에 있는 듯 생생하고 스펙터클하다. 여기에 대량의 물까지 쏟아진다. 빌딩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쉴 새 없이 펼쳐지는 다양한 재난 상황은 긴박감이 넘친다. 초고층 주상복합 빌딩 타워스카이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에 맞선 사람들의 이야기다.
크리스마스 이브. 타워스카이는 파티로 흥청거린다. 헬기를 띄워 인공눈을 뿌리는 놀라운 이벤트는 흥을 돋운다. 즐거움도 잠시, 강한 기류에 휩쓸린 헬기는 빌딩과 충돌하고 그로인해 발생한 불은 건물 전체로 번진다. 시설관리팀장 대호(김상경)는 딸을 구하기 위해 불 속으로 뛰어들고, 푸드몰 매니저 윤희(손예진)는 아비규환 속에서도 침착하게 사람들을 이끈다. 소방대장 영기(설경구)는 자신을 집어삼킬 듯한 거대한 불과 맞선다.
화재 재난영화인만큼 이 장르의 바이블 '타워링'(1974)과 비교되는 건 어쩔 수 없다. 1977년 국내에서 개봉돼 1971년 서울 도심에서 발생한 대연각호텔 화재가 모티브가 됐다고 해서 화제가 된 영화다. '타워링'과 '타워'는 제목만큼이나 닮았다. 남을 위해 희생하는 소방관들의 이야기와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 드라마라는 스토리 얼개뿐 아니라 당대 스타들을 전시하고 최신 영상기술을 동원한 블록버스터라는 점에서도 닮았다. 소방관과 건물을 잘 아는 설계자, 두 축이 영화를 이끈다는 점도 닮았다. 소방대장 역의 스티브 맥퀸은 설경구로, 설계자 폴 뉴먼은 김상경으로 대체된 모양새다.
인간 드라마 측면에선 '타워링'이 훨씬 낫다. 38년이 지났지만 재난 속 다양한 인물군상만큼은 언제 봐도 펄떡거린다. 이에 비해 '타워'는 수박 겉핥기식으로 맛만 보여준다. 감정을 극대화하기 위한 인간 관계망은 허술하고 평면적인 감성은 공감대를 얻기에 역부족이다.
대신 '타워'를 끌고 가는 힘은 실감나는 특수효과와 CG로 구현한 스펙터클이다. 3500컷 중 1700컷에 달하는 정교한 CG는 재난영화에서 기대하는 볼거리를 제대로 보여준다. 그렇다고 컴퓨터로 만들어낸 그래픽 영화는 아니다. 땀 냄새가 물씬하다. 실제 불을 내고 물을 퍼부었다고. 배우와 감독, 스태프들의 무모함이 만들어낸 리얼리티인 셈이다. 이 스펙터클로 관객을 몰아붙이는 힘이 대단하다. 여기에 한국 관객만이 느낄 수 있는 공포와 감동을 십분 활용한다. '해운대'에서 보았듯 우리가 익히 아는 공간들이 파괴될 때 공포는 배가 된다. 상투적이고 전형적이라는 꼬리표는 뒤집어 보면 이미 검증된 표현 방식이랄 수 있다. 진부해도 스크린이 잡아끄는 힘이 세다. 극중 강영기가 마지막 결심을 굳히는 가슴 저린 감정 연기는 눈물샘을 자극한다. 역시 설경구다.
새롭고 신선하지 않다는 점에서 평론가들은 그다지 높은 점수를 주지 않겠지만 대중들은 꽤나 만족스러운 평점을 줄 듯하다. '화재영화는 망한다는 징크스를 깰 것'이라는 설경구의 자신감은 현실이 될 수 있을 듯하다.
안순택 기자 soot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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