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연호 한국원자력연구원장 |
핵연료는 핵연료 피복관에 넣어져 봉 형태로 제조되는데 수백개의 핵연료봉으로 구성된 핵연료집합체 형태로 만들어져 원자로에 장전된다. 핵연료 피복관은 핵연료가 안전하게 핵분열 반응을 일으키도록 보호하고 방사성 물질이 외부로 누출되는 것을 막아주는 일차적인 방호벽 역할을 하는 매우 중요한 부품이다.
지르코늄 합금으로 만드는 핵연료 피복관은 섭씨 300℃, 200기압에 가까운 고온 고압에서 견딜 수 있도록 부식저항성, 변형저항성이 강하고 중성자 흡수성이 낮으면서도 우라늄 핵연료가 효과적으로 연소되도록 고연소도의 성능을 발휘해야 한다. 이 때문에 재료공학은 물론 원자력과 기계, 물리, 화학 등을 아우르는 첨단 기술이 요구돼 그동안 미국, 프랑스 등 소수 선진국이 세계 시장을 독점해 왔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1997년부터 원자력 연구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신소재 핵연료 피복관 개발을 시작해 10년만인 2007년 마지막 성능검증 단계에 진입하는 쾌거를 이루어냈다. 국내 원전에서 5년간 다양한 성능 검사를 수행한 결과 그 우수성과 안전성을 확인받아 원자력 연구개발 사상 최고액 기술료를 받고 핵연료 제조 산업체인 한전원자력연료에 기술을 이전하게 됐다.
피복관 개발 과정을 되짚어보면 연구개발에서 끈기와 인내가 무엇보다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우리 연구진은 피복관 국산화를 위해 700종에 달하는 후보 합금에 대한 기초 연구를 토대로 합급 설계, 제조 및 평가시험 등의 과정을 거쳐 2000년 순수 국내 기술로 고성능 지르코늄 합금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이어 2001년에는 해외의 선진 핵연료 회사들이 개발한 최신 신소재 피복관보다 부식 및 변형 저항성이 40% 이상 향상된 'HANA 피복관'시제품을 만들어냈으며, 2004년부터 3년 간 노르웨이 할덴(Halden) 연구용 원자로에서 연소시험을 거친 결과 기존 피복관 대비 부식 및 변형 저항성이 40% 이상 향상됐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 원자력계의 땀과 노력의 결실인 HANA 피복관은 그 독자성을 놓고 세계 최대 원자력 기업과 5년에 걸친 국제 특허 소송을 진행해야 하는 등 개발 과정에서 진통이 만만치 않았지만, 소송에서 당당히 승소했을 뿐 아니라 국내와 미국 일본 유럽 중국 등에 40여 건의 특허를 등록함으로써 선진국과의 기술격차 극복하고 비로소 원천 기술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원자력 발전소 1기당 사용되는 핵연료 피복관은 약 5만개 정도로 이중 약 3분의 1이 1년 반마다 새로운 피복관으로 교체된다. 현재 우리나라가 전량 수입해 사용하고 있는 핵연료 피복관의 수입비용은 연간 약 300억 원에 이른다. 이번 기술 이전으로 수입대체 효과 뿐 아니라 외국기술보다 뛰어난 성능으로 수출 효과까지 기대된다. 핵연료 피복관과 함께 기술이전된 대결정립 고연소도 이산화 우라늄 소결체 제조 기술 역시 소결체의 품질을 좌우하는 결정립의 크기 면에서 세계 최고의 수준을 보이고 있어 상용화 될 경우 그 경제적 효과가 상당할 전망이다.
우수한 성능의 원자력 부품 개발은 원자력 발전의 경제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크게 향상시킬 뿐만 아니라 원자력 발전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감과 불신을 신뢰와 믿음으로 바꿔 줄 것이다. 이번 핵연료 제조 기술 완전 독립이 원자력 안전을 실질적으로 향상시켜서 국민이 안심하고 원자력을 이용하는데 일조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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