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국]예(銳)와 둔(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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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국]예(銳)와 둔(鈍)

[기고]조종국 서예가ㆍ전 대전시의회 의장

  • 승인 2012-12-23 14:38
  • 신문게재 2012-12-24 21면
  • 조종국조종국
▲ 조종국 서예가ㆍ전 대전시의회 의장
▲ 조종국 서예가ㆍ전 대전시의회 의장
당경(唐庚)이 쓴 고연명(古硯銘)에 보면 서가(書家)의 애용품인 붓, 먹, 벼루에 대해서 재미있게 구분하여 말한 대목이 눈에 띈다. 이 세 가지는 종이와 더불어 문방사우(文房四友)라 하여 늘 문인 묵객의 애완(愛玩)을 받고 항상 같이 있는 점에서는 상근(相近)이라 할 수 있지만, 그 수(壽)는 서로가 다르다는 것이다.

가령, 붓의 수명은 단 하루일 수도 있고 먹의 수명은 한 달일 수도 있으나 벼루만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대를 물리고 계속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인 즉 다소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그 몸체의 특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중에 붓은 그 몸체가 가장 날카롭고, 먹이 그 다음이며, 벼루는 아예 둔하기 이를 데 없지만 그래 그런지 붓처럼 예리한 자는 단명하고, 벼루처럼 둔한 자는 장수한다는 것이다.

세 가지는 그 쓰이는 빈도를 보아도 붓은 제일 자주 쓰이고, 먹은 그 다음이며, 벼루는 아예 자기 몸체를 내 맡기고 조용히 누워만 있다.

그런데 움직이는 동(動)자는 단명하고, 가만히 있는 정(靜)자는 오히려 장수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예(銳)와 동(動)은 불가피하게 하나의 연결 고리를 이루고, 둔(鈍)과 정(靜)도 불가분의 관계로 맺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설사 붓을 예(銳)하다고 쓰지 않고 그대로 놔둔다고 (靜)하여도 그 붓은 결국 예(銳)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벼루만큼은 오래 가지 못하기 때문에 예의 숙명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이치를 당경(唐庚)은 이 세상을 모든 사물이나 인간관계에 까지 확대해서 생각했는데 결국은 무엇이든 둔(鈍)에 바탕을 두고 정(靜)을 작용으로 삼는 것만이 영구히 오래 갈 수 있다고 설파하고 있다.

필자가 굳이 고연명의 예(銳), 둔(鈍)을 인용해 본 이유도 이와 같은 당경(唐庚)의 생각이 우리 인간사에도 너무 절실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약삭 빠르고 요령 좋은 사람을 예(銳)라 할 수 있고, 미련하고 머뭇거리는 사람을 둔(鈍)이라 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에서 과연 어떤 사람이 장수 할까는 뻔한 이치가 아니겠는가. 여기에서의 장수는 물론 단순한 생명의 길이, 즉 나이의 장단을 두고 하는 얘기는 아니다. 어떤 직장이나 어떤 분야를 놓고 볼 때, 아니 가장 솔직한 예로 정치가를 놓고 볼 때도 정치생명의 장단과 그 인간의 예(銳), 둔(鈍)과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고 한다.

어디 정치인뿐이겠는가. 예술가도 마찬가지고 공무원도 마찬가지다. 너무 자신의 재주만 믿고 정신없이 날뛰다가는 결국 어느 사이엔가 그 인생의 전성기는 다 가버리고 실추의 쓴 맛을 보는 예는 우리 주변에 허다하다.

요즘 18대 대통령선거 등 주요 뉴스에 가려 덜 비춰지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부지 매입의혹 사건 등 온통 사회를 시끄럽게 하고 있는 친인척을 비롯한 권력층의 비리 사건을 저지르고 재주 좋게 날뛴 인사치고 편안하게 지낼 사람이 드물게 된 것도 다 같은 이치다.

인간은 나이 들면 백발이 되고 결국 산속에 묻히지만, 청산(靑山)은 나이가 들수록 더 푸르고 싱싱하게 장수하는 것도 산이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둔(鈍)과 정(靜)의 속성을 가장 많이 지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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