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멜로를 표방했지만 초반은 딱 로맨틱 코미디다. “나랑 연애 안 하실래요?” “지금 그쪽이 뭔가 단단히 착각하시는 모양인데…, 내가 지금 그쪽을 좋아서 따라다니는 거예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상큼 발랄 한효주가 매달릴 정도라면 뭔가 사연이 있을 터. 아니나 다를까. 미수(한효주)는 의료사고를 내고 고발당한 외과의사다. 소송을 유리하게 이끌려면 소방관 강일(고수)의 증언이 꼭 필요하다.
미수의 '다면적인' 설득작전은 집요하지만 강일은 요지부동. 그에게는 현장에서 다른 사람을 구하다 정작 위급상황에 빠진 아내를 구하지 못한 아픈 상처가 있다. 아내를 잃은 남편의 아픔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그가 미수의 턱없는 요구에 응할 리 만무. 그럴수록 미수의 '구애'는 강도를 더 해가고, 두 사람은 어느 새 가까워진다.
한효주로 시작해 한효주로 끝난다. 한효주는 '연기의 맛'을 안 것 같다. 상큼 단아한 외모를 뒤집어 왈가닥 캐릭터 구축을 성공적으로 해낸다. 까칠하고 도도하고, 자살소동을 벌이다 한강다리 난간에 거꾸로 매달리는 슬랩스틱 코미디에 걸쭉한 욕설까지. 기존 이미지의 알을 깨고 훨훨 난다. 남성 관객들은 그녀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 듯하다.
한효주가 남성 관객을 책임진다면 고수는 여성 관객들의 감성을 건드린다. 딱 벌어진 어깨에 무뚝뚝한 얼굴로 거친 언어를 구사하는 연기는 사내 냄새가 물씬하다. 상반신도 드러낸다. 여기에 소방대장 역의 마동석, 강일의 절친 김성오, 홍일점 소방관 쥬니 등 조연진들이 웃음을 보태며 극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정 감독의 전작 '와일드 카드'에서 형사 콤비로 나왔던 정진영과 양동근이 영화 속 모습 그대로 등장하는 장면은 빵 터진다. 남녀 주인공이 가치관 차이로 헤어지고, 남자가 인명 구조를 하다 겪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영화 후반부를 슬픈 멜로와 진지한 드라마로 이끈다.
곳곳에 보이는 억지스러운 장면, 군데군데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 흐름이 거슬리고 영화적 표현이나 감성도 다소 촌스럽다. 그럼에도 한효주를 비롯한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살아있는 매력은 그런 아쉬움을 채우고도 남는다. 정기훈 감독은 '애자'에서 보여줬던 웃음과 눈물을 버무리는 재능을 이번에도 유감없이 발휘했다.
안순택 기자 soot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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