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송대 존 엔디컷(76) 총장과 인터뷰는 예정 시간보다 1시간을 훌쩍 넘기고 끝났다. 할 말이 많아서만은 아니었다. 우송대 이지은(영어학과장) 교수가 통역을 해줘 진행된 인터뷰 초입은 다소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졌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편안해졌다. 미국인이 아닌 한국인 총장과 얘기를 나누는 것처럼 말이다. 대화가 언어로만 진행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마음이 통해야 진정한 소통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한국과의 인연은 언제부터 시작됐는가. 우연이었나.
“한국을 가장 사랑하는 이유는 나를 살렸고, 나의 조국을 도왔기 때문이다.”
우송대 존 엔디컷(John E. Endicott) 총장은 1965년 베트남전 참전 용사다. 그는 베트남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백마부대와 맹호부대의 도움이 컸다고 회상했다. 그는 31년간의 군 생활을 마치고 조지아공대 교수로 이직후, 이 대학 아시아 연구소 한국프로그램을 신설한 계기로 미 남동부상공회의소장 등을 맡으며 미국 내 대표적인 지한파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그는 우송대에 총장 지원서를 낸 적도 없다. 그러나 우송대 솔브릿지 국제대학장(2007년 9월~2008년 12월)을 거쳐 우송대 총장(2009년 1월~현재)으로 지난 6년간 우송대를 이끌고 있다. 국제화가 필요했던 우송대에서 그를 스카우트한 것이다. 그는 우송대와 인연을 맺는 것을 '하늘로부터 온 선물'이라고 표현했다. 엔디컷 우송대 총장은 '동북아 제한적 비핵지대화(LNWFZ-NEA) 운동'을 제창해 사무국의장을 맡는 등 동북아 전문가로 2005년과 2009년 노벨평화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올 여름 재임용됐다. 지난 임기동안 가장 기억에 남은 일은 무엇인가.
“개인적으로 지난 9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쿠바 미사일 위기 50주년 기념 핵확산금지 회담' 에 참석한 것이다. 쿠바 미사일 사태(1962년 10월 22일~11월 2일 11일간 미국과 소련이 대치, 핵전쟁 직전까지 갔던 국제적 위기)당시, 나는 미국 소령이었는데 이회의에서 당시 소련 소령이었던 사람을 만났다. 이처럼, 세상이 많이 바꿨다는 것을 생각했다. 학교 업무적으로 기억에 남는 일은 학부선진화사업에 선정된 일이다. 이 사업은 200개 대학 가운데 11개 대학만 선정된 것으로 그만큼 우송대가 교과부로부터 교육개혁노력을 인정받았다는 뜻깊은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타 대학 총장들과 모임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나.
“다른 총장들한데 가장 많이 듣는 인사는 '축하한다'는 말이다. 우송대가 국가 주요 사업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요즘 우송대에서 무슨 일을 하나' 대해서 질문을 많이 받는다. 다른 총장들에게 항상 감사하는 것은 나를 일원으로 받아주고 가족처럼 여기주는 것이다. 단 한번도 '내가 아웃사이더구나'라고 느끼지 않게 따뜻한 웃음으로 대해준다.”
-다른 한국 총장과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나는 매학기 수업을 한다. 하지만 다른 학교 총장들은 수업을 하지 않는다. 나는 수업을 통해서 학생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갖고 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안다. 그동안 동북아역사, 미국역사 등을 강의했다. 다음 학기에는 동북아 정책 관련 강의를 할 예정이다. 이 강의 전반부는 한국근대사이며 나머지 부분은 미국, 러시아, 일본, 북한 등 동북아 정책을 설명할 계획이다. 한국근대사를 알지 못하면 동북아 정책을 이해할 수 없다.”
-요즘 학생들은 역사에 취약하다는 우려의 시각이 높다. 이에 대한 생각은.
“맞다. 요즘 학생들이 역사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뚜렷하게 보인다. 미국이 정말 잘못한 것이 역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정책가를 양성한 것이다. 세계정책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은 역사를 공부하는 일이다. 역사는 사회가 어떻게 형성됐는지를 사건을 통해 돌아볼 수있는 것이다. 나에게 역사는 새로운 것을 열어준 문(door)과 같았다. 학생들이 언어와 역사를 잘 안다면 많은 기회가 주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그는 자신의 전공 분야 질문에 흥이 난 듯 다양한 포즈를 취하며 박식한 역사관을 보여줬다)”
“가족은 일본인 아내와 1남1녀다. 한국에선 아내하고 중구 태평동 관사에서 살고 있다. 아들은 미국 비행조종검사관련 업무를 맡고 있으며 딸은 디즈니사에 근무 중이다. 사위는 변호사다. 현재 아내를 만난 계기는 일본 학교에 근무했던 아버지덕분이다. 아버지가 나에게 일본에 가거든 어떤 수녀님을 찾아가라고 했는데 그 수녀님이 현재 부인을 소개해줬다. 부인을 처음만났을 때, 누나한데 '이 여자를 한번 더 만나면 청혼할거야'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취미는 동북아 역사 공부다. 정말 책읽는 것을 좋아한다. 또한 저녁식사전 1시간정도 아내와 산책하는 것을 즐긴다.”
-우송대의 최대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우송대는 글로벌 인재 양성의 산실로 최근 국내외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세계적 유수대학 출신인 교수진을 바탕으로 '글로벌 마인드를 갖춘 국제경영전문가', '글로벌 시대에 맞는 차세대 리더' 등을 교육목표로 글로벌화 네트워크 구축이 최대 강점이다.”
-교육철학은 무엇인가. 학생들이 어떤 사회인으로 평가받길 바라는지 말해달라.
“최근 3~4년동안 학생들을 만나면 늘 하는 말이 '미안하다'는 말이다. 미국 MBA나온 사람들이 돈만생각하다보니 글로벌 문제에 직면한 것이다. 돈만 버는 것, 목적만 달성하는 것만 최우선으로 하고 사회환원, 사회책임 등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전문적이고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책임을 갖고 사회를 항상 돌아보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사회에 어떻게 구성원이 되는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요즘 한국 대학은 취업률을 강조한다. 일각에서는 대학이 직업양성소로 전락하고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한 생각은.
“슬픈 현실이다. 그러나 우송대는 취업률 평가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저희 대학이 좋은 성적을 얻는 이유는 특성화다. 철도대학, 외식조리학과 등 특성화를 해놨기 때문에 사회에서 필요한 인력을 키우기 때문에 취업률 평가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것이다. 우송대는 취업만 강조하는 슬픈 현실 속에서도 잘하고 있다.”
-외국인 총장으로 구성원들과 소통에 문제는 없는지 궁금하다. 비법이 있는지.
“나는 늘 학생이라고 생각하고 늘 배우는 자세로 임한다. 매 학기마다 수업을 하나씩 맡고 있다. 학생들과 수업을 하면서 더 많이 배운다. 이를 통해서 나는 학생들을 존경하고 학생들도 나를 존경한다. 졸업식, 오리엔테이션 등에서 학생 앞에서 말할 수 있는 자리에 설 때마다 '우리는 서로 존중해야합니다.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합니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우리가 나가야할 길입니다'를 강조한다. 다양성을 존중할 때만 학교도, 지역사회도, 대한민국, 세계도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17일 발사된 북한장거리 미사일에 대한 생각은.
젊은이가 무모한 짓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아버지를 추모하기 위해서 미사일을 발사했는데 발사 전이나 후도 문제가 많이 있었다. 이제는 미국도 북한이 무엇이 가능한지, 어느 것을 할 수 있는지 등을 알 수 있었기 때문에 평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깨달게 된 계기가 됐다. 만약에 발사가 실패했다면 직책이 위태로워질도 모른다는 점에서 젊은이의 무모한 짓이라고 규정짓고 싶다.
●엔디컷 총장은 누구
▲1936년 미국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생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졸업 ▲ 터프츠대 플래처법학 및 외교대학원 국제정치학 박사 ▲미 공군 대령, 미 국방부 산하 국가 전력연구소장 ▲조지아공대 국제전략기술정책센터 소장 겸 샘넌 국제대학원 교수 ▲2005, 2009년 노벨평화상 후보.
대담=오주영 문화부장·정리=배문숙 기자 mo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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