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의 새로운 여정이 시작됐다. 꼭 10년 전 개봉한 '반지의 제왕'은 호빗족 빌보 배긴스가 여행을 떠나면서 사촌 프로도에게 반지를 남겨주는 것으로 막을 연다. 빌보는 세상을 위기로 몰아넣을 '절대반지'를 어떻게 손에 넣었을까. 영화 '호빗'은 그 이야기를 들려주려 '반지의 제왕'의 6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피터 잭슨 감독은 여러 인터뷰에서 “하이 프레임 레이트(HFR. High Frame Rate. 초고속프레임) 영상 기술이 관객들에게 새로운 영상 체험을 선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말 그대로 '호빗'의 영상은 놀라웠다. 지금까지 영화의 표준은 초당 24프레임. HFR은 그 두 배인 48프레임. 프레임 수가 두 배로 늘면서 화면은 훨씬 선명해졌고 캐릭터들의 움직임은 부드러워졌다.
게다가 3D다. 그 덕에 호빗과 난쟁이, 인간과 요정, 트롤과 오크, 고블린이 존재하는 판타지의 세계가 놀라운 생동감으로 다가온다. 광활한 대자연이나 동굴 같은 입체감이 도드라지는 세트, 화려한 액션이 나오는 장면에선 스크린에 빨려 들어갈듯 아찔하다. 그 기술적 성취만큼은 '반지의 제왕'을 훌쩍 넘어선 느낌이다.
'호빗'의 재미의 반쯤은 '반지의 제왕'을 추억하는데서 나온다. '반지의 제왕' 주역들이 대거 등장한다. 무엇보다 젊고 깜찍한(?) 골룸이 등장하는 장면은 웃음의 포인트다. 이중인격자에 '혼자놀기의 달인' 골룸의 원맨쇼는 여전히 빛을 발한다. 흉측한 오크, 늑대 와르그, '반지의 제왕-반지원정대'에서 모리아 광산에서 마주쳤던 고블린 등 악당 캐릭터도 다시 보니 반갑다.
새로운 캐릭터들도 매력적이다. 주인공 빌보 배긴스 역을 맡은 마틴 프리먼은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연기로 기대 이상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난쟁이 족의 전설적 영웅 소린 역의 리처드 아미티지는 남다른 카리스마를 뿜어낸다. 여기에 갈색 마법사 라다가스트와 그의 발 빠른 토끼 등 새 캐릭터가 합세했다.
캐릭터뿐 아니라 전체적인 분위기 또한 밝아졌다. 피터 잭슨은 '반지의 제왕'의 무게감을 덜어내고 자신의 초기작의 재기발랄함을 연상케 하는 정서와 장면들로 채웠다.
그러나 스토리가 아쉽다. '호빗'은 젊은 빌보(마틴 프리먼)에게 마법사 간달프(이언 맥켈런)는 뜻밖의 제안을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오래 전 난쟁이 족의 영토였지만 불을 뿜는 용 스마우그에게 빼앗긴 에레보르 왕국을 되찾으러 가자는 것. 빌보는 난쟁이 왕의 후예 소린(리처드 아미티지)이 이끄는 13명의 난쟁이와 함께 원정대에 합류하게 된다.
J.R.R. 톨킨은 '호빗'을 잠자기 전 머리맡에서 부모가 읽어주는 어린이용 동화로 썼다. 때문에 영화가 훨씬 경쾌하고 유머러스해진 것은 좋다. '반지의 제왕'에 비해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도 이해되는 일이다. 문제는 300쪽에 불과한 원작을 3부작으로 확장한데서 온다. '반지의 제왕'이 방대한 원작을 압축하는 과정이었다면 '호빗'은 정반대의 과정인 셈이다. 늘어지는 느낌이 지루하고 몰입도를 떨어뜨린다. 초반 원정대 출정 전야의 이야기가 무려 30분에 달한다.
'뜻밖의 여정'은 서막을 여는 단계인 만큼 지루한 것도 그 탓이려니 치자. 본격적인 모험을 겪는 2, 3부는 달라지기를 기대한다. 2부 '호빗: 데솔루션 오브 스마우그'는 내년 여름, 3부 '호빗: 데어 앤드 백 어게인'은 2014년 겨울, 개봉예정이다.
안순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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