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겸]겨울 되어서야 그게 내 선택임을 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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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겸]겨울 되어서야 그게 내 선택임을 알다

[논단]김중겸 전 충남지방경찰청장

  • 승인 2012-12-13 14:04
  • 신문게재 2012-12-14 20면
  • 김중겸 전 충남지방경찰청장김중겸 전 충남지방경찰청장
▲ 김중겸 전 충남지방경찰청장
▲ 김중겸 전 충남지방경찰청장
초등학교 동창. 줄곧 연락하며 지낸 친구 몇이나 되나. 우리 집 뒤쪽 원제. 저쪽 한양여관 맞은편 영모. 철길 건너 제련소길목 한의원집 순모. 신작로 사는 동길. 이렇게 넷.

요즘 어떻게 지내냐. 그럭저럭. 바다 아직 나가냐. 그걸로 먹고 사니까 그냥 하고 있지. 뭐. 대책이 없다. 내가 일본 근무 가게 됐을 때 원제와 나눈 얘기다.

어망공장 앞 방파제였다. 어렸을 때부터 놀던 자리. 혼나가며 뜯어온 파. 그걸로 파피리. 총적(蔥笛)이라 했던 피리 만들어 분 곳. 사십 중반 사내 둘이 떨어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돌연 야, 사는 게 정말 힘들다. 원제가 한숨 길게 내 쉬었다. 연평도나 백령도로 고기잡이 나간 장항 배. 그 선단에 생필품 보급하러 가는 일. 그 무렵 친구 원제가 하는 일이었다.

쾌속선에 라면이랑 소주랑 싣고 거기까지 간다. 대금은 잡은 생선으로 받아온다. 해적질. 선창에는 서울서 온 트럭이 기다렸다. 시세의 반값에 후려쳤다. 돈 많은 도둑놈들. 붙잡혔다.

그때마다 수갑 차고 있다는 연락이 왔다. 사정사정해서 빼내곤 했다. 이제 널 누가 빼내겠냐. 걱정은. 다 사는 길 있지 않겠냐. 근데 이번에 가면 언제 오냐. 삼년이다. 길다.

갔다 오면 더 출세하는 거잖아. 잘 됐다. 너. 그래. 난 말이야. 영 생활이 피질 않는다. 좀 벌었다 싶으면 나갈 구멍 생기고. 돈에 눈이 있다더니 정말 그런 거 같다.

원제는 어려서부터 극장 문지기로 일했다. 깡패는 아니었다. 막일 전전했다. 동생이 권투선수로 이름을 날렸다. 돈 좀 만지나 했더니 중도이폐(中道而廢).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관청이라든가 정부라든가 하는 기관은 착취주체였다. 경제가 많이 발전해서 국민이 잘 살게 됐다는 말만은 수없이 들었다. 한데 도대체 어떤 놈들 배 불렸냐 했다.

옛날처럼 굶지는 않는다. 그렇긴 해도 굶지 않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해야 한다. 막노동도 하고. 고단하다. 그 많은 돈 다 어디가 있는지. 야, 정말 힘들다. 사는 게.

그 말 듣고 도쿄 가고. 돌아와서 여기저기 다니고. 어영부영 십년 흘렀다. 그때 들려온 소식. 불알친구가 자살했다는. 아들이 부동산 투자에 실패. 거리로 내몰리자 목숨 끊었다고.

살려고 애 많이 썼다. 착했다. 결과가 그거라니. 세상 불공평하다. 없는 사람만 죽게 만드나. 배제다. 인류역사의 지성은 무엇인가. 공정과 평등이라는 정의 추구인가. 과연?

순호도 죽었다. 대학 졸업 후 서울에서 인쇄소 했다. 사장 명함 들고 봉고차 몰며 주문 받고 배달하곤 했다. 일주일에 한 번은 내 사무실 들렀다. 얼굴 보고 고향소식 전하고.

애들 교육 걱정된다. 그 말 입에 달고 살았다. 영어 하나라도 제대로 시킨다며 끝내 필리핀으로 갔다. 몇 년 후 부인이 찾아왔다.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말 전해주고 갔다.

경제성장은 부자가 아닌 자의 상태를 개선시키지 못하는가. 가난한 계층의 고통을 오히려 심화시키는가. 부자는 더 부자 된다.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해진다. 차이가 더 벌어진다. 옳은가.

어망공장 그 방파제. 좀 묻어두려 해도 자꾸자꾸 생각난다. 소년시절이 고스란히 잠겨 있어서다. 불혹지년(不惑之年)에 바라보던 붉디붉은 금강하구 석양. 힘들다던 원제의 아우성 같다.

아버지가 어업협동조합에 다니는 향금이가 집 나갔다는 소문도 거기서 들었다. 순호가 제안했었지. 아마. 가출했어도 향금이는 동기동창이다. 멤버로 대우하자. 서울 가게 되면 꼭 찾자.

철새 우는 강변. 깨끗하게 컸던 아름다운 내 고향. 타향살이에 그립고 그리웠다. 객지에선 분주했다. 내 청춘 어떻게 보냈는가. 재미? 그런 거 볼 짬 어디 있었냐. 꿈만 많았다.

세상 사람들아. 어찌 세상이 갈수록 부자와 빈자의 차이가 더 넓어지는가. 마르크스가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외치던 그때와 지금 사이에 차이가 있는가. 불공정과 불평등은 여전하다.

고생하다 간 원제가 말 걸어온다. 그 방파제에서 만나자. 순호가 맘 편히 올 거고. 영모와 동길이는 니가 연락해라. 해주에서 월남한 준모 형도 오라 하자. 뭐 하려고 그러냐?

자본주의가 부자용 장치라는 빌미를 공산주의자에게 주지 않을 지도자. 친인척과 측근의 비리를 단절시킬 리더. 삶의 서글픈 실상도 볼 줄 아는 대통령 선별하기다. 가자. 투표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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