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충식 논설실장 |
재벌이 중소기업 성장의 사다리를 걷어찼다거나(문재인) 대·중소기업 간 공정거래(박근혜)를 말하는 걸 보면 중소기업이 '착한 성장'의 중심에서 비켜났다는 인식은 표면상 일치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그 사다리를 어떻게 할지, 불공정과 불합리와 불균형 3불은 어찌 해소하며 중소기업 육성을 통한 내수·수출 쌍끌이 전략은 어떤 식으로 구사할지 맛보기라도 보였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선관위 방송토론위원 연임을 거치는 동안 느끼던 문제점들이 100% 재연됐다. 돌발변수 없이 큐시트(진행표)만 지켜지면 평년작으로 치던 기억이 새롭다.
그런 속성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면서도 깊이 있는 각론의 부재가 불만스러웠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경제민주화 부문은 민주주의의 핵심인 자발적 승복을 이끌어낼지 상당히 애매하다. 재원 확보는 그만두고, 다 지켜진다고 해도 중소기업형 산업이 각광받을 것 같지는 않다. 토론에서 적시했듯이 대기업은 골목에서 떡볶이, 순대까지 팔고 있다. 5년 전 '명박 한번 믿어봐'라던 로고송만 실천됐어도 이런 일은 안 일어났다. 중산층 70% 재건 공약은 안 해도 됐다.
골목골목 중소업체들을 보자. 피땀 흘려 개척한 상권은 몸집 커진 새우가 껍데기를 갈아입는 가장 위험한 순간 큰 물고기에 먹히듯 한순간 무너졌다. 자생력 약한 중소기업 절반 이상이 안정적으로 뿌리내릴 생존기간 5년을 못 버틴다. 1~4인 영세 사업체가 중소기업의 83%인 현실에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문제도 성장 동력 차원에서 접근할 단계다. 대주주-마름-소작인 모습을 띤 대기업과 협력업체, 그 협력업체의 관계도 재정립해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 해법도 정규직화로만 풀면 되는 줄 아는 모양이다. 고용 창출 여지가 있는 중소기업을 키워 만드는 경제-복지-일자리의 선순환 고리라는 해법은 끝내 불발이었다. 자금, 판로, 기술, 인력 등 위기에 대해 한마디쯤 나왔어야 한다. 재벌개혁 공방에 밀려 중소기업은 풀숲의 개똥참외 신세였다. 수혜의 균점보다 배분의 효율성에 맞춰야 하는 '지원' 얘기도 일언반구 꺼내지 않았다. 현상유지가 안정인 쪽과 현 상태가 불안정인 쪽은 당연히 다를 수 있다.
중소기업은 아무래도 뒤쪽일 것이다. 돈줄 막히고 재고만 쌓이는 중소기업의 유행어에 '망하려면 개발하라'가 있다. 요즘 어딜 가나 자주 듣는 말이 '강남스타일'의 1조원 직간접 경제효과다. 경제적으로 해석하면 연구개발(R&D) 체제 구축으로 글로벌 프로가 되라는 뜻인데, 누가 몰라서 혁신 안 하는 것 아니다. 그런데 And(나열)와 Or(선택)의 진지한 논의마저 참여정부 실패론, MB정부 심판론에 묻혀버렸다. 드러난 정책도 부작용이 우려되는 요소가 많다.
그러고 보니 '모든 약은 독이다'라는 의심은 제약회사 신입 교육용 화두만은 아닌 듯하다. 섣부른 정책, 설익은 정책도 독이 되겠구나 싶었다. 전국 312만개 사업체에서 1226만명이 일하는 중소기업이 설 땅과 비빌 언덕을 잃고 쫄딱 망하면 회사원 10명 중 8~9명이 실업자다. 그런데 '늘지오(일자리를 늘리고 지금 일자리는 지키고 질 올리기)'나 '일자리 대통령'을 표명하면서 우물에서 숭늉을 찾고 있다. 중소기업 체질을 확 바꾸는 새 이론구조(패러다임 시프트)가 필요할 때 말이다.
TV토론 세부 주제였던 경기침체, 양극화, 비정규직이나 워킹푸어, 경제민주화와 고용 안정의 해답 상당수는 중소기업 활성화에 들어 있다. 해서는 안 되는데 하는 것, 해야 하는데 안 하는 것 모두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이고 표(票)퓰리즘이다. “민생부터 살리겠습니다”(박근혜), “민생이 새 정치입니다”(문재인). 말은 이러면서 국부 창출과 지역경제의 근간인 중소기업 대책이 언저리만 겉도는 아쉬운 토론이었다. 대통령과 남편의 공통점 1위가 “내가 선택했지만 참 싫다”라 한다. 그래도 “선택 잘했다”고 할 민생 대통령, 중소기업 대통령의 탄생을 기다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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