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춘추]어머니의 노래

  • 오피니언
  • 사외칼럼

[중도춘추]어머니의 노래

  • 승인 2012-12-06 13:41
  • 신문게재 2012-12-07 20면
  • 신웅순 중부대 교수신웅순 중부대 교수
▲ 신웅순 중부대 교수
▲ 신웅순 중부대 교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 '어머니'.

어머니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글썽글썽해진다. 어머니의 존재는 그렇게 누구에게나 서럽고 애틋하다.

나는 어머니와 함께 한집에서 반세기를 살았다. 50년 전 초가집에서 만나 50년 후 아파트에서 이별했다.

어머니는 집안 살림에 남편 뒷바라지, 자식 뒷바라지가 전부였다. 하고 싶은 것들이 얼마나 많았을까만, 일생 어머니는 있었지만, 어머니 자신은 없었다. 이것이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모시삼고, 밭일하고, 빨래하고, 밥하고, 설거지하고 이런 것들이 어머니 일상의 전부였다.

어머니는 생전 아프지도 않고 외롭지도 않은 줄 알았다. 내색하지도 않았고 내색할 틈도 없었다. 바람이 부는 줄도 몰랐고 물이 고이는 줄도 몰랐다. 물결이 이는 줄도 몰랐다.

가신 후에야 가슴에서 파도가 치는 것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시를 쓰는 일이었다. 기도하듯 시를 쓰는 일이었다. 강물 위에 배가 될 때까지 하나, 둘 풀잎을 띄워 보내는 일이었다.

고독한 것들은 항상 가까이에 있고 그리운 것들은 늘 멀리에 있었다. 어머니는 그곳에서 누군가를 기다렸다. 그러다 어느 날 겨울 울음이 아닌 것들, 겨울 달빛이 아닌 것들을 홀연 곁에 놓고 떠나셨다. 불빛이 생기기 시작한 것도 그때쯤이었고 그림자가 생기기 시작한 것도 그때쯤이었다.

산녘에는 초승달이 떴다.

“참, 예쁘구나.”

어머니는 일손을 놓고 들깻잎 새로 초승달을 바라보았다. 흰 구름도 지우고 먼 하늘도 지웠다. 나뭇가지에 걸린 초승달이 바람 불면 마지막 잎새처럼 툭 떨어질 것만 같았다.

어둑어둑해서야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왔다. 가도 가도 닿을 수 없는 그리움. 영원으로 소멸해간 아픈 생각들이 이제는 내 이순의 산모롱가에 초승달로 뜨고 있다.



늦가을/ 잎새 하나/ 천년으로/ 지고 있다// 물빛도 스쳐가고/ 불빛도 스쳐가고// 불이문/ 끊어진 길을/ 초승달이/ 가고 있다

-필자의 '어머니' 37



이보다 더 먼 곳이 세상천지 어디에 있을까. 바람이 바람이 아니라서 눈발이 눈발이 아니라서 산을 넘지 못하고 강을 건너지 못하는 미련들. 바람과 눈발을 맞으며 가슴으로 깊어간 외로움들을 어머니는 어찌 감내하면서 살았을 것인가. 세월 어디쯤서 자취 없이 잦아들고 녹아들었을 겨울바람과 눈발들. 빙점의 길가에서도 해마다 달개비, 씀바귀, 구절초, 산국들이 피고 지지 않는가.

생각도 만추가 되면 붉게도 물드는가. 떠나지도 못한 것들 울지도 못한 것들이 우수수 낙엽이 되어 빈칸으로 떨어진다. 닿지 말았어야 할 설움들이, 닿지 말았어야 할 가슴에 비수 같은 생채기를 내며 혜성처럼 스쳐간다.

어머니가 가신지 십 년도 넘었다. 엊그제 같은데 세월이 그렇게 흘렀다. 그날은 눈이 유난히도 많이 내렸다. 추한 것들, 더러운 것들 다 덮고 떠난 겨울바람. 하얀 눈길을 따라 발자국 소리 하나, 바람 소리 하나 남기지 않고 떠났다.

겨울의 산과 들은 참으로 아름답다. 잎을 떨구고 가을걷이가 끝난 저 텅 빈 산과 들은 얼마나 평화롭고 고요한가. 겨울 빗소리, 겨울바람 소리가 스쳐 지나가는 산과 들. 저녁 햇살과 새벽 달빛이 잠깐 왔다가는 산과 들. 그런 고독이 없다면 산과 들은 얼마나 외로울 것인가. 그런 적막이 없다면 겨울은 또 얼마나 허전할 것인가.

눈 감으면 고즈넉 흔들리는 어머니의 불빛. 그것은 어머니가 내게 주고 간 영원한 그리움이며 안식처였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3.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4.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5. 유등노인복지관, 후원자.자원봉사자의 날
  1. [화제의 인물]직원들 환갑잔치 해주는 대전아너소사이어티 117호 고윤석 (주)파인네스트 대표
  2. 생명종합사회복지관, 마을축제 '세대공감 뉴-트로 축제' 개최
  3. 월평종합사회복지관과 '사랑의 오누이 & 사랑 나누기' 결연활동한 동방고 국무총리 표창
  4. 대전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남대 공동학술 세미나
  5. 전국 아파트 값 하락 전환… 충청권 하락 폭 더 커져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